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의 신
나는 신이다
내 비록 모 종교단체의 수장 같은 지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에서 힘을 과시할 만한 위치에 오른 일도 없다만,
그래도 내가 ‘신’인 세상이 있다.
예컨대 내 힘을 의지하지 않으면 당장 일주도 버텨내지 못하고 멸망할 세상이 내게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 세상은 내가 조금이라도 게으르다면 종말이 오는 세상이다.
거실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어항에는 키싱구라미 5마리가 산다.
그동안 노란색 애플스네일이 모여 살았는데 별문제는 없었지만,
아이가 마치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굴러다니는 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사무실에 있는 대형 어항으로 옮겼다.
그리곤 허전해진 어항에 키싱구라미를 입양했다.
그동안 ‘물 생활’을 통해 많을 땐 어항이 열 개를 넘어간 적도 있었다.
우연히 구피로 시작하여 네온테트라, 테트라, 에인젤피시, 난주 종류들, 오란다 금붕어, 초록 복어, 새우, 도둑게, 민물 가재, 하다못해 금강모치까지.
투어로 알려진 베타는 한 쌍에서 난 치어들은 키워 직원들에게 분양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두 어항 채로 주변에 나눠주고 남은 어항이 한 개.
그곳에 키싱구라미가 산다.
그리고 개구리밥이라 불리는 부상 수초와 고구마가 산다.
고구마는 먹는 거 아니냐고?
맞다.
그냥 먹다 남은 고구마를 물에 담가 수경재배를 해보고 있는데 자라는 게 장난 아니다.
실은 키싱구라미 어항의 산도를 조정하는데 고구마가 좋다 해서 기르는 거지만.
그리고 베란다에 조그만 화단 – 화단이라기엔 너무 작지만 –을 가꾼다.
아이가 학교에서 자연수업으로 키우게 된 강낭콩이 시작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쑥쑥 자라서 당황스럽다.
그 옆에 다 죽어가던 다육이도 돌봐주니 제법 통통해졌다.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조그만 비닐봉지를 선물이라며 주었었다.
비닐 겉에 캐모마일 씨앗이라고 쓰여 있는데, 너무 작아서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
굳이 비교한다면 민들레 홀씨의 크기 정도라고나 할까.
후 불면 둥둥 떠다니는 그 아이들 정도로 아주 작은.
뚜껑이 망가져 못쓰게 된 반찬통에 흙을 붓고 그 위에 씨를 뿌렸는데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정말 콩나물 뿌리만 한 애들이 빼죽 고개를 내밀더니만,
이제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초록 초록 자랐다.
이 아이들은 내가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고 밥 주기를 잊거나, 물갈이를 해주거나 모종 옮겨심기를 잊는다면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세상의 신이다.
음....
결국, 내가 부지런히 물도 주고 밥도 주고 비료도 주고 매일 아침 화분도 돌려줘야 하고 주말엔 물갈이도 하고 해야 하니…….
신 맞나? 종 아닌가?
그들이 신인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