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발로 잡고 뜯어먹겠지, 달봉이도 뜯는 맛을 느껴야지" 하며 달봉이에게 고깃덩어리를 준 적 있다. 아차!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고깃덩어리를 가늠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한입에 삼켰다. 중형견이라서 가능한가? 편한 대로 생각하고 뒤돌아섰다. 얼마 뒤 달봉이가 마당에서 몸을 꿀렁거리더니 고깃덩어리 그대로 게워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고깃덩어리는 아니지만 두려움과 불안, 걱정을 혼자 한 입으로 독식했다.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해도 소용없다고 여겼다. 그러다 생각과 마음이 엉켜 채기로 나오고, 두통으로도 후유증이 나타났다. 두려움은 뿌옇게 보이는 내일이다. 정면으로 보는 용기가 필요했다. 불안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조임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의 폭을 좁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걱정은 미래상황을 시물레이션 하고 나서 내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덩어리들을 '할 수 있다'로만 퉁치는 셈이었다. 달봉이가 고깃덩어리를 한입에 먹을 수 있다고 가늠한 것처럼!
두려움과 불안 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내가 존재하는 동안 세 개의 묶음은 늘 내가 들고 다닐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잘 나누고 정리하는 힘이 필요하다. 단순히 개인의 몫이 아닌 함께 하는 힘으로 나누면 가볍게 넘길 수 있다. 두려움, 불안, 걱정 덩어리는 뭉쳐있으면 안 된다. 한 사람에게는 핵폭탄 같은 존재다. 그래서 잘게 잘게 썰어내는 시간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를 3인칭으로 문밖에 세워고 나의 다른 화자와 테스형을 모시고 온다. 둘이 묻고 답하는 동안 관찰한다. 덩어리를 잘게 써는 작업이다. 해체된 잔재 속에는 불순물이 있다. 이때는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별거 아니었네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마무리는 선명해지도록 한다. 두려움의 시작은 앞이 뿌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닦아야 한다. 생각을 넓히고,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해 버리면 나아갈 길이 보인다. 생각을 넓히다 보면 불안이 적어지고, 실수를 해도 다른 대안이 있다고 알게 되면 걱정이 사라진다. 순서도처럼 'yes'가 안되면 다시 다른 값으로 대입에서 'yes'를 만든다. 내 인생의 프로그래머는 나다. 그러니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
다만, 써는 일은 혼자 하기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라는 한계를 넘어설 때 안간힘보다 융통성이 먼저일 때도 있다. 조언에서, 독서에서, 함께하는 가벼운 대화에서 덩어리를 잘게 써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다행히 앞니가 없어서 고깃덩어리는 한입에 먹지 못한다. 게다가 잘게 써는 칼질도 할 수 있다. 게다가 가벼운 인간이다. 실없는 말도 곧잘 한다. 대화하다가 왜 웃기지? 할 때도 많다.
그래서 더 웃긴다.
오늘도 하루가 열린다.
지금 마음처럼 가볍게
하루살이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