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종군특파원 뉘우스

오늘도 평화로운 한강 자전거도로

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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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화로운 한강 자전거도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던 영화들을 보는 경우가 생겼다.

누군지 명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과거 미국의 유명했다는 감독이 한 말을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 좋은 영화는 없다. 단지 나쁘지 않은 영화가 있을 뿐이다. ”

어느 누군가에게는 상상 놀이에 불과하지만, 영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부 철부지 때문이리라.

아무튼, 영화 한 편을 다 봐줄 만큼 인내력이 있지도 않고, 그저 잠자리용으로 보다 보니 친절하게 영화들을 압축해서 이삼십 분 안에 일괄 정리해 주는 유튜버가 있어서 구독하였다.

흔히 알려진 유명 영화들도 있지만, 대개 국내 개봉을 안 했거나 흔히 ‘B급’ 영화로 불리는 영화들의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들만 콕 짚어 얘기해 주니 재미를 압축해서 보는 맛이 있다.

단점은 대상 영화가 대부분 전쟁, 경찰, 액션, 범죄 이런 장르다 보니 잠을 부르는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항상 그 유튜버는 오프닝이 일관된다.

“ 오늘도 평화로운 교도소의 아침 ”

” 오늘도 평화로운 멕시코 갱단들 “

” 오늘도 평화로운 지하 격투 도박장 “

” 오늘도 평화로운 테러 조직의 병영 “

뭐 이런 식이다. 반어법인지 뭔지 모르지만 나름 ‘픽’ 실소를 머금으며 시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는 참으로 ‘평화로운 한강 자전거도로’를 다녀왔다.


도림천에서 안합으로 이르는 자도는 지난주보다도 더 많이 땅을 헤집어놔서 인도와 자도가 뒤엉켜 난리였지만 안내인 따위는 없었다.

분명 지난가을에 안양천 장미축제 어쩌고 난리를 치던 공간을 모조리 다 뒤집어놓은 걸 보니,

올해는 땅 소에서 장미화원이 공중부양이라도 할 모양이다.

안합에서 아라뱃길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나 마나 여의도 방향은 공사도 많고, 임시휴일이라 영혼 없이 걷는 좀비 커플들도 많을 거 같아서였다.

이런, 그러면 그렇지. 어디를 가나 좀비와 빌런은 늘 평균 임계량을 준수하는 법이지.

멀쩡한 인도를 텅텅 비우고 자도 와 인도의 경계를 굳이 걷는 사나이.

혹시 ‘선’이 몸의 중심선에 있어야 안심하는 병이라도 있나.

이 열 종대로 느긋하게 자도를 차지하고 놀멍쉬멍 라이딩을 이끄는 형님, 누님들.

철티비가 아니라 팔이 훌쩍 활개를 치는 할리 데이비드슨이었으면 폼이 좀 날 텐데.

게다가 비루해진 다리로 달리다 멈칫 한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간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몸뚱이 여기저기서 녹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아우성을 친다.

자탄풍-전체 사진-59379387284.jpg


일단 구급차 한 대가 황급히 자도를 꽉 채운 상태로 달려가고,

조금 더 지나고 보니 내 또래? 즈음은 되어 보이는 아재가 경찰 순찰차 옆에서 순경들에게 뭔가를 진술하고 있고, 자전거 3대가 널브러져 있다. ( 다 철티비였음)

참……. 그릏다 생각하며 좀 더 아라뱃길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또 한 대의 구급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길을 막고,

한강의 최강자들인 사이클 몇 대가 뒤엉켜 투르 드 프랑스 같은 모습이다.

많이 다치지는 않은 듯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다.


https://youtu.be/DsPW9jyblwc?si=fp6m5cIlWb9_vBeJ

더 달리고 달려 아라뱃길 가까이 닿을 때쯤 자전거 세 대가 길가에 누워있는데,

묘령 (2~30대?)의 여인이 포장도로 위에 누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눈을 감고 있다.

그 옆에서는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휴대전화로 호출하는 게 들린다.

‘ 가다가 이유 없이 쓰러져서요! 어서 와 주세요! ’

나름 구급법을 좀 배운 적이 있는지라 흘깃 보니 안색은 멀쩡. ( 음, 열사병 같은 건 아니군 )

입술 색을 보니 분홍색 ( 흠, 뭔가 혈액순환 문제는 아닌데 )

얼굴을 보니 허 억 헉 ( 과호흡이군.)

돌팔이로 추측하건대 남자 2, 여자 1. 한강에서 흔히 보는 조합.

아직 미숙한 여성을 그룹 가운데 넣고 미친 듯 몰아세웠겠지.

그러다 호흡을 놓쳐 과호흡이 생기며 현기증이 왔을 것이고.

음……. 잠깐 0.1초 생각했다. 도와줄까? 다시 0.1초 생각했다.

자칫 변태 아저씨로 오해? 에라. 일행이 있으니 그냥 가자고…….

음? 경륜장에서나 쓸법한 자전거가 휙 아슬아슬 스쳐 간다.

거참. 선수면 휴일은 좀 쉬시지. 자린 이 넘쳐나는 한강 자도에서 뭔 스프린트인지.

아라뱃길로 오랜만에 접어드니 좀 낫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많이도 변했군. 이곳저곳. 좀 더 유아다워지고 좀 더 유치 뽕짝 한 조형물이 많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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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아라 북단 길에 인도와 자도 구분이 있지만, 따로 연석이 없는 길.

북단 자도는 대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도 꽉 찰 정도로 좁습니다.

앞에 인도와 자도에 아줌마 둘 아저씨 하나가 휘적이며 폰으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곤 와리가리 걷네요.

자도와 인도의 경계가 아예 경계심이 없어요.

게다가 목줄도 하지 않은 중 크기 개가 천방지축 주인을 따라 오락가락합니다.

개 좀 잡으라고 띠딩~띠링~ 두 번 경고 벨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지나가는데 뒤에서 아재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 지나가면 되지 왜 땡땡거려? ’

아이고.

남자의 호르몬 정도로 따지면 LED 정도 될 나이에 아줌마들 앞에서 ‘가오’ 좀 세우고 싶었나 봅니다.

‘ 애 레슨 시간에 나온 거라 바쁘게 돌아가야 하지만 잠시, 자도 보행규칙을 좀 알려드려? ’ 생각만 먹고 시간에 쫓겨 (쫀 거 아닙니다) 돌아옵니다.

자탄풍-전체 사진-59379387290.jpg

오늘도 아마 한강 자도는 평화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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