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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말을 거네 12

현대건축의 '신'?

by 능선오름


현대건축을 이야기하자면 건축학도 둘에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건축과 무관한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나,

아직도 국내 건축 관련 학자나 전공자 일부에겐 그야말로 ‘건축의 신’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 사람이 왜 현대건축의 조상 격으로 인식이 되는 것일까.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서북부에 있는 뇌샤텔 주의 프랑스 국경에서 500km 떨어진 쥐라 산맥에 있는 라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20년 샤를-에두아르 잔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이름으로 첫 기사를 작성하는데, 이 필명은 그의 외할아버지의 이름인 "르 르 코르뷔지에"(Lecorbésier)를 변형한 것으로,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에 입문하게 된 이유는 그가 진학했던 미술 학교 교사의 조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 가서 현대건축의 장인들을 만나 배우고, '동방여행'이라고 불리는 여행을 통해 발칸반도와 그리스 등 고대의 건축들을 접하면서 그의 건축 기조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생각해보면 거의 '신화'급 이야기이긴 하다.

1965년 8월 27일 르 코르뷔지에는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프랑스 로크브륀 카프 마르탱에서 지중해로 수영하러 들어갔다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의 친구이자 당시 프랑스 권력의 핵심이었던 샤를 드골에 의해 르 코르뷔제는

그의 장례식은 1965년 9월 1일 루브르궁 안마당에서 치러졌다.

루브르궁이 어딘가.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만큼 '건축가'가 국가와 전 세계 인사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나.

그것만으로도 그가 '신'급으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수련을 받은 건축가가 있었으니 작고한 '김중업' 선생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사망은 세계적으로 문화와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대통령 린든 존슨은 "그의 영향은 전 세계적이고 그의 작품들은 우리 역사상 매우 적은 예술가들만이 가진 영원한 특성들을 갖고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소련은" 현대 건축은 가장 위대한 거장을 잃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TV 채널은 추모식에 맞춰서, 도쿄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을 방송하였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미디어에 의한 오마주였다.


르 코르뷔지에가 현대건축에 대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이용한 자유로운 입면과 자유로운 평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건축 이전의 건축물들은 구조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석재를 쌓거나 벽돌을 쌓아 건축물을 만드는 방법에서는 항상 건축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 두꺼운 벽과 두꺼운 기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벽면에 넓은 창문을 만들 수 없었다. 자칫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던 첨단기술이 바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였으며 르 코르뷔지에는 그것을 활용한 건축들을 선보였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돔 이노(Dom-ino) 시스템이다.


Dom-Ino-House_drawing_2_1915.jpg


이렇게 콘크리트 기둥과 슬라브 (바닥판) 만으로 공간이 구성되는 건축형태는 과거 유럽의 건축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것은 동양의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구조와 유사점이 있다.


처음 발상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에 적은 자본으로 효율적으로 집을 짓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가 고안한 시스템이다.

자동차 뼈대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명한 것으로 얇은 바닥 판, 판을 지탱하는 기둥(철근과 콘크리트),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집의 구조로 고안하여 간편하고도 실용적인 건축방식이다.

이 구조를 보면, 지금 현대의 거의 모든 건축에 사용되고 있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적은 재료와 비용을 들여서 과거 어느 시기에도 없던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의 건축들은 대부분 축조 술에 따라서, 높이가 높아지고 바닥 면적이 늘어날수록 많은 기둥과 벽체들이 필요했고 그 두께도 건물 높이가 높아질수록 점점 두꺼워졌다.

위에 쌓이는 무게들을 지탱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성된 공간들은 들인 노력과 비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옹색한 공간을 제공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발명한 돔 이노 시스템은 그러한 공간적인 제약을 없앴다.

그의 작품 중 하나 인 사보아 주택은 1928년 완성된 건물이다.


2731294557BE74A028.png 빌라 사보아의 내외부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방송 같은 데서 봤음직한 건물이다.

게다가 이 건물이 만들어진 시기는 무려 1920년대이다.

일제강점기였다는 이야기다.

놀랍다 못해 자괴감이 드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데, 그건 따로 한 장을 구성할 정도이니 뒤로 미룬다.


그 시기의 우리나라 사정을 돌이켜본다면 얼마나 발전된 시스템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주택을 통해서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주창한 자유로운 평면, 입면을 보여 주었다.

스위스 10프랑 지폐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진이 찍혀있다.

2 (1).jpg


개인적으로 3년 전 스위스 출장길에 아무리 바빠도 르 코르뷔지에의 고국에 왔으니 어떻든 그의 기념관을 가보자고 출발 전부터 결심했었다.

그렇게 트램을 타고 물어물어 간 기념관은 생각보다 참 초라했었다.

심지어 동네 주민에게 물어봤는데도 르 코르뷔지에를 잘 모르더라는…….

발음 탓이었을까.

지폐를 보여 주었는데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잘 몰랐다.

게다가 막연하게, 스위스 주택가가 대부분 그렇듯 낮은 건물들이 많으니 그 중 어딘가 높은 건물을 찾던 게 문제였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마주한 건물은.... 작았다. 공중 화장실만큼이나.

게다가 문도 닫혀서 내부를 볼 수 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지폐에 기록될 정도의 인물에 대한 기념관이라면 흠, 좀 더 요란하지 않았을까?


1772330D4ABE2DA644.jpg Höschgasse 8, 8008 Zürich, 스위스


정작 그 기념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중국 정원 건물이 더 요란하고 거대한 규모라서,

머나먼 유럽 구석 동네에 거창한 중국 건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흐름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끔 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업적이라면 또 하나, 지금 형태의 아파트 문화가 자리 잡게 만든 최초의 아파트형 건물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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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테 다비타시옹 - 프랑스


이 건물 또한 2차 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현타가 온다.

르 코르뷔지에에 대하여는 책 여러 권으로 발간된 일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가 현대의 공간에 미친 큰 영향은 그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전과정에서 피해?를 본 건축주들 또한 없지 않으니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결코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건축과 무관한 보통 일반인들이 르 코르뷔제를 접 한일이 있을 것이다.

바로 아래의 소파.


cassina-lc2-sofa-ambiente-02_zoom.jpg


캡처.JPG


나름 고급스러운 매장이나 미니멀 디자인을 자랑하는 공간에 자주 등장하는 저 소파.

저 소파 또한 1920년대 디자인된 것이다.

무려 백 년이 넘은 의자가 지금도 널리 쓰인다.

게다가 초고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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