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죽었다.
아빠가 죽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폭행 치사
아버지는 누군가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말리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가해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그 가해자에게 내려진 형벌은
징역 2년
그것이 내 전부인 아버지를 뺏아간 그의 대가였다.
처음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너무 실감이 나지 않아서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의 공백은 나를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우선 경제
아버지는 소득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이제는 내가 동생을 대신해 벌어야 했다.
그 다음은 감정적 공백
아버지는 늘 일에 중독되 있었지만 날 잘때마다 껴안아 주었다.
이제 그 껴안음은 없다.
마지막으로
그저 슬픔이 남았다.
원망은 커녕 슬픔만이 남았다.
그 만큼 아버지의 공백은 너무 컸다.
차라리 내가 사이코패스였다면
아버지의 공백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학교에 갔다.
공부를 했다
급식을 먹었다.
이제 일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다는 공백감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잔혹했다.
나 홀로 두 동생을 건사해야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잠깐 시끄러웠던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도와준다는 사람들은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삶의 거친 파도는 우리를 쓸고 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날 티비에서 교도소 교정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죄수들은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따뜻한 옷에 따뜻한 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 중에 내 아버지를 죽인 자도 있겠지...
처음으로 분노가 솟아났다.
왜 나만 힘들지?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왜 저들만 저들만 평온해야 할까?
나는 아버지가 죽어서 소녀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왜 죄를 지은 자들은 국가에서 먹여주지?
나는 국가가 신경써주지도 않으면서...
나는 신에게 빌었다.
제발 당신이 있다면... 제발 당신이 존재한다면...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줘...
그러고 난 잠이 들었다.
빛이 보였다.
태초의 빛인가?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 빛은 궁금해 할 틈을 주지 않았다.
"너는 최미르구나."
나는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는 말했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머리로는 몰랐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왠지 알것 같았다. 난 본능적으로 그에게 따졌다.
"왜 세상에는 악이 있나요?"
"왜 내 아버지는 죽었나요?"
"왜 그는 벌을 받지 않았나요?"
그리고 나는 터졌다.
"왜!!!"
그는 말했다.
"궁금하느냐?"
"그럼 한번 체험해 보겠느냐?"
"완벽함만 남고 악이 온전히 처벌받는 세상을..."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에 옳지 못한 결말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겪어 보아야 할 일이다.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었다.
나는 깨어났다.
세상은 바뀌었다.
세상은 피해자를 기억해 주었으며
세상은 피해자를 보호해 주었다.
나는
세상의 보호를 받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세상의 보호를 받으면서 두 동생을 키울 수 있었다.
순조로웠다.
반면에
가해자의 서사는 철저히 부정되었다.
본디 가해자의 서사는 가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문명이자 껍질
가해자는 철저히 부정되었고 가해자의 서사 또한 사람들로부터 경멸의 시선을 받았다.
자신들의 서사가 부정된 가해자들은 드디어 스스로의 문명을 잃었다.
자신들의 서사가 부정된 가해자들은 드디어 피해자를 괴롭힐 수 없게 되었다.
순조로웠다.
그 가해자 중엔 나의 아버지를 죽인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드디어 술에 숨을 수 없었다.
그는 드디어 정신착란에 숨을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짐승 미만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가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수였다고
가난했었다고
불우했었다고
호기심이었다고
이 모든 껍질은 폐기되고 그들은 짐승 미만이 되었다.
권력자라고
돈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처벌받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해자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으며
가해자의 가족까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연좌제였다.
더러는 이 연좌제에 자살하는 가해자의 가족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피해자의 권리는 보호받았으니 말이다.
사회는 완전해졌다.
가해자의 가족까지 죽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세상을 비추었다.
가해자와 일반인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피해자의 서사와 권리는 교육되었고
가해자의 서사와 권리는 폐기되었다.
우리는 기억되었고
그들은 폐기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의의 실현이라 보았다.
나도 나 최미르도 사회의 보호 아래에서 평안함을 누렸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사람들과 가해자들은 분리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에
가해자들은 철창에
서로가 다른 공간에 있었다.
서로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람들은 점차 정의로워지기 시작했으며
가해자들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저들 중 우두머리가 있었다.
그 우두머리는 감옥 안 식품을 독점해 수감자들을 다스렸지만
그 우두머리도 수감자들과 함께 지성과 권위를 잃음과 동시에 감옥 안 수감자 공동체는 무너졌다.
공동체가 무너지자 저들은 cctv를 신으로 섬겼다.
Cctv의 깜박임을 신의 속삭임으로 생각했다.
그런 지능도 사라지자 저들은 언어를 잃었다.
언어를 잃자 옷도 잃었다.
옷도 잃자 수화도 잃었다.
이제 그들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스스로를 무장할 ‘서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를 잃고 인간성을 잃은 그들도
가족을 향한 울부짖음은 진실이었다.
그들도 살해당한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슬픔은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이 결국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인간성을 보증해주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진실이
그들을 짐승으로 전락시켰다.
감옥 안의 짐승들과 달리
문명화된 사람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았다.
성적 대상화된 영상물도 팔리지 않았고
근로 기준법은 철저히 지켜졌고
종교 이념의 차이로 일어나는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역으로 자극을 원했다.
파괴를 원했다.
고통을 원했다.
드디어
불완전함을 원했다.
유일하게 미치지 않은 사람은 나 최미르였다.
나는 신에게 소원을 빈 존재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명화에도 짐승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걸 본 문명인들은 내게 달려왔다.
“저 짐승들이 갇혀 있는 감옥문을 열어다오!!”
“저 짐승들이 우릴 죽이게 해다오!!”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아는 자 그 부탁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무기들이라도 꺼내와다오!!"
“저 무기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그 말을 듣고 귀에 이명소리가 들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소원을 빈 나?
아님 세상?
완전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던가?
나는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집으로 갔다.
집에서는 동생들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나는 동생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
따뜻했다.
내가 소원을 빈 덕분에 이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원을 빈 덕분에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무엇이 옳은 것이었을까?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빛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건가요?"
그는 말했다.
"인간은 고통 없이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단다."
그는 인간은 고통 없이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내가 그 고통을 겪은 이유였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러면 내가 고통받아야 내가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인가요?"
그는 말했다.
"너가 고통을 받은 것은 부당한 것이었다. 너의 아버지를 죽였던 자의 잘못이지 하지만 의미가 있다면 세상에 있다. 너가 버림받은 것은 세상의 비정함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었던 것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분노했다.
"그게 왜 나여야만 했는데요!!!!"
그는 말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누구나 벼락 같이 불행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인생에는 불행만 있는가? 그 인생에는 의미가 없는가? 나는 인간에게 불행을 줄때 불행만 주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항상 살아갈 의미도 함께 준다. 정말 묻겠다. 아버지가 죽은 너의 인생에는 정말로 불행밖에 없었나?”
그가 그렇게 물었을 때 왜 내 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그 의미는 앞으로도 모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이 세상에 정의와 행복만 가득했을 때 그 세상은 정말 행복했느냐? 추구 없는 곳에, 행복이 기다릴 것 같은가?"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는 말했다.
"스스로 결정해라. 행복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고통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선택권은 너에게 있다."
그가 그렇게 말한 후 나는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선택해야 했다.
어느 곳으로 들어갈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완전한 세계가 옳은지
나의 아버지를 죽인 자가 온전한 세계가 옳은지
하지만
나는 말했다.
"지금 여기 내 동생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사실이자... 진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