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의 아이러니
2차 대전 이후에 권력을 건축에 반영한 유명한 예가 있다면 단연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대통령 궁전이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자신의 전당으로 지은 문화궁전.
세계에서 단일건물로는 두 번째 규모이다.
첫 번째가 미국의 펜타곤이라고 하니 그 속이 미로와 같다는 말을 이해한다.
보통 차우셰스쿠 궁이라고 불린다.
이 궁전은 2조 원을 들여 5년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우셰스쿠의 부인인 엘레나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궁을 보고 남편에게 우리는 더 크고 세계적인 규모로 짓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광각렌즈나 파노라마가 아닌 다음에는 건물 전체를 한 번에 잡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고 장대하다.
이 거대한 건물을 짓느라 부쿠레슈티의 역사적인 중심 지역 20%가 파괴되었고, 1984년에서 1989년에 걸친 루마니아 국민총생산의 30%가 여기에 소비되었다.
의회 궁전(이전에는 '인민의 집'이라 불렸다)이 지어지게 된 발단은 1977년 지진이 일어나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면서부터였다.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인 아르세날 언덕에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차우셰스쿠는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 공모전을 열었다.
5년 후, 젊은 무명의 건축가인 안카 페트레스쿠가 선정되었다.
작업은 1984년에 시작되었다.
그 후로 5년간, 노동자들은 교대해 가며 하루 24시간 내내 애썼다.
건축 현장에는 항상 2만 명 이상의 일꾼이 상주했다.
비용이 아낌없이 사용됐고, 루마니아에서 생산된 자재만이 사용되었다.
그러는 동안, 루마니아 국민은 사실상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14층의 이 건물에는 3,200개의 방이 있으며, 3,500t의 크리스털과 90만 톤의 나무로 이루어졌다.
차우셰스쿠가 1989년 처형당할 무렵, 건물은 80%가 완공되어 있었다.
그의 사후 10년간 이 건물을 대체 어떻게 할까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이 건물은 콘퍼런스 센터이자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2005년, 페트레스쿠는 건물의 심장부에 의회실을 완성하여, 마침내 21년간의 말썽 많고 논란이 분분했던 건설 과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차우셰스쿠는 궁전을 짓기 위해 지질학자와 건축학자들을 모아 땅을 고르라고 하는데
지진이 많은 루마니아에서 지진을 피할 수 있는 단단한 땅을 고르라고 했다.
학자들이 고르고 보니 부쿠레스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부쿠레스티의 부유하고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많은 지역이었다.
차우셰스쿠에게 조심스레 그 지역은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부쿠레스티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게다가 궁전의 중심부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에 다른 건물들이 거치적거리자 미련 없이,
오래되었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포함하여 말끔하게 밀어 버린다.
그 덕분에 궁의 정면 도로는 그야말로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물론 독재자의 말로는 과거고 현재고 다 비참하게 마련이고, 결국 1989년에 시위대와 정규군에게 붙잡혀 총살형을 당한다.
차우셰스쿠와 히틀러의 차이라면, 히틀러는 건축과 공간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반으로 사용하였고 그만큼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었으나,
차우셰스쿠는 건축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히틀러는 어느 정도 건축에 대한, 공간에 대한 속성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면,
반면에 차우셰스쿠는 건축과 공간에 대한 천박한 무지함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움의 혜택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소년 시절 공산당에 입당하여 운 좋게도 세월의 변화와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권력을 쟁취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반려자였던 엘레나 역시 그보다 오히려 더 한술 뜨는 무지와 권력욕에만 월등하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불행이었다.
본인이 어리석다 해도 주변에서 그를 일깨워줄 아무도 없었다는 것.
그것 때문에 1960~80년대라곤 믿기지 않을 황당무계한 정책들과 무자비한 건축을 밀어붙였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데도,
지금 현재는 루마니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 장소 중 하나를 제공한 것이라고 할까.
그런 면에서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만약 차우셰스쿠가 엄청난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고,
말도 안 될 건축 계획으로 구도시를 몽땅 밀어내면서까지 대통령궁을 으리으리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그가 독재 후에 남긴 것이 별로 없었을 테니까.
건축과 공간을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지 못한 권력자들의 말로는 늘 비참하게 끝나는 것이 그나마 인과응보라고나 할까.
고대로부터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치적과 권력을 나타내기 가장 좋은 수단은 대형 건축. 토목공사였다.
그런데 이 과정들이 단지 노예들로 충당된 적은 드물다.
고대의 이집트 피라미드도 노동자에게 월급을 줬다고 하니까.
초대형 건축물을 고대의 낙후된 기술과 인력으로 지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농업을 위주로 발달했던 국가일수록 농사철에 수많은 인력을 동원했다면 당연히 그 나라의 먹고사는 문제에 큰 지장을 줬을 것이다.
그런 문제가 없으려면 당연히 농산물의 생산이 풍족했어야 하고 국가재정이 부유했어야 한다.
이걸 무시하고 초대형 건축물을 지으면 당연히 그 정권이 몰락했고, 반란이 일어났었다.
그러고 보며 현대에 괴담으로 떠도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 '라는 것도 다 인과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