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천동설의 붕괴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무너진다면 인류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까? 운석이 떨어지거나 동물이 말을 하는 등 인류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인류는 혼란을 겪을 수 있고 아니면 의외로 평온한 삶을 영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20XX년 XX월 XX일 나는 민간 동물보호단체 소속으로 무분별한 콜탄 채굴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버린 고릴라들의 삶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콩고 동부로 갔다. 그곳에서 고릴라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인간의 말을 구사하고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는 고릴라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인간의 말을 구사할 수 있는 동물은 간혹 있었지만, 고릴라는 구강 구조 탓에 말을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고도화되고 정교한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동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지역의 고릴라 무리 중에서 말을 할 수 있는 개체는 내가 만난 고릴라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홀린 듯이 동료들을 불렀고 이 사실을 알린 후에 그 고릴라를 근처에 있는 지부로 옮겼다. 그 고릴라는 순순히 우리의 말을 따랐고 우리가 그 고릴라를 위해 임시로 마련한 방에 들어갔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그 고릴라를 연구한 동물학자 출신의 동료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고릴라는 뭐지 고릴라가 말을 하는 것이 자연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궁금해하자 그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고릴라가 언어를 구사하는 것 자체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야. 자신이 느낀 바, 전달해야 하는 바 등을 수어로 말하기도 하지, 고릴라가 아닌 동물도 인간의 말을 구사한 적이 있어 앵무새의 경우가 대표적이지. 그렇지만, 그 고릴라는 다른 개체와는 달리 음성 언어를 사용했어 게다가… "
그는 숨을 고른 뒤 계속해서 말하였다.
"게다가, 그것은 인간처럼 사고하지."
"인간처럼 사고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지, 지능이 높다는 것인가?"
내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투로 그에게 묻자, 그는 그 반응이 당연하다는 투로 내 질문에 대답하였다.
"단지 지능이 높다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 너 동물과 인간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인간이 동물과 달리 어떻게 문명을 건설했는지 알아?"
그가 나에게 다시 되묻자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동원해 그것에 대해 답하였다.
"그야 지능이 높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 아니겠나, 인류는 도구를 사용해 문명을 건설했으니까."
"그 말도 맞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야 도구는 유인원도 사용하는 것이니까, 그들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없는 것을 지어낸다는 것이야, 즉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무엇을 상상한다는 건가? 용, 신, 신화? 내가 사람들이 주로 상상하는 것을 나열하자 그는 내가 바로 맞추었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 인류는 그러한 것들을 상상하면서 서로 간 공통분모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인류가 수 천명 혹은 수 만명 단위의 대규모 협력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지, 상상력은 인류만의 고유한 힘이었어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려졌었지.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상식이 깨어졌어. 자네가 데리고 온 ‘말할 수 있는 고릴라’ 때문에…"
"그 고릴라가 그러한 종류의 상상을 할 수 있는 고유한 개체라는 것이군. 어떤 종류의 상상을 하지? 고릴라들의 신을 상상하였나 아니면 그것에 준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를 상상하였나? "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야.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동료를 넘어서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고릴라에게도 공감하고 그들에게 동족 의식을 가지지. 그것은 콜탄 채굴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족에게 연민을 느꼈어.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촉발시킨 인간에게 원한을 품었지."
그 고릴라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니!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처럼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왜, 자신들의 동족에게 피해를 끼친 인간과 동족인 나를 만나자마자 순순히 따라왔지? 자신들의 상황을 인지한다면 당연히 동족인 나에게 적대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어떤 이유에서 그것이 나를 순순히 따라왔지? 나는 이러한 의문을 속에 품고 동료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것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있는 방은 동물이 있는 방 같지 않게 의외로 정갈하였다. 나는 동물이 있는 방은 으레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 광경에 놀랐다. 그것은 방 중앙에 놓아져 있는 커다란 소파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여기에만 앉아 있느라 힘들지 않아?"
나는 그 고릴라에게 친절한 말투로 물었다. 그것은 잠시 생각하더니 불만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좋지는 않아."
그것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나는 다시 그것에 그 이유를 물었다.
"왜 기분이 좋지 않아?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렇지 않으면 주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혹 내 동료가 너를 언짢게 했어?"
여러 가능성을 되짚어보면서 묻는 내 모습을 보면서 화가 조금 누그러졌는지 그것은 아까 보다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불만인 점은 그런 것들이 아니야 너희들은 어째서 나를 무생물 보듯이 하는 거지? 내가 너를 따라온 이유를 모르는 건가? 나는 이런 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어…"
나를 따라온 이유? 하필이면 내가 그것을 찾아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니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것에 다시 물었다.
"왜 나를 따라온 거지? 나는 너희 동족들을 쫓아낸 이들과 같은 동족이지 않나?"
그 말을 들은 그것은 잠시 생각하더니 울분을 토해내었다.
"너는 나와 내 동족들을 쫓아낸 이들과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어 우리를 그저 치워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식지를 잃은 우리를 연민의 눈빛으로 보고 있었지 그래서 너희들을 믿었어, 우리를 대등하게 대해 줄 것이라고 믿었단 말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그저 친절하기만 하지 너희들과 대등한 존재로 나를 바라보아 주지 않았어, 너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난 알 수 있어!"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니 나와 나의 동료들은 그것 아니 그를 무의식적으로 나와 대등한 존재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동물들을 돕는 것은 그저 인간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베푸는 자비 정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그는 달랐다. 말을 할 수 있었고 감정을 느꼈으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나는 동물을 보호하는 단체 출신이지만, 사실 동물들의 처지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 그저 약한 존재를 돕는다는 도덕적인 우월감에 의해서만 움직였을 뿐이지. 우리에 대해 기대한 너를 실망시켜서 미안해 앞으론 너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널 대하기 않을 거야. 너를 우리와 같은 존재로 여기지 못한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은 우리를 용서해 줄 수 있어?"
나는 진심을 담아서 그에게 사과했다. 내 사과를 들은 그는 짐짓 행복한 듯 소리쳤다.
"사과했으면 다시금 유대관계를 다지는 것이 인간의 문화라고 너의 동료에게 들었어. 유대관계를 다지는 데는 서로 이름을 교환하는 것 외엔 좋은 방법이 없지. 너의 이름은?"
"내 이름은 최진성, 너의 이름은?"
내가 묻자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내 이름은 없어 너가 지어줄 수 있어?"
우린 그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채로 대화를 이어갔던 것인가? 대화의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군. 나는 다시금 부끄러운 마음을 느낀 채로 그의 이름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트리티 어때? 인간과 고릴라와의 약속을 상징하는 단어야."
그 이름에 그는 기뻐하면서 앞으로 자신을 자칭할 때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4
저녁밥을 먹고 나는 다시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인간 진화와 문명의 발전으로 말 그대로 인간 진화와 문명 발전에 대해 다룬 책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 놀란 정도를 계속해서 갱신해 나가면서 그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어떻게 너는 인간이 쓰는 언어를 구사하고 인간처럼 사고를 하지? 언제부터 그러기 시작했는지 혹시 나에게 알려줄 수 있어?"
그에 대해서 어쩌면 가장 핵심적일 수 있는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언제부터 자신이 인간의 언어를 하고 인간처럼 생각했는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알지 못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어,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동족들도 아픈 것을 느끼고 때론 몸의 상처가 아닌 상처도 아프다고 느껴, 그것에 반응해 화내기도 하고 또한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행복함을 느끼기도 해. 나처럼 혹은 너희처럼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런 감정을 몸의 언어를 통해 혹은 감촉이나 온기를 통해 표현하기도 하지."
그는 한순간 긴 말을 내뱉은 후 나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너희들은 우리와 너희가 정말로 다르다고 생각해? 애초에 인간의 정의가 무엇이지? 그저 호모 사피엔스란 종에 속하면 모두 인간인가?"
나는 그 물음에 일단은 일반론적 이야기를 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를 일반적으로 현생 인류라고 규정하고 있어, 그리고 그 종에 속한 모든 개체에게 천부인권을 부여하고 있지. 고릴라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와 종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어. 그리고 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도 고릴라는 감정과 고통은 느끼지만 지능이 없어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생명체라고 여기기에 고릴라 그리고 그 외 다른 동물들을 같은 생명이라고 생각해도 같은 인간이라고 간주하고 같은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고 있어."
그렇게 긴 말을 꺼내고 난 뒤에 나는 그것에 또 덧붙여 말하였다.
"게다가 너희의 서식지를 파괴해서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스마트폰 충전지의 핵심 원료인 콜탄을 얻을 수 있다면 더더욱 너희가 인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겠지."
"그건 사실과 조금 어쩌면 아주 많이 달라."
그가 조금 화내면서 이야기했다.
"내 동족들은 감정과 고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생각 또한 해.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것을 표현하기도 하지, 인간과 비교하면 매우 단순하지만 그들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너와는 이렇게 마주보면서 소통하고 서로 이해할지라도 다른 고릴라들과는 그럴 수가 없어 그렇기에 난 너의 그 말에 솔직히 공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설령 내가 너의 그 논리에 공감할 수 있을 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조금 실망이네. 그럼 나와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내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해서야? 도대체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데? 그것을 정해주는 이가 누구인데? 너희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예수? 부처? 혹은 너희 자신? 결국 그것도 주관적인 기준 아니야? 설령 우리들이 인간이 아니라도 너희들의 그러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나? 아니.. 그전에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
이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아니 나의 행동과 생각은 결코 옳은 것인가? 동물이 인간처럼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들을 비인간이라 규정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고통을 주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아니.. 그의 말대로 그 권리는 대체 누가 준 거지?
이러한 상념에 빠져 있는 내게 트리티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너도 생각이 많은 모양이네 솔직히 너 혼자에게만 그런 생각의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아."
예상치 못한 말에 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데. 무슨 방법이 있나?"
허탈한 목소리로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달라고.
2부: 무너져 버린 세상
‘말할 수 있는 고릴라’ 트리티와 그의 생각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당연하게도 세상은 뒤집혔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는 이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인간만이 신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설교를 끊임없이 늘어놓았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트리티의 존재는 사탄 역사함의 증거라면서 그를 살처분을 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학계에서는 그가 고릴라의 돌연변이라고 말하면서 진화론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함을 주장하였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 고릴라는 인류를 통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준비한 일종의 실험체라고 여기고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동물애호가들은 그의 존재를 근거로 모든 동물들은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가축 사육과 도살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휴대폰 관련 업계는 그의 존재는 경제를 마비시킨다는 논지를 가진 찌라시를 증권 시장에 살포하였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자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떤 이가 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트리티와 인류 사회의 저명한 이들로 구성된 TV쇼를 열자고 주장하였다.
그 TV쇼는 트리티와 유명인사들이 서로 “인간성이란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일종의 무대였다. TV쇼가 역대급으로 특별한 무대인 만큼 쇼의 결론에 따라 고릴라들의 향후 행방의 귀추가 정해질 것이었다. 고릴라는 드디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TV쇼는 인류 사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게 될 것임은 알 수 있었다.
TV쇼가 시작되고 한 명의 TV쇼 패널이 트리티에게 본인은 어떻게 해서 그런 지성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트리티는 그것은 자신도 모르고 학계에서도 그 이유는 밝혀내지 못하였다고 말하자. 그는 이를 근거로 이 현상은 이 개체에게만 일어난 일이고 고릴라 전체에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주장했다.
방청석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말의 저의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전세계 시가총액 10위 이내에 드는 스마트폰 제조사의 CEO였다. 만약 트리티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콜탄을 주 원료로 하는 스마트폰 제조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트리티만 지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동물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자신의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 방법이라고 여기는 것이리라.
"여러분! 동물에게 지성이 주어진 이 현상은 오로지 트리티라는 이름을 가진 고릴라에게만 국한된 것입니다. 그러한 근거는 첫번째는 다른 고릴라 개체에게 그리고 다른 동물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현상은 어떠한 인과관계 없이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학자들이 밝혀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저 고릴라를 제외한 다른 고릴라들은 그저 평범한 동물입니다."
이 말을 들은 트리티는 차분히 그에 대해 대답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논리적인 오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내 동족들이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가졌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그에 대한 생각과 표현을 인간보다는 부족하지만 해낸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동족 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동족 의식이란 것은 상대편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그 공감이란 것은 상대편도 나와 비슷하게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기능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동족들에 대해 동족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내 동족들도 나보다는 부족하지만, 지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동물들이 비천하다고 여겨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를 듣고 CEO는 얼굴을 붉힌 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교회의 목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만이 신을 닮았고 인간만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짐승입니다.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마 당신은 인간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잠시 입을 뚫어 놓은 개체일 것입니다. 성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지요."
목사가 트리티를 가르치려는 말투로 이야기하자. 그는 이에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성서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내가 지성체가 아니라 그저 도구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나의 상황과 그 내용에 어떠한 연결성과 유사성이 있습니까? 당신은 그저 피상적인 유사함을 가지고 내가 지성체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두번째, 당신들이 성서의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까? 신이 말씀을 내려 주시더라도 그것을 오독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없었습니까?"
이 말을 듣고 흥분한 목사는 트리티에게 화를 냈다.
"우리는 그런 적 없어!"
"트리티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십자군 전쟁은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신이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남의 땅을 침략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겁탈하고 죽이라고 말했습니까? 그리고 아까 저에게 저는 인간을 돕기 위한 신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셨는데 그런 도구가 어째서 신의 말씀을 전하는 당신에게 반박할 수 있는지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야말로 인간의 위선을 관통하는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목사는 고개를 떨구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동물 보호운동가가 말을 이었다.
"사실 고릴라가 지성과 이성을 갖고 있는지는 동물 보호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논점은 아닙니다. 결국 동물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니까요. 우리도 그걸 알기에 비인간인지 인간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동물 보호에 주력하는 겁니다."
"그렇게 동물 보호를 해 주신 점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대등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등한 존재가 아니기에 당신들의 동물 보호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2018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일어났던 n번방 사건이랑 이후에 일어났던 동물판 n번방 사건을 비교해보지요. 각 사건의 주범은 각각 수십년 징역이랑,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 말에 동물 보호운동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인류학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나요? 학계에서는 당신을 연구해왔지만, 당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과학적이 아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저의 존재는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현대 과학이라는 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고 오로지 사실만을 보여줄까요?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도 근세에는 비과학적인 취급을 받았지요. 예컨대 과학이란 것도 사람이 자연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학문에 불과합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죠. 하지만, 모든 것의 원리를 탐구하는 자세는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과학이 발전한다면 당신에게 일어난 현상을 해명할 수도 있겠지요. 제 말이 공격적이어서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유일하게 그에게만 사과를 들은 트리티는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얼어붙었던 장내의 분위기는 조금 녹았다.
그렇지만, 그 분위기는 한 사람의 목소리 때문에 다시 깨졌다.
"저 고릴라가 인간과 동등한 존재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너희는 인간보다 훨씬 열등한 존재야!!"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앞서 트리티와 토론했던 CEO였다. 그는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너희는 동물이고 우리는 인간이야! 동물이 인간 말 한다고 인간 코스프레 하기는!"
그의 말에 분노한 트리티는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인간이란 것은 누가 정한 거지?"
그 말에 장내가 또다시 얼어붙었다. 말을 이해 못한 그는 다시 되물었다.
"뭐? 당연히 인간이 존재했을 때부터 그것은 정해진 것이지!"
트리티는 냉소를 담은 얼굴로 말하였다.
"글쎄. 너희 인간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이를 다른 나라에 태어난 이를 기형으로 태어난 이를 여성으로 태어난 이를 범죄를 저지른 이를 비인간으로 규정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텐데? 심지어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차별하기도 했잖아."
장내가 더욱 싸늘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는 수 십년전에 그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서 차별을 폐지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갖다가 붙인 이유이고 진상은 차별받은 이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서 혹은 그들이 그들을 억압했던 이들에게 저항했기에 그들을 인간으로 규정한 것이지. 우리들이라고 다를까? 우리가 너희들을 죽이고 가두면 너희는 우리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을까? 인간은 인간이라서 인간이 아니라 힘을 가졌기에 인간이라고…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에필로그: 끝 혹은 시작
TV쇼에서 트리티가 “인간은 인간이라서 인간이 아니고 힘을 가졌기에 인간이다.” 라고 말한 것은 인류가 그토록 숨겨왔던 혹은 모른 척했던 진실이다. 그 말을 같은 인간이 했을 때에는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인류 사회의 부외자인 동물이 그 말을 함으로써 그것은 객관성과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말이 인간 사회 곳곳에 퍼지면서 사회에는 큰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힘을 가진 자가 곧 인간이고 진리다! 이 말을 외치면서 안정된 사회의 기득권층은 약소 계층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을 더욱 강화하였고 안정되지 않은 사회의 폭력 집단은 무기를 들지 않은 시민에게 날것의 폭력을 휘둘렀다.
약한 이들은 약한 이들끼리 뭉쳤다. 차별받는 소수민족들과 유색인종들은 테러를 기도했고 그런 것까지는 시도하자 못한 이들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차별을 멈추라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정책을 개정하려 했다. 심지어 대표적인 비인간이라고 칭해지는 아동 범죄자들도 감옥 안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폭력배를 죽였고 반대로 아동 성범죄자에 의해 피해를 당한 이들도 사법의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사적 제재를 행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였다.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이러한 상황을 촉발시킨 트리티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그 TV쇼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회에 실망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회의 혼란이 지속되어서 아무도 고릴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술을 홀짝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그 고릴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혼란이 생겼을까? 나는 그것에 대한 정답은 아무도 알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혼란한 세상을 뒤로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