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라때는 말이야 14

바뀐다

by 능선오름

14

딸아,

날씨가 추워졌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도 하고, 체감온도 15도라고 라디오에서 요란하더라.

춥지. 추운 날씨인 거 맞다.

그래서 아침에 아빠가 네게 말했었지.

핀란드 같은 북구권에 있는 나라들은 대체 매일 더 추운데 어떻게 살지? 하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도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영하 십몇 도 같은 기온에는 별생각이 없었다는 기억이 나는구나.

강원도 출신은 아니지만, 아빠가 군 생활을 하던 지역들이 철원, 화천.

평균적으로 국내에서도 몹시 추운 지역이었던 탓일 거다.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오 년이란 기간을 보내고 보니,

게다가 오래전이지만 당시 군대의 시설이라는 게 너무 열악했었어서, 추위는 정말 제대로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과장 없이,

겨울에 금속으로 만든 부대 막사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으면 순간적으로 얼어서 쩍 달라붙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 추운 겨울에 겨우내 녹지도 않는 눈이 쌓이고 쌓인 허허벌판에서 난방장치 하나 없이 얇은 침낭과 군용 모포와 군용 천막만으로 몇 주간 버텨내는 동계훈련이란 걸 하면서도 내복도 안 입고 홑겹 군복만 입고도 지냈는데.

아빠의 성장기엔 다들 얇은 블록으로 만들어진 집 벽에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했었으니 당연히 겨우내 내복을 입었고 목욕이라야 동네 목욕탕 말고는 집에선 얼굴과 발이나 닦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으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는 기억이 있다.

대중교통도 지금보다 많이 안 좋았었고 눈도 지금보다 많이 내려서 겨울에는 늘 질척이는 눈길을 걷고 걸어 학교에 다녔었던 기억도 있고.

아이들 중에 귓불에 동상을 입었거나 발이 동상에 걸린 아이들도 여럿이었으니 사실 지금의 겨울나기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지.

한겨울에도 집에서 반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오히려 주변 여건은 예전에 비할 바 없이 좋아졌고 그 당시에 겨울옷이라는 게 기껏 솜을 잔뜩 넣은 점퍼였는데 지금은 거위 털 패딩까지 입고 다니는데도 왜 이렇게 추위를 타게 되었을까.

결국은 나이 탓일 거다.

그리고 몇 걸음만 걸어도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탈 수 있는 환경 탓일 거다.

아빠도 달리 움직이지 않는다면 눈이 내리나 비가 내리나 바람이 부나 지하층 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타고 다시 사무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승강기로 올라오면 며칠이고 바깥바람이라곤 쐴 일이 전혀 없는 일도 있으니.

그렇게 해서 편안함과 안락함은 얻었으되,

과거에 견뎌낼 수 있던 가벼운 추위에도 움츠러들게끔 신체와 정신은 퇴보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군 시절 그 엄혹하던 추위에도 잘 견디던 그때의 단련된 체질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회생활에 적응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그리했다면 지금의 나이에도 어느 정도의 추위쯤에는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생활화가 되었을 텐데.

지금도 가끔 철원 같은 곳을 가보면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꽁꽁 언 겨울의 황량한 동네들에서 얇은 옷만 걸치시고도 멀쩡하게 일하시고 움직이는 걸 보면,

결국, 사람은 적응하기에 따라 바뀌고 바꿀 수 있음을 본다.

반면에 아빠는 부모 마음이다 보니 네게도 늘 최대한 따뜻하게,

최대한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애써왔지.

그러다 보니 너 또한 조금만 온도가 변해도 훌쩍거리고 대번에 감기에 걸리기도 하지.

네가 추위에도 더위에도 약한 체질이 된 것은 순전히 아빠의 과보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지만, 아빠는 아직은 어려만 보이는 네게, 차마 춥고 더운 환경을 버텨내도록 강제하지는 못하겠구나.

이건 아빠가 정말 잘못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이 세상의 날씨를 조율하는 신도 아니고,

한평생 너의 주변 상태를 다 돌봐줄 수 있지도 않을 텐데 네가 스스로 잘 이겨내도록 만들어주는 게 사실은 가장 좋은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단한 결심으로 너에게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아빠의 유약함이겠지.

딸아.

아빠도 보통의 인간이고 그런 유약한 마음으로 너를 키워가는 거다.

그러니 어렵겠지만 너도,

일정한 순간이 되면 아빠의 유약한 마음에서 비롯된 안정되고 안락한 환경들을 조금 벗어나서 스스로 추위도 더위도 겪고 이겨내고 적응하는,

그런 단단한 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빠의 경험으론 아빠도 원치 않았지만, 군대에서 강제로? 적응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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