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13

할 수 있을 때 해라

by 능선오름

13

딸아,

유전이라는 게 유전자의 묘한 인과뿐 아니라 부모의 성향이라는 것도 유전되는 건 도리 없는 일 같다.

아빠가 너를 봐도, 아빠를 닮았으면, 엄마를 닮았으면 싶은 부분은 안 닮고 대체로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들을 닮아가는 걸 보면 그렇다.

아빠의 부모님은 일평생 남들 다 가는 벚꽃놀이 한 번을 간 일이 없던 분이다.

그분들이 감성이 없고 철저하게 도락을 외면하는 타입이어서는 아니었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게 전 국민이 그러하던 시절에도 주변 이웃들은 꽃피면 꽃구경 갔었고 단풍 들면 단풍 구경을 다니곤 하는 걸 봤었다.

그러나 아빠의 부모님은 절대 그런 걸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커서야 그게 부모님의 본심이 아니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나중에 살림이 좀 나아지고 안정이 되면, 나중에 더 아이들이 커서 좀 마음의 짐이 덜어지면 이었다는 걸. 정말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아빠의 아버지는 평생 일만 하시다가 위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아빠의 어머니는 나이가 드셔서 거동이 불편해져 남들 다 간다는 제주도 한 번 못 가보시고 일생을 마치실 것 같다.

그전엔 몰랐던 부모님의 희생 아닌 희생이, 내게도 유전이 되어 그랬는지 아빠도 좀 그런 면이 있다.

머나먼 프랑스 파리, 스위스, 홍콩, 일본 등등 출장을 가서도 정말 ‘일’만 하고 돌아오곤 했다.

스위스에선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저곳을 보긴 했으나, 작심하고 본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중간중간 빈 시간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곳만 가서 보았던 게 전부다.

그러니 파리에 가서 그 유명하다는 에펠탑 사진은 버스를 타고 지나치며 찍은 게 전부이고 루브르 박물관 역시 버스 창을 통해 찍은 사진이 기억 전부다.

일본과 홍콩을 꽤 많이 다녔다지만 그곳의 기억들은 일한 기억이 전부다.

작심하고 제대로 여행 한 번 해본 일이 없구나.

아빠 또한 나중에, 상황이 여유가 생기면, 좀 마음이 편해진 상태가 되면.

이게 대물림 아닌 대물림이 되어 여전히 아빠 선대의 미련함을 반복하고 있구나.

하고 싶은 그거 다 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면 일은 언제 하고 돈은 언제 버나.

이게 아빠 부모님의 인생철학이었고 아빠 또한 비슷한 철학을 대물림받았다.

그러나,

아빠의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지만 그런데도 뭐 하나 제대로 챙길 상황이 안되었었다. 예기치 못한 사회적인 상황들이 생기고, 또 질병이 생기고.

아빠 또한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선대와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빠는 언젠가 네가 자라면,

언젠가 시간이 좀 지나면 어디고 저기고 가보리라 마음은 잔뜩 먹었었지만,

지금은 아빠 생전에는 그 가고픈 곳들을 못 가보겠구나, 절반은 체념하며 티브이에 나오는 세계여행 다큐멘터리 따위나 열심히 바라보고 있구나.

이러다 나이가 더 들어 기운 빠지면 아마 후회를 하며 늙어갈지도 모르지.

딸아.

너는 부디 그렇게 살지 말아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배우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해라.

아빠가 뒷받침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방법은 만들면 된다.

그리고 너의 시절에 할 수 있는 시기에 하지 못한 것들은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없고 나이가 들면 더 힘들어서라도 못한다.

그러니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은 네가 할 수 있을 때 뒤돌아보지 말고 하여라.

네가 굳이 할 마음이 없고 일부러 그럴 마음도 없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이 그렇고 지금 돈이 좀 모자라고 지금은 아직 주변의 여건이 안 되고.

그건 십 년 후라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온다.

코로나로 거의 삼 년 모든 여행이 강제 중지될 걸 누가 알았겠니.

그러니 너는 개의치 말고 네가 하고픈 것을 하거라.

단지 여행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었던 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건이 되고 상황이 되면 해야지 하고 미뤄둔 일들은 그 여건이 설사 되었고 상황이 무르익었다고 해도 그때는 네 체력이나 또 달리 변해버린 상황들 그 때문에 못 하게 된다.

그러니 딸아.

네가 진정 원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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