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독서모임 5 : '미래의 나'와 대화하며 성장하기
자기 계발서는 읽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면 무엇하나? 본인이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나는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많이 사지는 않는다. 한 권을 사더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벤저민 하디의 『퓨처 셀프』그래도 한번 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서점가에서 많이 팔리는 책으로 사람들이 좋은 영향력을 받았다고 적극 추천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퓨처셀프'는 말 그대로 '미래의 나'를 의미한다. 책의 서문에는 '현재와 미래가 달라지는 놀라운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됐다고 상상하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유튜버인 MrBeast, 본명 지미 도널드슨을 소개한다. 그는 지금은 2억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세계적인 유튜버이지만, 17세의 그는 아무런 수익도 없는, 열정만 가득한 풋내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영상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상이 공개될 때 나는 100만 명의 구독자를 만들어놓겠어.”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말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 그는 ‘되고 싶은 미래의 자아’를 현재로 끌어와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퓨처 셀프』는 많은 말을 하지만, 핵심은 '미래의 나'가 되기 위해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중요한 일을 먼저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빅터 프랭클'과 '스티븐 코비'와 같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앞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썼다.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사람이다. 프랭클은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며, 그 의미를 잃으면 현재의 삶은 죽은 삶이라고 말한다. 프랭클의 목적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원고를 다시 써서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분명한 목표, 벤저민 하디의 말을 빌리면, '퓨처셀프'를 가지고 살았기에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살아남았다.
또한, 『퓨처 셀프』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자기 계발서의 영향을 받았다. 벤자민 하디는, '미래의 나'로서 목표를 찾았다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영감을 받았다.
코비는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는 주장에서 '시간관리 매트릭스'의 개념을 제시한다. 어떤 활동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는 ‘긴급성’과 ‘중요성’이라고 보고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4가지 활동으로 나누었다.
조금 장황할 수도 있지만, 시간관리의 핵심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고등학생의 학교생활에 적용해 보자. 물론 학생이 아닌 경우라면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면 될 것이다. 고등학생들의 꿈은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한다.
활동 1은 당장 급하고 중요한 일로서,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교수업이나 학원 숙제와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활동 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그러나 활동 Ⅰ은 성과가 쉽게 보이지 않아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활동 Ⅰ의 수업과 숙제에 지친 많은 학생들은 활동 Ⅳ로 쉽게 도피한다. 당장 도파민이 방출되는 활동에 유혹을 당하는 것이다. 반면 활동 Ⅱ와 활동 Ⅲ에는 제대로 시간을 쓰지 못한다. 특히 급하지 않으나 매우 중요한 활동 Ⅱ에는 제대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 이것이 삶의 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시간관리 방법이라고 스티븐 코비는 말하고 있다.
한편, 스티븐 코비는 실험을 통해서도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른바 ‘큰 돌멩이 법칙’이다. 어항에 돌과 자갈과 모래와 물을 다 넣으려면 큰 돌부터 넣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물과 모래부터 채운다. 중요하지 않은 급한 일들에 연연하는 것이다. 그러면 큰 돌은 절대로 넣을 수 없다.
이것도 역시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에 적용해 보자. 학교수업과 단기적인 수행평가는 ‘큰 돌’과 같다. 학원수업과 숙제는 ‘자갈’로 볼 수 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학원 선생님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가르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갈’을 먼저 그릇에 넣으면 ‘큰 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내 좁은 경험과 소견이지만, 학원은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친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것, 시험에 나오지 않을 내용도 꼼꼼하게 다룬다. 그래야 '출제 적중'이라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내신을 잘 받으려면 먼저 학교 수업 시간에 잘 들어야 한다.
『퓨처 셀프』에는 이러한 스티브 코비의 시간관리 원리나 방법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내게 있는 문제는 시급한 것과 중요한 것 두 종류다. 시급한 문제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문제는 절대 시급하지 않다."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현재 상황 너머를 생각하라. 그리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라. 시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결국 책의 핵심 내용은 명확하다. 『퓨처 셀프』는 '미래의 나(퓨처 셀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7가지를 알고, 현재의 나를 진단한 다음, 구체적인, 가장 중요한 방법 7가지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아주 다양한 방법론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줄이고 줄여 핵심을 말하라고 하면, 목표를 분명히 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결국은 이전의 위대한 스승들의 말을 좀 더 세련되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독서모임 책으로 『퓨처 셀프』를 읽다가,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를 함께 추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퓨처 셀프』와 『책만 보는 바보』는 너무 다른 시공간의 인물을 다룬 책이지만, 『퓨처 셀프』의 내용에서 나는 이덕무의 삶을 연상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서자로 태어나 벼슬길이 막혀 미래가 없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어도 활용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한 현실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배움으로 삶을 바꾸겠다는 미래 자아, '퓨처 셀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무인이 되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원대한 꿈과 포부가 있어 고독한 독서의 길을 선택했고, 언젠가 펼쳐질 삶의 가능성을 믿었다. 결국 그는 정조의 눈에 들어 출사를 했고, 검서관과 목민관으로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나는 『책만 보는 바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다음 장면을 말한다.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게 술을 얻다.
서출로서 출세의 길이 막힌 가난한 가장이었지만, 아끼고 아껴 구입한 책이 바로 『맹자』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들이 굶주려 있으니, 이덕무는 눈물을 머금고 책을 내주었다. '책을 팔아서 먹을 것을 얻다니' 자신의 처지도 처지려니와 귀한 책을 먹을 것과 바꾼 것이 선비의 양심에 찔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이덕무는 유득공을 찾아간다. 솔직히 배고프면, 책을 팔아 양식을 살 수도 있는 것이지, 뭘 이런 걸 가지고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유득공은 이덕무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을 감추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허물없을 만큼 그의 글을 꽤 읽었지요." 그러고는 책장에서 『좌씨 춘추』를 뽑아, 아이를 시켜 술을 사 오게 하였다. (중략)
"그렇지요. 당장에 팔아 한때의 굶주림을 면한 우리가 차라리 현명하지요. 맹자와 좌씨도 잘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기꺼이 맞장구쳐 주었다.
『퓨처 셀프』에는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를 위협한다'는 내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과거에 얽매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강한 정서로 긍정적인 과거와 가슴 설레는 미래를 품고 살아간다'라고 한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건을 실제로 경험해야만 긍정적인 과거를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긍정적인 과거를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때 생긴다는 것이다.
저명한 트라우마 전문가 피터 레빈은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이입을 해주는 증인이 없을 때 내면에 머무는 감정이 트라우마다"라고 말한다.
이덕무는 세상에 대한 깊은 원망으로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득공' 같은 벗이 있어, 세상을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유득공뿐이었겠는가? 그는 박제가와 백동수와 같은 벗은 물론 홍대용과 박지원 같은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
신분의 한계라는 과거를 원망하거나 단기적인 목표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의 나(퓨처 셀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소리에도
사람들은 이덕무를 '책만 보는 바보'라고 놀렸다. 서자로서 출세길도 막힌 주제에 무슨 책을 그리 읽느냐는 비아냥이었다. 『퓨처 셀프』에는 '경기장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패배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변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 길이나 가게 된다'는 말도 있다. 벤자민 하디는 처음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좋은 반응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피드백과 신랄한 비난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비난 앞에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경기장 안에 더 들어가라는 것이다.
이덕무도 그랬다.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라고 놀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덕무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소리를 들을수록 더 책에 빠져들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방에 앉아 책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나중에는 책과 대화를 나누는 경지에 이르렀다.
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 가량, 두께는 엄지 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룰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밤이 되면 방 안의 벌레들조차 추위를 피해 이불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중략)
덜덜 떨리는 아래턱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차가운 이불 아래에서 시를 몇 편이나 외우고 또 외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때였다. 윗목에서 기척이 나는 듯했다. 차곡차곡 쌓아 둔 『한서』한 질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책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중략)
안타까이 등불을 바라보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방금 읽고 바닥에 내려놓은 『논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이런 말을 건네며 제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 몸으로 바람을 막아보게!"
책과 '물아일체'가 된 이덕무는 책 속에서 사물과 자연의 소리를 들었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았다. 심지어 책에서 온갖 냄새와 향기도 맡았으니, 어찌 책을 읽는 게 즐겁지 않았겠는가?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라는 독서법 책까지 만들었다.
그는 이렇듯, 책을 통해 '미래의 나'를 꿈꾸었다. 당장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변방의 무인이나 책사가 되는 길도 있었지만, 더 큰 꿈과 '퓨처 셀프'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찬바람이 바람벽을 뚫고 들어오는 혹독한 밤이나 배가 고파 힘이 없는 날에도 더욱 큰소리로 책을 읽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잊었다.
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이덕무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있었다. 밀랍으로 매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가 이 취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살아있는 꽃 못지않은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으고 매달릴 수 있는 그 일이 좋아서였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사실 그가 이 취미를 가장 좋아한 이유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고 슬펐기 때문이다. 그 처지를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은연중에 '윤회매'에 자신의 감정을 담았던 것이다.
나는 윤회매를 만드는 손끝에 나 자신을 모두 실었다. 가난한 살림도 잊고, 어찌 될지 모르는 내 앞날도 잊고, 꽃잎을 만들고 있는 내 존재마저 잊었다. 오직 내 손에서 피어날 맑고 투명한 꽃잎만을 생각했다. 윤회의 순간, 그것도 이글대는 불길이 주는 모진 고통을 견뎌 낸 뒤에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그 순간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중략)
그렇다면 견뎌내리라.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벌통에서 밀랍으로 묵묵히 견뎌야 하는 고통, 말간 액체가 될 때까지 활활 타는 불길에 온몸을 녹여야 하는 고통도 기꺼이 견뎌 내리라.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하지만, 이덕무는 자신의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견뎌냈다.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든 견뎌낸다'는 니체의 말을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인용했다. 그리고 벤자민 하디는 『퓨처 셀프』에서 니체의 말을 다시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명언도 다시 되새겨볼 만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는 이미 몸과 맘으로 이러한 원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돈키호테'이자 '퓨처 셀프'였던 것이다.
마침내 세상 속으로, 그러나 다시 운명은 바뀌고.
1778년 3월 17일. 홍제원에서 이덕무는 '연행'길에 올랐다. 완전한 꿈을 이루기에는 시대의 한계가 너무 컸지만,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은 불완전하게나마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자네들에게도 좋은 날이 꼭 올 것이니,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신을 갈고닦게"
선생은 주상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기 전에, 가까이 모시며 가슴속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능력은 있으되 쓰이지 못하는 불우한 인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셨다는데, 우리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이었을 것이다. 선생이 말씀하신 좋은 날이 온 것인가. 새삼 담헌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왔다.
그해 봄에는 나와 박제가, 그리고 뒤이어 유득공이 드넓은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
박제가는 나지막한 담헌 선생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읊조리며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광활한 대륙의 바람을 담고 있어서였을까. 드넓은 벌판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호탕하고 시원했다.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유득공은 차례로 중국의 연행길에 올라 말로만 듣던 넓은 은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보고 듣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발전하는 청나라의 문물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복잡한 마음이 일어났다. 앞서가는 청나라와 대비되는 조선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한참 전에 멸망한 명나라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라 업신여기는 조선 선비들의 태도에서 조선의 발전은 더욱 지체되기만 했다.
이런 마음을 박제가는 『북학의』에 담았고, 유득공은 『발해고』에 담았다. 이덕무의 글은 그의 아들 이광규가 정리하여 『청장관전서』로 남겼다. 무인이었던 백동수는 '장용영'에 부름을 받아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어 문무를 겸비한 무예지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서자 출신의 한계를 딛고 이덕무는 '적성 현감'으로 유득공은 '양평 군수'로, 박제가는 '부여 현감'으로 임명되어 목민관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이들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793년 이덕무는 세상을 떴다. 그리고 정조는 1800년에 사망을 한다. 정조의 사후 남인들과 함께 서얼출신이었던 이들의 운명도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다. 1801년에 박제가는 옥사에 휘말려 유배를 갔다가 1805년에 사망을 하고, 장용영은 해체되어 백동수도 관직에서 물러난다. 1807년에는 유득공도 먼 길을 갔다.
바랄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꾸고,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변화를 꿈꾸었던 이들의 열정을 누군가는 '바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는 꿈과 희망을 주고,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삶이 어찌 헛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독서를 강조한 퇴계 이황의 시조 한 수를 인용하며 마친다.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古人)을 몯 뵈. (옛사람도 날 못 보고 나도 옛사람을 뵐 수 없지만)
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패 잇내. (옛사람을 못 뵈도 그들이 가던 길이 앞의 책에 있다네)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옛사람 가던 길이 앞에 있으니 아니 따라가고 어찌할 것인가)
* 참고로 '녀다'는 가다, 흘러가다, 살다와 같은 의미를 갖는 고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