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났다.
태어나서 공부는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그 대신 음식을 잘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잘 만드는 음식은 김밥이었다.
김에 기름장을 칠한 밥을 밀고 그곳에다 햄과 우엉, 시금치, 단무지, 당근 등을 넣고 말았다.
말고 꾹꾹 눌렀다.
그리고 조각조각 썰었다.
처음에는 잘 잘리지 않았지만 시간을 들이니 잘 잘리기 시작했다.
국어, 영어, 수학은 잘 하지 못했지만, 가정 시간 음식 만드는 것은 잘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도 늘 김밥을 어떻게 만들지만 고민했다.
김밥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올까?
그때는 몰랐다.
김밥이 내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올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대신에 김밥집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지원은 없었다.
부모님은
"김밥집을 할 거면 너의 돈으로 하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부모님이 매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부모님은 훌륭하신 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김밥집을 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GS25 편의점 알바, 고깃집 알바, 청소 알바, 사무원 알바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알바를 돌렸다.
GS25 편의점 일은 힘들었다.
가끔 진상들이 내게 침을 뱉었고 많은 물류를 내가 다 정리해야 했다.
새벽 알바였기 때문에 졸린 것을 참아가면서 일해야 했다.
나는 일일히 물건들을 정리했고 진상들의 진상짓을 참아가면서 계산대를 돌렸다.
고깃집 알바는 더욱 힘들었다.
저녁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몰리는 통에 나는 수많은 주문 물량을 받아내야 했고 실수 한번이라도 하면 혼이 났다.
고기를 잘 굽지 못하면 눈치가 보였고 눈치껏 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했다. 일을 끝내다 보면 고기 냄새가 몸에 배었다.
그나마 청소 알바와 사무직 알바는 편했지만, 그것도 체력이 다 빠진 상태에서 일해야 하는지라 힘들었다.
힘듬도 그냥 힘듬이 아니라 수면 부족에 몸에 근육통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히 자 주어야 했고 매일같이 파스를 붙여야 했다.
감기에 걸리고 약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가게를 내겠다는 꿈이 나를 버티게 했다.
그래
언젠간 가게를 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버는 한달 월급이 600만원이었다.
이 중 200만원은 월세와 생활비로 나가고 나머지 돈은 저축했다.
그렇게 2년간을 일하니 1억 가까이를 모으게 되었다.
드디어
가게를 차릴 수 있는 돈을 모은 것이다.
나는 내 돈인 1억으로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건물을 임대받았다.
내 꿈인 김밥집 장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꿈은
2년간의 꿈은
깨졌다.
왜냐하면
부동산 중개업자와 건물주가 짜고 깡통 건물을 내게 놓았기 때문이었다.
건물은 경매로 넘어가고 우리들은 알지 못했다.
우리들의 보증금은 모두 하늘로 날라간 것이다.
벽지에 써져 있었다.
이 건물은 경매에 넘어간다고
나는 믿을 수 없어서 그 벽지를 계속 보고 다시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난 볼을 꼬집어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난 혼잣말로 말했다.
"이거 거짓말이지?"
거짓말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난 그걸 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 세입자들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수년간의 노력도 모두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
도둑은 있었다.
그것도 사람의 꿈을 훔쳐가는 도둑이
사람의 희망을 짓밟고 웃는 도둑이
있었던 것이었다.
전체 피해액은 70억
나는 내가 번 1억을 모두 잃었다.
2년간의 고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는 허무해졌다.
그 동안의 노력이
그 동안의 힘듦이
그 동안의 꿈이 보상받지 못했다.
경찰에 찾아갔다.
경찰은
"그 돈은 찾을 수 없습니다... 민사소송으로 가해자의 재산을 가압류해야 했는데 너무 늦었어요."
라는 말만 반복했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때만큼은 부모님도 나를 어루만져 주셨다.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부모님은 내게 다시 말했다.
"너가 돈은 인간 쓰레기들에게 빼앗겼어도... 너가 2년간 한 노력과 배움은 사라지지 않아 너가 2년간 배웠던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아!! 네가 배운 것들 네가 버틴 것들 안 무너져 그러니 넌 할 수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졸린 순간에도 꿈을 위해 계산대에서 일했던 순간들
졸린 눈을 비비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웠던 순간을
고깃집에서 준 고기를 먹으면서 나만의 김밥집을 꾸리겠다고 약속한 순간을
여자의 몸으로 힘든 일들을 이겨냈던 순간을
웬만한 남자들도 못하는 일들을 한 순간들
기억했다.
그래 나는 김혜림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닐 거다.
하지만 2년간 버텼던 것은
어디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청년 도약 대출 오천만원을 받고 다시 가게를 차렸다.
아주 작은 김밥 가게였다.
김밥 가게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탔다.
교회 성가대 연습 준비를 하려는 사람
공부하려는 사람
노동자들
이 모두가 나의 김밥을 먹었다.
계속해서 나의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파는 도중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김밥을 생일 선물로 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김밥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김밥을 공부의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
그래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도둑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기로 결정했다.
책의 이름은
"말아라"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