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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9

by 능선오름


벤담은 그의 생애와 전 재산의 대부분을 이 파놉티콘 계획을 실현하는 데 바쳤다.

1794년 그의 제안이 영국에서 받아들여져 런던 근교에 감옥 부지를 마련하고 토지를 매입하지만,

런던 의회가 보상금을 너무 적게 주는 바람에 벤담은 파산하고 말았으며

그에 따라 감옥 건축 계획도 성과 없이 지연되고 말았다.


‘Panopticon’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all, every, whole, "를 뜻하는 ‘pan’과 ‘보다’를 뜻하는 ‘opticon '이 합쳐진 말이다.


파놉티콘의 개념은 일종의 이중 원형 건물이다.

원형 건물의 외곽에 수용 감옥이 배치되고 건물 중앙 원형 구조물에 감시자가 상주한다.

수용인원들은 감시자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고 감시자는 어느 방향이든 볼 수 있다.

즉 감시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감시되는 상태를 그 핵심 개념으로 한다.


벤담은 파놉티콘의 개념을 군대의 병영, 병원, 수용소, 학교, 공장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리주의자인 벤담의 관점에서 최소한의 비용, 최소한의 감시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파놉티콘은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였다.

벤담은 학교, 공장, 병원에까지 파놉티콘이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파놉티콘의 아이디어는 그 기원에서 볼 때 공장에서 감옥으로 넘어온 것이다.


새뮤얼 벤담이 러시아에서 포템킨 왕자를 도와 해군이 배를 만드는 일을 관장하고 있을 때,

수많은 미숙련 노동자들이 바글거리는 조선소를 소수의 숙련 노동자들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들의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업장 구조를 설계했고,

벤담은 동생의 작업장을 방문했다가 효과적인 감시 체계를 목격하고 이를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감옥의 개혁에 적용했다.


벤담에 의하면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교도관의 감시 시선을 내 화해서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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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의 개념은 실제 감옥 건축에서보다 철학적으로 더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에서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부활시키고 고찰하였다.

푸코에게 있어서 파놉티콘은 벤담이 상상했던 사설 감옥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건축물이었고,

군중이 한 명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한 명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규율 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고 동시에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이었다.


푸코의 파놉티콘은 현재 정보화 시대의 '전자 감시'와 매우 흡사하다.

파놉티콘에서 고찰한 푸코의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며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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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이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던 파놉티콘은 현대에 이르러 구현이 된다.

그것도 공간이 아닌 기술적 방법으로.

감시 카메라가 가득한 공간들이 넘쳐나므로 이제 권력은 시선을 가진 자 에게 옮겨간다.

벤담이 최초 고안했던 공장, 학교 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감시가 필요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막는 방법으로 각종 카메라가 일상을 생중계한다.

그리고 그 영상들을 채집하고 소유하는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이제 공간이라는 개념은 건축적이고 공간 지각적인 제한에서 벗어나 사이버 공간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즉 시선은 권력이라는 전통적인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오래전 B급 영화 포트리스에서는 미래 세계의 감옥이 시선의 감옥이라는 사실을 표현 한 바 있었다.

시선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물리적 공간 이외에 시선이 이르는 공간의 범위도 중요하게 되었다.

이 정도쯤 되면 우리는 ’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이외에도 시선의 공간,

나아가서는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가상의 공간이라고 해도 그 공간을 우리가 실제 공간과 큰 경계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은 더는 ’ 가상공간‘은 아니지 않을까.


사르트르의 '닫힌 방'이라는 희곡은 인간의 심리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스스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오래전에 읽었던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작품의 원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른바 '시선의 지옥'이라는 설정이었는데,

좁은 정방형의 방에 눈이 네 개가 있다.

눈동자 여덟 개, 즉 네 쌍의 눈이다.

이 눈은 눈꺼풀이 없어서 영원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아야 하고 입이 없으므로 대화도 불가능하다.

얼굴도 몸도 없기에 성별도 모른다.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네 쌍의 눈은 감을 수도 없는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며 영원히 의혹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야 한다.

현실적은 아닌 작가의 설정이었지만 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끼쳤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지옥도 그렇지만 무언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청난 괴로움이 아닐까.

스스로 마음의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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