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감의록

번역본 출판을 준비하며 ....

by 양심냉장고

재작년 가을 추석날, 친척 형님이 나에게 한문으로 된 고서 수십권을 건네주었다.

말년에 주변을 정리하면서 나를 떠올려 준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다만, 내가 한문에 조예가 깊은 줄 아셨나보다.

난 그저 생활 한자 정도만 읽고 쓸 줄 아는 국어선생인데 말이다.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왔다는 책들이었다.

오랜 세월이 묻어 있고 오랜 세월에 쓸려 나가기도 한 책무더기가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창선감의록'이라는 한문장편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애증의 감정이 느껴지는, 이 놈을 처음 만난 건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했다.

학교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소설인지라 익숙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필사시기가 매우 이른 1846년인지라 학술적인 가치도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난 이 녀석과 더불어 매일 밤낮 힘든 씨름을 해왔다.

한글자 한글자 다른 이본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그렇게 차이를 찾다 보니, 현재 이보다 더 오래된 이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묘한 운명과도 같은 책임감이 생겼다.

나는 이 낡은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한글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번역이라고는 한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않는 내가 무작정 번역작업을 시작했다.

폭설에 쌓인 밤에 눈길을 파헤치는 심정으로 1년이 훌쩍 지났다.

도대체 어떤 힘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단순무식한 용기였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걸린 고집이었다.

다행히도 옛날과 달리 번역을 위한 기술들이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

기존의 번역본도 참고하고 '챗지피티'의 도움도 받고, '네이버 한자검색'이라는 검색창도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런 도움들을 발판삼아 결국 마지막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책으로 출판하려고 한다.

무모한 노력이 가상했던지 어문학회의 도움도 조금 받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출판사에 최종 원고를 보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마음이라니.

원고를 보내고 나니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하나는 태산과 같은 두려움이다.

초보자가 번역한 한문장편소설이니 여기저기 오류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온다는 자부심이다.

힘들었지만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이건 감히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라고 말한 윤동주의 마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작품 하나는 남기고 간다는 뿌듯함이다.

어쩌면 아이를 세상에 내놓은 엄마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두렵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무모한 용기가 있음이 자랑스럽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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