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 실패
21.
양주를 입에 털어놓은 친구 녀석은 최근 신고가 들어왔던 작은 사건을 두고 말을 이어갔다.
'작은' 사건이라고 하는 이유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야 어지간한 살인사건 정도라는 건 그저 일, 이초 정도 독자의 시선을 끄는 역할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아직 발표가 안 된 것 은 사건 자체가 도무지 자살사건 인지 살인사건 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변두리 낡은 빌라에서 한 여자가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
그 방 옆에 사는 사람이 매일 아침부터 밤새도록 알아먹지도 못할 음악소리가 종일 들려오는 걸 참아오다가, 참다 참다 따지려고 문을 두드려 보니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보니 그곳에 사는 여자가 방 천장에 목을 매달아 있었다는 거였다.
사체에 대한 현장 부검 결과는 스스로 목을 매단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는 여자의 손으로 쓰인 것 같은 유서 ,
유서라기엔 좀 그런 게 달랑 편지지 한 장에 쓰인 ‘사내놈 들은 다 똑같아’라는 내용 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대충 자살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신고가 들어온 304호를 빼고 가장 인접한 302호에 탐문을 하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응답이 없어서 우연히 현관 손잡이를 돌렸더니 거기도 문이 그냥 열리더란다.
그래서 들어가 본 집안에는 한 사내가 똑같은 자세로 목을 매달아 죽어 있더라는 거였다.
사내의 방 역시 별다른 다툰 흔적도 외부인 침입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며 짐이라곤 거의 없는 것 이 사람 사는 집 같지를 않았다고 한다.
사내의 방에서도 유서 비슷한 게 발견되었는데 이게 좀 우스운 게 무슨 광고 전단지 같은 것 뒷면에 ‘청음초 임무 실패’라고 쓰여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사내의 방을 여기저기 살피다가 보니 옆방과의 사이 콘센트 구멍에 무슨 도청장치 같은 게 발견되었는데 정황으로 보아 사내가 옆 303호를 몰래 도청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거다.
사체검안 결과로 여자는 사내보다 하루 전 죽은 걸로 보인다고 했다.
그럼 이 동네에 무슨 자살인 척 흉내를 낸 연쇄살인범이 돌아다닌다는 말 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멍청하게 바로 옆집을? 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무엇보다 둘 다 전혀 반항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식을 하고 현장을 확인하는 동안 여자의 방에서는 계속 음악이 들려와서 감식 담당이 전원을 껐는데,
CD 플레이어가 연속 재생으로 틀어져 있고 그래서 며칠간 음악이 계속 들려왔었다는 이야기다.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물었다.
“그래서, 그 CD가 무슨 음반이었기에?”
“ 뭐 난 잘 모르겠고! 무슨 영화음악 CD 라던데?
아, 스페이스 오디세이라고 하든가? 넌 알겠네? 기. 자 니까.”
‘기자’ 란 단어를 일부러 띄어 말하는 녀석의 심사가 드러나 보였지만 모른 채 하고 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떠 올렸다.
도무지 그런 음악을 틀어놓고 목을 매다는 부류는 뭘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그럼 여자가 먼저 죽고, 남자가 그다음 날에 목을 맸다는 거야? 둘이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니고?”
형사 녀석은 다시 술잔을 입에 털어놓으며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징글맞게 지었다.
“글쎄다. 그렇긴 한데……. 두 사건에 연관성을 지을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이웃들 말로도 둘 다 이웃 교류가 없었다고 하고…….
아, 탐문 과정에서 그 며칠 전 동네 슈퍼 주인이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신 것 같다고는 하는데,
아무런 증거는 없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친구 녀석은 클라이맥스라도 되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녀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남자, 청음초 임무가 실패했다고 유서를 남겼는데 그건 좀 틀린 거 같아.”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청음초? 그게 뭔데?”
“ 아, 넌 군대 안 갔다 와서 모르겠네. 청음 초란 건 말이야,
전선에서 본대 앞에 경계 차원에서 야간에 매복을 내보내는데,
그중에서 소리를 듣고 적의 접근을 본대에 알리는 걸 말한 다구.
걔들은 적을 잡는 게 아니라 그냥 죽은 듯 숨어 있다가 적의 침입을 감지하면 본대에 약속된 신호로 무전기 딸깍 음을 보내든지, 신호기 같은 걸로 알려주든지 그러는 거거든.”
“ 근데 그게 왜?”
의아하여 내가 다시 묻자 녀석은 빙글빙글 웃으며 내게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면서 말했다.
“그게 말이지. 원래 청음초 란 건 버려지는 거야.
전시에는 그냥 적 침투를 알릴 뿐이고 이미 적 본대가 쳐들어오면 한가운데 놓이니까 대개 다 죽는 거지.
일종의 버리는 패라고나 할까? 근데 그 친구, 죽었잖아. 임무 완수한 거지 뭘.”
녀석의 말에 나는 이게 뭔 대단한 기삿거리가 되는 걸까…….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녀석에게 농락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왈칵 들었다.
내 일그러진 표정과는 상관없이 녀석이 다시금 은밀한 미소를 띠며 내게 한마디를 더 했다.
“ 근데 말이지……. 이 사건이 묘하단 건 그런 게 아니야.
그 여자……. 있잖아. 처음 목을 매달았다는 여자.”
“ 어, 그게 왜?”
약간 퉁명스럽게 답하는 내가 좀 그랬는지 녀석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 그 여자……. 실은 남자더라고. 가슴은 있는데 아랫 도린 남자 드라구.”
“뭐? 그게 뭐야?”
“ 이 여자. 아니 이 놈. 아이 참 그자 직업이 알고 보니 이태원 게이바 쇼걸이더라고.
암튼 호르몬 주사로 가슴은 커졌지만 성기 수술은 안 한 그런 애였어 암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