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능선오름 Apr 26. 2024

라면 연대기 24

L 씨의 라면 역사에 대한 고찰 보고서


라면 연대기 – 부제: L 씨의 라면 역사에 대한 고찰 보고서


24     


라 군은 묵묵히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적어도 교육적인 면만으로는 이미 어머니의 배움을 뛰어넘은 라 군이지만.

엄연히 법적으로 아직 성인도 아니고 보호자는 어머니였으므로 라 군은 어머니가 내놓은 말들이 당최 이해는 안 되었지만,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버지를 병원에 옮기는 데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무작정 아버지를 업고 뛰려던 영애의 아버지는 이내 방범대원에게 걸렸고, 사정을 설명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렵사리 수배된 응급차로 갈 수 있는 병원은 꽤 먼 거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입원에 따른 보증인이 필요했는데,

그건 나중에라도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는 거라 주인아저씨는 한참을 멈칫거렸다.

그러다 도리없이 지문을 찍고서야 응급실에서 조치를 받던 아버지를 라 군은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나마 공터에서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 영애 어머니가 돌보기로 하고 영애 아버지와 라 군만 아버지를 따라온 것이다.

낯선 산소마스크를 쓰고 미동도 없는 아버지의 낯빛은 퍼렇게 변해서 마치 멍든 사람 같았다.     

영애의 아버지가 당직 의사와 뭔가를 한참 수런수런 이야기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라 군에게 병원에서 아버지 병실을 지키라 하곤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으로 나선 게 끝이었다.

그러고는 며칠인가.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말투도 어눌하고 미음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입가로 흘리곤 했다.

의사 말로는 가스중독으로 뇌 손상을 입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머닌, 잠시 저녁때 얼굴을 비치는 것 말고는 거의 병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못했다.

월세 이외에 새롭게 생긴 입원비를 충당하려면 더 열심히 취로사업을 나가야 하므로.     


- 그러니까. 이제 너희 아버지는 다리가 나아도 일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여. 연탄가스 때문에 머리 반쪽은 상했다니…. 아마 원래대로 돌아오진 않을 거야. 어쩌것냐. 병원비도 한두 푼도 아니고….

- 어머니. 그러면, 아버지 병원 입원비는 어쩌지? 우리 그럴 여유가 없잖아….

- 그건 주인집에서 대신 내주고 우리 보증금에서 까나가기로 했어.

- 네? 근데 집에서 연탄가스가 샌 거는 주인 책임 아니에요? 그걸 왜 우리가 다 내야 해?

- 글쎄…. 모르겠다. 사는 사람의 문제라고 하니 뭐 어쩌것어. 그거 어디 가서 하소연해 봤자 소용이 읍댜.  

   

고향은 황해도면서도 언제부터인지 지역 추정 불가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라 군은 집이 철거될 때 이상으로 뭔가 이상스러우나 항거가 불가한 이 기이한 구조들이 혼란스러워졌다.     


- 그러면, 나중에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 보증금 다 까지고 나면…. 쫓겨나야 하나?     


라 군의 물음에 어머니는 멍하니 넋을 놓고 어두운 방구석 이불 위에 미라처럼 누워있는 아버지를 응시했다.

어머니의 눈빛이 마치, 아버지 너머의 곰팡이 핀 벽지를 헤아리는 것처럼 허망하게 보였다.

그렇게 두 모자가 앞으로의 살아갈 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미동도 없었다.

의사의 말로는 아버지는 어떤 부분들이 인지되고 어떤 부분이 안되는지에 대해 명확하지를 않은 상태라고 했다.

때로는 치매 환자 같기도 하고, 때로는 중풍 병자처럼 되기도 하는 것이라서 정확한 치료법이 없고, 

분명한 건 아버지 뇌의  많은 부분이 연탄가스로 인해 손상되었다는 것.

연신 한숨을 쉬던 어머니가 라 군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한숨을 한 번 더 깊게 쉬었다.     


- 미온아. 아무래도 너, 고등학교 갈 때 K 공고를 가야 할 것 같어.

- K 공고?     


어머니의 말에 라 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K 공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변두리 아이들은 진로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대개 부모의 삶에 따라 진로 형태가 정해지곤 했으니까.

성적이 고만고만하고 집안도 그럭저럭 한 아이들 대다수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좀 성적이 안 좋거나, 성적이 좋더라도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은 공업계 고등학교나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성적이 극도로 안 좋은데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아이들은 ‘전수학교’라 불리는 전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는데, 그런 학교는 대체로 거의 졸업률이 두 자릿수 이하일 경우도 많았다.

그중에 학부모들이나 아이들이 제일 꺼리는 부류의 학교가 있었는데 그게 K고등학교였다.     

K고등학교는 국립고등학교로 등록금과 학비 전체가 국가에서 지원되는 고등학교.

게다가 전원 기숙사에서 3년간 생활이 보장되는 학교다.

그런 좋은 조건인데도 부모나 학생들이 지원을 망설이는 이유는 있었다.


그곳은 장차 졸업 후 장기 하사관으로 임용이 되는 일종의 예비 군사학교였다.

또래의 학생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군대와 유사한 교육기관이라,

불과 15, 6세에 불과한 아이들이 군인처럼 교육을 받고 기술을 배워 최소 6년 이상의 장기복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그건 일종의 ‘소년병’과 같은 형태라, 

부모들이 당연히 꺼릴 법도 하지만 집안이 너무 어렵고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집은 그렇게라도 아이의 고등교육을 위해 보내지는 그런 곳이었다.

라 군의 어머니는 그런 학교로 라 군을 진학하라 권하는 것이다.


라 군은 늘 힘없는 부모님을 봐서라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고,

그 나름으로 성적도 꽤 상위권이라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그리해서 대학은 장학금으로 진학하고,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도 하면 어떻게든 지금보다는 좀 나은 삶으로 올라서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지내왔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리 걷잡기 어렵게 치닫다 보니 늘 라 군을 응원해 주시던 어머니조차,

고등학교 학비조차, 어렵고 힘겨운 상황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억울했다.

너무 자괴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신은 도리없이 독일의 유명 작가가 썼다는 ‘ 황야의 이리’와 동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물론 ‘Der Steppenwolf’라는 원작의 이름은 본디 ‘초원의 늑대’ 일 테지만 그게 어찌어찌 일본판 번역에서 荒野のおおかみ라는 다소 초원과 극단적 대척점에 있는 황야로 변했고,

그것을 다시 한국어판으로 재번역을 하면서 황야의 이리라는 이름으로 변질하였음을 알고는 있었다.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국 영화 ‘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가 일본에서 개봉하며 일본 특유의 정서를 넣은 ‘ 明日に向て撃’이라는 제목으로 바뀌고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베낀 그것처럼 말이다.     

정작 원작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헤세는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1차 대전 때 입대자원까지 했었던 과거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라 군은 자기 자신은 어린 날처럼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 운동의 기치와 같았던 날들은 이제 믿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약육강식에 불과한 혼란 덩어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강제철거를 통해 겪었고 느꼈으며,

그런 비정한. 아니 비정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옳지 않다고 라 군은 결론 지었었다.


본디 정의가 있고 정 情이란 게 존재해야 비정 非情일 것이나, 라 군은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고 정의 正義 하는 것은 강자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거처 없이 떠도는 늑대무리처럼 자신의 혈통으로 묶인 가족 외 모든 무리는 모조리 ‘적’이며 지켜야 할 존재는 ‘정의’ 혹은 ‘약자’가 아니라 ‘내 무리’라는 것으로 스스로 규정 지은 지도 꽤 되었다.

그래서 이미 둥지를 커다란 불곰에게 빼앗겨 정처 없이 황야를 떠도는 늑대무리의 작은 늑대로서 라 군을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 알았어요. 어머니.

- 어쩔 수 없잖니. 니가 공부를 잘해줘 고맙긴 허지만, 아버지가 저리 되었으니 당장 먹고 살길도 모르겄어...그러니 니는 일찌감치 니 살길을 찾는 것이 맞은 거 같어. 우리 저녁이나 먹자.     


어머니가 느지막이 끓여준 라면을 후루룩 넘기면서 라 군은 어쩐지 오늘따라 라면 맛이 전혀 구수하지도 감칠맛이 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저 용암처럼 뜨겁고, 고춧가루처럼 매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 연대기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