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모시고 시장에 갔다.
명절 앞이라 마트에서 만족 못하는 몇 가지를 사야 했다.
토요일과 5일장인 7일이 만난 장날이다.
많다. 물건이 많은 건지, 사람이 많은 건지 많다.
우울하거나 의욕이 꺾이는 날에 시장에 가보면 활력과 생동감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건 아름다운 포장이다. 시장을 그런 상태에서 가면 호구되거나 깔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
삶의 전쟁터 같다며 열심히 사는 상인들을 보면 칭찬한다. 나는 모르겠다. 전쟁터 속에 상인과 내가 같은 편인지 적군인지... 누구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지... 가게 앞에서 물건을 보느라 서 있으면 다 안다는 듯 "살거여? 이거 괜찮어 사!" 비슷한 또래인데 말이 오다가 만다. 세상 다 안다는 말투는 나를 세상모르는 아줌마로 만든다. 아니 그거 살 거 아네요라고 말하면 또 다른 물건을 사라고 강요한다. 부담스러워 나는 목례만 하고 자리를 뜬다. 말이 느린지라 그럴 때는 필요한 물건을 말하는 것보다 자리를 뜨는 게 빠르다. 상인은 내게 물건 팔 의욕으로 내 말의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시장은 엄마를 위해서만 간다. 야채와 수산물을 단골가게에서 사야 제대로 산다고 여기시니까 거기까지만 둘러보는 게 나의 계획이다. 엄마는 사지도 않는데 물건값을 물어본다. 나는 솟대처럼 사람들의 정수리를 구경한다. 상인과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 엄마의 가격조사 현장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엄마의 혼잣말은 상인을 궁시렁하게 한다. 작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 엄마의 소매를 당긴다. 엄마의 말도 상인처럼 거칠다. 저 쯤돼야 서로 상대가 될까? 나로서는 내돈내산에도 인내를 지불하는 순간이다.
드디어 수산물 가게에 도착했다. 친한 사인이 오고 간 뒤에 굴을 사신다. 그냥 사시면 되는데 흥정이 시작된다. 시작도 안 한 시장놀이에 나는 피곤함이 온다. 상인이 대목 앞에 가격을 깎아줄 이유가 있을까? 소라 한 개를 덤으로 얻었다. 나는 저 소라는 무조건 안 먹을 것이다.
야채가게까지 몇 고비가 더 남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조차 시장놀이에 가담했으니, 발이 밟혀도 제대로 소리 내지 못했다. 살기 위한 전쟁터가 아닌 먹기 위한 전쟁터였다. 야채가게에서는 나는 시간을 줄이려고 배추 고르기에 합세했다. 알배추라서 만만한 크기였다. 엄마는 현금으로 계산하고 그냥 돌아섰다. '그렇지 현금영수증 말하기는 무리지 그냥 짐이나 잘 들고 따라가자' 했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면 나는 아이가 된다. 엄마는 대장이 되어 상인을 관심법으로 통찰해 낸다. 그래서 '전통시장'이라고 부를까? 시장놀이에 미숙한 어른은 다가가기 어려운 걸까? 시장에서 먹는 간식이 맛있는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사 먹지 않는다. 시장에 가면 볼거리가 많아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돼버렸다. 내가 변해서일까? 시장이 변치 않아서일까?
틀린 글자를 찾느라 다시 보니 시장에 대한 불평이다. 시장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리 궁시렁대었을까? 웃음이 난다. 이건 다만 성향의 차이일 뿐이다. 시장은 일상의 반복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곳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예약되어 있다. 그래서 재밌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다만 너무 느리게 걸으면 안 된다. 분명 짐을 사게 된다. 나와 같이 말이 느리고 거절을 못하는 성향이라면.
엄마는 만족해하셨다.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겠다. 효율성도 가격대비도 아닌 사람 냄새나는 곳에서 위안을 받으셨는지 밝아보였다. 그래서 나도 시장놀이를 뿌듯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오늘 절대 소라를 먹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