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 위의 단상

Fly to the SKY

by 능선오름

SKY는 도달할 수 없는 하늘


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SKY 대학을 제외한 대학들은 홀대? 받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서울에 있고, 어느 정도 인정받는 ‘안정권’에 든 대학들도 SKY만큼은 아니어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게 요즘 현상이다.

그렇게 추리고 추리다 보면 불과 십 여개의 대학을 제외하면 ‘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나온다.

나는 아직 아이가 대학입시와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고교3학년에 진학한 아이를 둔 후배에게서 나온 말이다.

내 주변에서 자기 자식의 대학진학을 얘기할 만한 사람은 그 친구밖에 없으니 나로서는 그 친구의 말이 가장 현실에 와닿는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꽤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성을 가진 친구이니까.

그 친구 말에 따르면 그렇다.


앞서 말한 십여 개 정도의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은 언감생심이고,

결국 ‘그 외’ 대학을 나온다면 거기서 거기인 기업에 취업해서 또 거기서 거기일 기회밖에 갖지 못하니 차라리 몸으로 하는 기술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런 쪽에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니 뻔히 결과를 알면서도 남들 하는 데로 학원도 보내고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거기에 드는 비용을 따져보면 차라리 그 비용으로 다른 기술을 배워 창업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길에 대해 무엇도 장담할 수 없으니 그냥 알면서도 따라가는 거라고.


사뭇 냉정한 자식에 대한 평가와 그로 인해 짐작되는 인생여정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번민하는 게 와닿았다.

지명도 높은 대학에 진학해야 어느 정도 보수가 여유 있고 안정적인 인생이 보장되는 것.

그 친구는 그런 세상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남들이 한창 온갖 유혹과 호르몬에 휩쓸려 방황할 나이에 꿋꿋하게 청춘을 바쳐 공부에만 전념하여 어렵게 좋은 대학을 진학한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당연히 그렇게 못한 아이들과는 차별이 아닌 스스로 성취한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자식이 그런 상황은 아니라서 아쉽다는 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던 답은

‘ 나, 그리고 자네나 그 나이에 미래를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지 못했지 않나, 자네 아들이라고 그 나이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빨리 느껴 진로 결정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거야 ’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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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당연히 학창 시절에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집중했던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우위에 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설마 그럴까 싶어서 학창 시절을 다소 자유롭게 보냈던 친구들도 냉정한 사회의 계급구조를 깨닫고서는 뒤늦게 라도 만회하려고 애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개중에는 SKY의 대학원 코스라도 들어가려 애쓰던 친구들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엄격한 선발기준 때문에 포기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어서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ㅇㅇ과정’ 같은 곳에 슬그머니 발을 담그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공부로, 성적으로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일반적인 우수성적으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맞고,

그러나 그 안에서도 성과를 올리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틀리다.

만약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하여 대단한 스타트업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계층이동은 가능할 거다.

하지만 그 계층이란 아직은 한 세대에 불과한 것이라 정통적 방식의 계층에 도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계층의 사다리를 어떻게든 올라 거려고 애를 쓰는 걸까?

인간의 본능일까?

왜 우리는 현재의 자기 위치에서 행복을 추구하지 못할까?

가끔, 현재 자신이 가진 자산을 바탕으로 동남아처럼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생활비가 적게 드는 나라에 가서 머물며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경우를 보면, 그 또한 그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계층’에 해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과 동일한 무게의 근로를 제공하고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계층에 머물며 지내야 한다면 굳이 타국에서?라는 결론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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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모든 SKY 출신이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가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공부에만 익숙해진 사고방식 때문에 보편적인 사회생활에 미숙한 경우도 적지 않으니.

계층의 사다리가 얼마나 견고한가에 대해 한 가지 사례를 옆에서 지켜본 일이 있었다.

서울대를 나오고, 유명 기업에 들어가고, 그 기업에서 최상층에 올라가서 기업에 수조 원 가치의 수익경로를 창출하고, 그래서 결국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명목 좋은 ‘상임고문’ 자리로 밀려나며 자신이 창출한 기업 수익의 티끌에 해당할 만한 정도 퇴직금으로 마무리를 한 경우다.

만약 그 사람이 그 기업에 어떤 식으로든 친인척으로 얽혀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 기업에 기여한 공로를 봐서라도 작은 계열사 대표직이라도 주어졌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당사자 역시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닿을 수 없었던 SKY다.

어쩌면 SKY는 지극히 상징적인 하나의 명분이고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존재하는 ‘계층’을 유독 한국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라갈 수 ‘있고’ 올라가야 ‘한다’라는 강박에 휘몰린 것 일지도 모른다.


초등학생이 밤 11시까지 학원으로 내몰린다는 경우는 강남구 대치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도 있었다. 심지어 그 아이는 그렇게 학원을 다닌 결과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나에게도 새로운 숙제가 하나 생겼다.

이토록 막연한 미래를 바라보며 아직은 어린아이에게 SKY의 꿈을 실어줄 것인가.

아니면 다르게 갈 수 있는 많은 길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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