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하고 쌓인 눈을 기대해 보았는데 대지는 촉촉하게 평안함
나와 띠동갑 아래아래 또 아래 친구들은 며칠 전부터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설레며 계획하고 기다려왔겠지. 나도 기다려왔다. 그다음 날 빨간색 글씨를 쉬는 날을, 어느새 경이로운 의미보다는 나의 안위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종교가 불교니까 그렇겠지 하겠지만, 세례를 받은 사람임을 고백한다. 급식이 맛있어서 학교에 간다는 친구와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닐까? 이유가 어쨌든 둘 다 행복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의 결은 달라도 좋은 날은 행복한 마음으로 통하게 된다.
직장에서 띠동갑이상인 동료와 협력해서 일하고 있다. 서로 의견이 다름을 느낄 때도 있다. 그때마다 당연히 다르지 하고 생각하고 인정하다가 문득, 저 동료가 그동안 나를 맞추느라 애쓴 건 아닐까? 뒤돌아봐졌다. 왜냐면 나는 두리뭉실하며 좋은 게 좋음이라는 형식으로 아름답게 결론 맺기를 좋아한다. 외적으로는 괜찮지만 같이 부딪히며 일하는 사람은 나의 이중성과 변절된 모습에 가끔 욱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사회생활 속에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찾지만 내 모습이 과연 어떨까? 다시 생각해 보게 끔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함께하는 동료에게는 진심으로 대하고 싶은데 혹여 오해가 생길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입장을 말하다 보면 변명으로 들릴 테고, 말이 많아지면 실수는 따라오게 된다. 어느새 나는 설득을 하고 조언처럼 포장해서 어른답지 못한 대화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말을 아꼈다. 시간이 간격을 좁히겠지. 조금 내버려 두자. 그럼 둘 다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겠지. 객관적 통찰이 있으면 감정은 걷어지니까 서로를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젊은이에게 때로는 말보다 금융치료가 좋다고 한다. 직장동료에게 금융치료는 어려우니까 그 동료에게 치킨 쿠폰 쏴야겠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아, 집에서 먹든, 팔아먹든 내 알바가 아님을 알고)
그리고 나는 작은 행복에 젖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은 달라도 그날은 행복한 날이다. (축복 가득한 날이다.)
의견은 달라도 이해의 노력이 있으면 가는 방향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