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구 : 과학 1 인문학의 도구 과학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도 인문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도구이다.
앞에서 정의하기를, 인문학은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살다가,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탐구하는 모든 학문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 실존 등을 알아가는 것이다. 인문학을 이렇게 정의하면 얼마나 명백히, 과학이 인문학의 도구인지 알 수 있다.
천문학이나 물리학은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기도 하고, 지구과학은 지구 생태계와 환경을 연구하여 인간의 삶에 기여한다. 생물학도 인간의 기원은 물론 우리 몸의 신비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한다. 또한 동물들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화학은 모든 사물의 구성원리는 물론 우리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생필품을 만드는 데도 가장 유용한 학문처럼 보인다.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이제 문·이과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여 지도하도록 하였다. 문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수학이나 과학은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다. 특히 과학 전공 서적을 접하면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과 전공자도 최소한의 수학·과학 지식을 익히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과학은 우리 세상을 이해하는 탁월한 인문학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말 과학에 문외한이지만, 재미있고 뜻깊게 읽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머리말로 시작한다.
나, 지구, 우주 ........
그 존재를 찾아 떠나는 신비한 공식 여행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지구와 우주의 원리까지 하나의 공식 안에서 설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과학이 인간의 존재이유를 찾는 인문학의 도구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책은 우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등호(=) 기호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집필가였던 로버트 레코드는 "같음"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짧은 평행선을 사용했고, 이 기호는 물리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어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그의 공식에 사용할 수 있었다.
‘E(에너지) 개념의 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이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제본공 출신인 패러데이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자기 유도 원리'를 통해 에너지 보존 개념을 확립했고, 전자기학과 발전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패러데이가 죽기 10년 전 다윈의 학설이 등장했다. 다윈은 우리의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신이 필요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이에 반해 모든 에너지의 합은 불변이라는 패러데이의 법칙은 진실로 천지 창조는 신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신은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로써 종종 제시되곤 한다.
한편, 18세기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회계사인 라부아지에는 연소실험을 통해 'm(질량)'이 보존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처럼 질량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여전히 에너지와 질량이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들였었다. 이러한 통념을 깨뜨리고 아인슈타인은 E=mc²이라는 공식으로 통해, 에너지가 곧 질량이며, 질량이 곧 에너지임을 증명한 것이다.
에너지가 곧 질량이고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있어 중요한 척도는 ‘c²’, 즉 빛의 속도의 제곱이다. 왜 제곱이어야 하는지, 빛의 속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었는지는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라며, 어쨋든 이 제곱값은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될 때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를 생성하는지 보여주는 상수였다.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아주 작은 질량이어도 빛의 속도에 제곱을 곱하면 그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이다. 실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위력은 우라늄 1g 정도의 질량 감소면 충분했다고 한다. 다만 원자 상태에서 어떻게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여전히 힘들지만, 상수라고 말하는 이유는 빛의 속도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하다는 일반상대성 이론에 기반한다. 이러한 빛의 성질 때문에 시간이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는 현상은 물론,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것 등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E=mc²을 이용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중한 현실 속에서 가장 참혹한 형태로 드러났다. 1938년,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핵분열 현상을 관찰했고, 마이트너는 질량이 줄어들고 그만큼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통해 해석했다. 핵분열은 중성자를 방출하면서 연쇄적으로 다른 원자를 분열시켰고, 이는 곧 폭발적 에너지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한 핵무기 개발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절정에 달했다. 독일과 미국은 전쟁의 운명을 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독일은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과학자를 중심으로, 미국은 오펜하이머와 같은 과학자를 중심으로 '맨해튼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두 나라의 경쟁에서 초반부는 독일이 훨씬 앞서나간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각오한 특공대원들이 노르웨이 베모르크에 있는 중수공장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아인슈타인의 E=mc² 원리가 원자폭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오펜하이머는 물론 리처드 파인먼 등 최고의 물리학자들의 노력의 결과와 함께 그들의 인간적 고민과 결정 등이 잘 드러난다. 최종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개의 원자폭탄은 불과 몇 g의 질량 감소로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E=mc²의 실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과학자들은 이 폭발적인 에너지의 원천이 자연 속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물었다. 한때 태양은 철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졌지만, 하버드 천문대의 젊은 여성 과학자 세실리아 페인은 별빛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태양이 대부분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내놓았다.
이는 핵융합이 별의 에너지 원천이며, 바로 E=mc²가 작동하는 현장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후 과학은 원자력발전을 이용한 전기생산은 물론, 별의 탄생과 죽음과 같은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블랙홀이라는 극단적 존재의 실체에 다가섰다. 블랙홀은 질량이 극도로 응축된 천체로, 그 중력이 빛조차 탈출할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서도 질량과 에너지는 한데 얽혀 있으며, E=mc²는 여전히 그 심장부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E=mc²』는 단지 과학적 설명을 넘어,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하나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정교한지 알게되어 신비로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우연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무작정 인정할 수 없었다. 수십 억년의 시간과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 이런 현상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건 오히려 그리 과학적인 설명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우주가 수학적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롭다. 최근에는 '소수(prime)'와 관련된 '리만 가설' 관련글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이 세상이 절대로 우연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세상 모든 것이 하나의 원리로 이어져 있는 듯한 신비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 이르게 만들었다.
『E=mc²』은 리처드 도킨의 『이기적 유전자』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책들과 비교하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 및 과학분야의 고전으로 특별한 대접받는다. 또한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같은 책도 많이 팔린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들을 깊이 읽지 못했다. 우선은 이 책들이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나의 세계관과는 결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쉽게 그 내용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이 책들은 우주와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견해 만큼은 저자의 주관적 철학을 담은 과학 철학서이다. 이런 말을 하면 진화론을 거부하며 ‘유사 과학’을 추종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했다고 그 이론이 무조건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가 요구하는 주류 이론인 패러다임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사실과 진리에 부합하는 법칙임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변화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일정한 주기마다 기존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진화론'은 신자유주의 원리를 뒷받침하기에 적절한 '패러다임'으로 인정되어 왔다. 신자유주의는 진화론을 사상적인 기반으로 하는, 경쟁과 적자생존을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리처드 도킨의 『이기적 유전자』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책들은 이러한 체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서로서, '통섭'이라는 명분 아래 거의 모든 곳에서 필독 도서로 추천되었다.
‘통섭’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 및 통합하자는 것으로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서 알려졌다. 그는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사회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에 영향을 받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학계에 이 ‘통섭’의 개념을 적극 소개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시민과 같은 유명 작가도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진화론을 전제로 대한민국의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데 열심이다. 그는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와 같은 책을 통해서 인문학이 더 성장하기 위해 생물학과 같은 도구를 활용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운명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책에서는 사회생물학의 내용을 기반으로, 검사 출신 대통령의 운명을 예언했고 어느 정도 적중하여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진화론은 현대 과학계의 핵심적인 패러다임으로서, 이제는 통섭의 개념으로 인간의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하지만 진화론은 주류 패러다임이지 과학적인 검증이 완벽히 끝난 진리의 법칙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물론적 세계관이 주류로 자리 잡은 현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욕먹기 십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론적 세계관 안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나 관점도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토론의 장에 올려놓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필립 존슨의 『진리의 쐐기를 박다』라는 책의 글이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무한한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다룰 수 없음을 기꺼이 시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이러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연주의의 토대를 쪼개면서 과학과 진화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분석한다.”
최근 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분자생물학’ 수준 이상으로 생명체의 유전자를 연구한다. 진화의 실체를 밝혀, 부정할 수 없는 이론으로 확증하고 싶기 때문이다. 망원경이 발전하여 지동설을 입증했듯이 이제는 현미경으로 생명체의 근원을 추적하면 진화론도 곧 입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생명체는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할수록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E=mc²』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든 원리가 하나로 통합되는 이유는 물론, 빛의 신비나 광활한 우주의 신비 앞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우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자연과학을 토대로 하는 진화론이 현대 사회의 현상, 특히 신자유주의와 같은 철학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유물론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물신 숭배를 뒷받침하는 핵심 패러다임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적인 법칙이나 누구나 다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는 아니다.
유시민은 위에서 언급했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서 ‘한계 생산력 분배 이론’을 소개한다. 이 이론은 이미 잘못된 이론으로 밝혀졌음에도 자본가와 부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우화이기 때문에 여전히 교과서에 남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어떤 이론은 사실적인 옳고 그름보다 더 그 사회가 얼마나 더 그 이론을 필요로 하는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과학적 법칙이나 진실이 아니어도 주류 패러다임으로 포장되고 강요되기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의 성장이나 적응과 변화를 눈으로 보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당연히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한다. 마치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고 천동설을 불변의 진리로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과학계에서는 유신론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나, 지적인 존재에 의해 세상이 설계되었을 가능성조차도 과학계의 이단 취급을 한다. 아예 토론과 논쟁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지, 무질서가 증가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안에서 이를 거스르는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 우리 존재가 결코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
성경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과학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연인지 필연이었는지, 본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과학도 좀 활용해보겠다는 것이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논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연히 진화되었을 수도 있고 절대적인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은 이 논쟁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율적인 도구라는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