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다 덮을 수 있게
오늘은 눈뜨자마자 생각난 단어가 복수다.
내가 어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기에
"복수했다"라는 단어가 스쳐갔을까?
이 고요한 아침을 칼날의 번득임으로 가르다니 아쉽다.
직장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내 마음의 빌런인지 모든 사람의 빌런인지 모르지만 겉치레 인사조차 편하지 않다.
그 사람이 사무실애서 나랑 친한 분한테 가서 "새해 복 많이 받아요"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은 나를 의식했고 나는 그 의식을 받아내고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속으로 콩닥거리는데 그냥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기분이 묘했다.
오잉?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슬로러닝을 하는 동안 잔상이 남았다.
가볍게 스쳐 보내거나 빠른 모드전환이 되는 편인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오래갔다.
'복을 못 받을까 봐 욕심부렸을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인사발령축하 떡들이 들어왔다.
나는 타 부서와 챙겨야 할 분들의 떡을 소분해서 직원들과 함께 나눠드렸다.
마침 그 사람은 자리에 없었고, 사무실이 다른지라 챙기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나눠준 것보다 몇 개 더 얻어 그 사람 책상 위에 챙겨놓았다.
아니, 내가 착한 마음이 생겨서 선하게 베풀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내방식의 복수였다.
'당신은 그 정도의 아량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요! 당신쯤이야'
이러면서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생각은 순간순간 일지만 행동하는 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책상에 지나가는 먼지도 닿지 않게 정성스럽게 올려놨다.
돌아서는 순간 나는 기특했다.
필요이상 집착했던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 굴레에서 벗어난듯했다.
바닥의 얼룩을 깨끗하게 닦지는 못했으나, 흐릿하게 지우고 예쁜 카펫으로 덮어놓은 기분이었다.
"그려요~ 커피랑 맛있게 드세요. 먹는 것 앞에서 차별하면 서러운 거니까?"
더 이상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는 마음도 생겼다.
요즘은 싫은 사람은 안 보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손절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은 상황에 따라 지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같은 동료면 그럴 수 있다. 평행선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서로를 0점에서 바라보면 되니까.
단순 맥락을 벗어나는 관계가 있다. 사회적 위치에서 기사에서 약자라고 표현하는 자리에 대한 예의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복수를 했다.
들키고 싶지 않고, 부질없는 전략이지만 나는 나의 문제를 그렇게 해결했다.
나에 대한 의리로 뒤에서 험담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마음은 가벼워졌다.
어느 틈새, '그럴 수도 있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게 그 사람 자유였지' 라며
가볍게 쳐내기도 했다.
그래서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했던가?
나의 복수는 이렇게 정리되고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인사로 그 사람 책상에 '초콜릿'을 갖다 놓았다.
오늘 하루 행복하라고.
나도 숨 고르기가 된 상태를 보니 잘 털어냈나 보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지나면 별일 아니라고.
죽고 사는 일 보다 심각한 일은 없다고.
지나가는 감정은 내가 잡고 있는 것이라고.
상대가 그래서가 아니라, 내가 반응해서 생긴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