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국내외 건축 관련 학자나 전공자 일부에겐 그야말로 ‘건축의 신’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앞서 글에서 소개한 프랑스 라 쇼드퐁에 위치한 빌라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현대건축의 5원칙을 적용한 시험적 건물로도 유명하고,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이 성지순례를 하듯 프랑스에 가게 되면 반드시 들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그 집을 별장으로 의뢰했었던 사보아 씨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관 입구에 물이, 새고 경사로에도 물이 새고, 주차장 벽은 완전히 젖었습니다.
게다가 비가 올 때마다 욕실도 항상 물이 샙니다.
천장에 있는 창문으로도 물이 들이칩니다.
정원사 숙소에 있는 벽도 흠뻑 젖었다고 합니다. _1936.09.07 유제니 사보아 드림’
당시 르 코르뷔지에는 이 건물에 이전 주택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조형을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수평으로 길고 넓게 펼쳐진 입면. 그리고 건물의 폭만큼 열린 창문들.
건물 일 층의 큰 부분을 들어 올린 필로티.
거기에 내외부 벽은 순백색 석고 칠이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개방된 형태의 건물에 건축가들은 열광했고 비슷한 유형의 건물들이 복제되었다.
문제는 당시 건축 기술이 급격한 형태 변화를 이길 만큼 발전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방수가 잘 안 된 옥상의 평평한 지붕은 비가 오면 물바다였다.
그 이전 주택들은 간단히 경사 지붕으로 방수문제를 해결했었다.
외부와 중간 완충지대 없이 이 층 전면에 둘려진 유리창은 햇볕이 집안 곳곳에 심각하게 들어오게끔 했다.
에어컨 같은 시설도 없던 그 시절에 말이다.
게다가 비라도 오면 물받이도 없는 창문으로 물이 들이쳤다.
당시의 건축기술들로 해결이 될 수 없었을 문제들이 가득했다.
당시의 르 코르뷔지에는 사회주의자였고, 집은 ’ 삶의 기계’라고 할 정도로 단순화와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 건축을 주장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빌라 사보아는 새로운 방식의 건축을 하다 보니 더 큰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내장재로 사용한 순백색 석고는 회반죽처럼 겹으로 바르는 방식인데 알프스 산맥에서 나는 재료를 써야 했다.
그 때문에 이전 방식으로 지은 석재 건축보다 훨씬 비싸게 지어야 하는 딜레마가 생겼다.
당시 일화로, 르 코르뷔지에는 그 집안에 들이는 가구조차 건축주에게 제한시켰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들이는 가구가 전체 미관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일화는 매번 비가 새고 침대조차 젖는 경우가 많아서, 집주인의 아들이 폐렴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실제로 사보아 씨는 르 코르뷔지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는데,
그 와중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랑스가 점령당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고도 한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서 빌라 사보아는 기념비적 건물이자 건축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었지만,
정작 그 건축을 의뢰했었던 사보아 씨에겐 저주받은 건물에 다름 아니었던 거다.
프랑스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건축가에게 믿고 건물을 맡겼던 사보 아씨는 아마도 르 코르뷔지에를 절대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유명한 건축가,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들에 대하여 건축학도 들은 열광하고 아직 오랜 기간 그 사진들이 떠도는 것은 맞지만,
그중 어떤 건축물 들은 소송을 당하거나 건축을 의뢰했던 건축주들이 불행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 낙수장‘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카우프만 하우스는 폭포 위에 자리 잡은 주택으로,
미국 건축가 중 으뜸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이다.
어느 정도로 유명했느냐면 나의 어린 시절에 연말에 집에 걸리곤 하던 조악한 달력에도 그 사진이 있어서 어린 날 기억에도 '멋있다'라고 생각했었던 건물이니까.
사진으로 보는 낙수장은 정말 로망이다.
건물 아래로 흐르는 냇물. 둘러싼 숲.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온종일 쏟아지는 물소리에 귀신이 나온다. 라거나 신경쇠약에 걸렸다거나, 실제로 정신병에 걸려 죽은 소유자도 있었다고 한다.
거주자들이 신경통으로 고생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기술로 방습이나 방음, 여러 가지 요소들이 부족했을 것이니
온종일 집안에 가득한 습기와 냉기로 신경통에 걸릴 법한 일이다.
지금과 같이 발달된 난방체계나 방음 기술이나 이런 것들이 없던 시대이므로 건물의 외형은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해도 사실 거주성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현존하는 최고 건축가 중 하나인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MIT 공대 경우,
해체주의를 표방한 건축가의 의지대로 한껏 비틀린 건축의 외피가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실제 내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경사진 벽과 창문 등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MIT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를 업무 태만을 이유로 제소했다. 캠브리지에 위치한 MIT의 다용도 건물 ‘레이 & 마리아 스테이터 센터(Ray and Maria Stata Center)’가 치명적인 결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2004년 봄, 찬사 속에 개관한 이 건물은 비관습적인 벽과 급진적인 앵글로 프랭크 게리다운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MIT는 이 센터가 개관 직후부터 누수, 균열, 배수관 역류와 같은 문제에 시달렸다고 토로한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센터의 야외 광장. MIT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다른 업체에 야외 광장 재건축을 의뢰했고, 이렇게 지출된 비용만 150만 달러에 이르렀다. MIT는 제소장을 통해 건물의 설계를 맡은 게리 파트너스와 건축을 맡은 건설사 비컨 스칸스카(Beacon Skanska)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단언하며, 건축 및 디자인 상의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
그냥 봐도 가구를 놓기에도 꽤나 불편했을 공간이 상상되고,
여기저기 튀어나온 벽체에 머리를 박는 일들도 있지 않았을까.
르 코르뷔지에의 경우에 빌라 사부아에서 구상된 필로티 ( 필로티(프랑스어: piloti) 또는 피어(영어: pier)는 원래 갱(秔)’, ‘각주(脚柱)’, ‘열주(涅柱)’ 와 같이 받치는 기둥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주택, 아파트, 빌딩 등과 같은 건축물에서 기둥과 천정이 있고 벽이 없는 공간을 말한다.
통상 건물 1층에 있고 건물로 지상을 점유하지 않으며 교통을 방해하지 않는 특색을 가진다.
지진에 취약한 점, 내화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화재 발생 시 피해가 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주로 로비 또는 주차장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에서는 농수산물의 말림 등 가공에도 활용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건축사가 설계하고 지자체가 인정하면,
건축 공간에서 제외되어 연면적 사용제한에 따른 총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위키백과 -
이는 이전 건물에서 보기 어려운 구조로,
당시 자가용이 일반화되어 있지도 않던 사회상을 고려하면 미래를 염두에 두고 주차공간으로의 의미를 두었다는데 높은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그 이전에 르 코르뷔지에가 동북 아시아권에 건축 여행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어쩌면 동아시아에서 흔히 쓰이던 구조,
처마가 있고 1층은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개방된 공간에 2층에서 실 활동이 이루어지는 양식
( 보통 정자 건물이나 사찰의 누각이 그렇다)을 어느 정도 디자인적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거기서 얻어지는 정보들을 통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문명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탓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명한’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하여 아무런 비판적 시각이 없이 무슨 사이비교도처럼 무작정 떠받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내 의견으로는 모든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신전이나 무덤 같은 일부러 특별한 용도를 위해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계획한 경우를 빼고 말이다.
건축과, 건축행위로 만들어진 공간들은 다름 아닌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게 본질이다.
건축은 조형미술이 아니어서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축 말학 중의 말학이 내가 감히 대가들의 건물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절대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도는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건축주가 피해를 볼 이유는 아니라는 뜻이다.
사용자가 사용을 거부할 정도로 왜곡된 건물이란 조형물도 아닌 이상 그저 폐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로운 시도와 기술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하며,
건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술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