노출콘크리트 유감(제주 특집)
건축이 말을 거네 49
노출콘크리트 유감 (제주 특집)
이번에 우연히 제주에서 안도 다다오의 작품 2곳을 배회하면서, 역시나 노출콘크리트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가치와 기술적인 제한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였다.
정작, 그것이 내 본업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불필요한 TMI 이기는 하지만 본바탕이 건축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거슬리는 것은 가만히 지나치지 못하게 되는 모양이다.
지니어스 로사이의 곳곳은 노출된 콘크리트의 노후로, 혹은 시공 미스에 의한 흔적들이 엿보였다.
여기저기 균열이 많이 생겨있고, 그 균열들은 다른 모르타르 재료로 덧칠이 되어 마치 카모플라쥬 패턴 같은 불규칙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조물 어디서 인가 스며든 수분들이 콘크리트 구체의 알칼리성 시멘트와 석고 성분을 녹여내어. 흡사 석회석 동굴과 같이 종유석이 서서히 맺히고 바닥에는 석순을 이루고 있었다.
이대로는 아마도 수십 년 이내에 지니어스 로사이의 이곳저곳에는 종유석이 자라날 것이다.
늘 해수의 수분을 머금은 섬 위에, 그것도 바로 바닷바람을 끊임없이 받아내는 구조체에 쓴 콘크리트가 제대로 염분에 강한 특수 콘크리트를 사용했을지의 여부는 모를 일이다.
짐작건대, 오사카가 고향이자 주 무대이고, 일본 건축계의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생각하면 아마도 안도 선생은 그 부분은 자연스럽게 시공사가 해결하였으리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지니어스 로사이는 서서히 녹아들고 있었고,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글라스 하우스는 이곳저곳의 철물들이 염분이 있는 바람에 서서히 녹이 슬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녹 방지를 위해 선택하였을, 노출콘크리트에 어울리지 않는 스테인리스 문짝들에 곰팡이가 피듯 붉은 녹물이 올라왔다.
그 또한 해수 지역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높은 등급의 스테인리스를 사용하거나, 노출콘크리트에 어울리려면 스테인리스 강판에 보호 칠을 입혔으면 다소 예방이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시공사의 적정한 선택이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는 유민 미술관으로 바뀌어서 상층부에는 나지막한 휴게공간이 있고, 그곳을 통해 외부로 나가게 된다.
그곳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 전시용 데스크와 벽에 붙은 진열장들이 안도의 디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장부맞춤 “장부맞춤 (Mortise and Tenon)이란 접합부에 장부를 낸 이음을 뜻한다. 장부 촉을 여러 개 만들어 이어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면 튼튼하면서도 짜임 부가 드러나지 않는 장을 만들 수 있다.” 방식으로 만들어진 목가구의 섬세함을 보면 분명 그 디자인의 담당자는 안도의 건축방식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그것을 실제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굉장히 숙련된 사람이었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예컨대 그런 유의 테이블은 우리나라의 작업 방식으로는 당연히 유리판 정도를 올려서 테이블 상판의 손상을 막는 게 보편적이다.
하지만 테이블 상판의 원목은 오픈포어 방식으로 제작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유리를 얹는다면 당연히 오픈포어 마감 특유의 질감은 사라졌을 것이다.
질감을 살리는 대신 사용자가 많은 공간이라 모서리들은 천천히 낡아 세월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
그게 디자이너 원래의 목적 아니었을까.
철제 결합부도 보이지 않고, 적어도 외관상으로 완벽하게 장부맞춤 기법으로 제작된 거로 보이고, 그 사이사이에 아주 작은 틈새를 넣어서 목재의 신축에도 적응하게 설계를 하였으니 그 가구의 디자이너는 적어도 가구 커스텀 설계에서는 탁월한 게 분명하다.
지니어스 로사이와 시기적으로 조금 늦게 조성된 본태 박물관은 앞서 경험 덕분인지 세월이 덜 흘러서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마감의 측면에서는 낫다,
특히 지니어스 로사이의 내벽 부분들은, 노출콘크리트에 묻어나는 손때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벽체에 투명 코트를 칠해 놓아서 노출콘크리트 본연의, 시간 흐름에 따라 낡아짐의 미학이 사라져 불만이었는데 본태 박물관은 아직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안도 특유의 공간 분리가 좀 심해서, 박물관이라는 공간적 특성은 퇴색되어 보인다.
각 관의 연결 통로들이 외부에서 가능하니 본디 박물관 전시의 내러티브가 사라져서,
2.3관은 비교적 작은 공간인데 의식의 흐름이 잠시 끊겼다가 새 공간에 들어서면 크게 돌아볼 공간은 작은 편이라 아쉽다.
안도 최초의 작품이라는 스미요시 나가야 와 같이, 공간을 분리하여 자연을 느끼게 한다는 의도가 좀 지나치다 싶다.
이것은 시설관리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매표하러 선물용품 삽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1관 입구를 한참 헤매야 하는 불편함이다.
일반적인 동선을 피하여 뭔가 공간의 전이라는 이론인 것 같은데, 사용자에게는 무척 불친절한 동선이라 달갑지 않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생각이다..
비록 건축의 한 모퉁이에 살고 있지만, 나는 건축물을 ‘작품’으로 지칭하는 게 편치 않다.
종합예술로 구분한다는 것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건축은 본연의 목적이 존재하고,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져야 합당하지 목적도 본분도 잊고 그저 조형성에 천착한다고 하면 그건 이미 건축이 아니다.
목적이 있고, 자본이 있고, 사용자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이 건축이다..
만약에 건축가 자신이 그토록 자신의 건축언어만을 표현하고 싶다면 개인 돈으로 자기 집을 짓건, 아니면 자기 사옥을 짓건, 그건 본인의 마음이니 뭐라 할 게 아니다.
그러나 속되게 표현하면 남의 돈으로, 남의 건물을,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건축가가 할 일도 아니다.
언제부터 인가 ‘건축가’라는 용어가 관용적으로 쓰이지만, 엄연히 법적 용어가 아니다.
‘건축사’ ‘건축기사’ ‘시공 기술사’ 등 건축의 법적 범위에 대한 용어는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어떤 금속 가공자(금속 공예가가 아닌) 자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에 디자인을 부여하고 물건이 잘 팔리자 다양한 디자인을 생산하여 판매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칭타칭 금속공예작가 운운하는 딜레마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건축가'입니다.라는 말은 건축을 업으로 삼는 이가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경우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업이며, 건축주와 공공의 이익과 편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