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렇게 세계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화국
통제와 규율을 중시하는 프론티어
공화국은 자유를 지향했으며
프론티어는 국가 통제를 추구했다.
나는 프론티어의 시민 이건훈이다.
나는 프론티어의 진리부원
프론티어의 현재 선전에 상반된 과거 기록이 있으면 수정하는 작업을 하는 작업요원이다.
오늘도 나는 진리부에 출근한다.
어제도 나는 진리부에 출근했다.
미래도 나는 진리부에 출근할 것이다.
이 변하지 않은 일상에서 나는 어떠한 변화를 보았다.
한 여자였다.
오늘 나는 오전 8시 늘 똑 같은 시간에 진리부에 출근했다.
진리부는 언제나 똑같았다.
진리부의 건물은 중앙의 첨탑 아래로 원형의 구조를 띄고 있었으며 그 옆으로 주변 건물들이 방사형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것은 규율 아래에서 우리는 늘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리부의 건물 색은 회색이었다.
그것은 규율은 늘 무감정하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규율 아래에서 산다
우리는 규율 아래에서 살았다.
우리는 규율 아래에서 살 것이다.
나는 진리부 수정실에 도착했다.
진리부에서는 몇가지 규칙이 있었다.
첫째
질문하지 말것
둘째
과거 역사를 탐구하지 말것
셋째
상반된 질서와 진실을 받아들일 것
넷째
규율에 절대복종 할 것
이 네 가지를 지키지 못한다면 나는 수용소에 끌려간다. 수용소에서는 나의 이름 존재 기억 모두가 소거된다. 진리부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고 있기에 난 침묵했다.
오늘도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은 예전에 있었던 감정의 역사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감정은
과거에 믿음을 낳았고
과거에 질투를 낳았고
과거에 증오를 낳았고
과거에 선망을 낳았고
과거에.. 사랑을 낳았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배웠다.
과거 소망은 절망으로 변질되어 사람들의 낙담을 낳았고
과거 질투는 증오로 변질되어 사람들의 다툼을 낳았고
과거 증오는 전쟁으로 변질되어 사람들 간의 전쟁을 낳았고
과거 선망은 질투로 변질되어 경쟁을 낳았고
과거 사랑은 살인으로 변질되어 범죄를 낳았다고 배웠다.
감정은 갈등을 낳는다.
감정은 고통을 낳는다.
그렇기에 감정은 관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감정을 없애는 이유이다.
현재 그렇게 알고 있고
과거 그렇게 알았고
미래도 그렇게 알 것이니.
난 감정이 갈등을 낳았던 역사를 폐기했다.
잘못된 통제욕과 사랑이 한 여자를 죽였던 데이트 폭력 살인
맹목적인 믿음의 충돌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종교 전쟁
어떤 직업에 대한 선망이 자식을 자살로 내몰았던 성적 경쟁
그 모두를
체제를 위해
태워버렸다.
더불어 감정이 낳았던 기쁨의 역사도 폐기했다.
사랑이 생명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던 기쁨의 역사
종교가 주는 신에 대한 경외감과 자신에 대한 겸손
자신의 노력으로 오는 성적 향상에 대한 기쁨
모두를
태워버렸다.
생명은 인공수정으로 통제되고
전쟁도 조절되며
공헌도에 따라 필수품을 배급받고
사람들은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은 필요없다.
그 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진리부에 걸려 있는 시계가 정확히 오후 6시를 가리킬 때 나는 퇴근했다.
가로수 길은 또박또박 정돈되어 있었다.
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이방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난 히이라기 이츠카에요."
그녀의 등장에 난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했다.
정해진 때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체제에 대한 반역이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그리움이 내 마음속을 자극했다.
왜인지 모를 익숙함이 내 일상을 부수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저는 이건훈입니다."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에 긴 검은색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미소는 미인을 연상시켰으며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사랑이 뭔지 알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랑에 대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중죄이다. 반역죄이다.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고 집으로 갔다. 내 내면 속에는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저 여자 뭐야?
난 집에 돌아와서 그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히이라기 이츠카
이 이름은 옛 일본 현 공화국 시민의 이름이다.
이 여자는 공화국의 스파이일수도 있었다.
공화국의 스파이를 가만두면 나는 수용소에 끌려간다.
나는 벽에 걸려 있는 규율표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그녀를 두고 보기로 했다.
나는 오늘 밤 평소보다 한시간 이후에 잠들었다.
본디 체제가 정한 규율에 따라 잠에 드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 여자 히이라기 이츠카가 나타난 이후로 그것을 깬 것이다.
본래 시키지 않아도 체제가 정한 대로 살아왔던 나이다.
체제가 가르친 대로 감정은 혼돈이고 혼돈은 파괴고 파괴는 무질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뭔지 알아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의해 나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난 진리부에서 감정에 대한 서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 책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소개팅에서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를 껴안았다.
그리고 사랑을 했다.
그 사랑엔 순탄한 길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싸우기도 했고 남자가 실수를 하기도 했고 여자가 남자를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가면서 그들은 더욱 단단해져갔다.
그렇게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황혼기 그들은 서로를 보았다.
서로를 견뎌내어갔다
시간이 지남을 견뎌내어갔다
그렇게 살아갔다.
마침내 남자가 죽고 여자는 슬퍼했다.
슬픔만 있지 않았다.
그 여자는 말했던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그 여자는 어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걸까? 아님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인간의 기억을 믿었던 것일까?
그렇게 여자도 죽었다.
하지만 기억은 이 책에 남았다.
이 책을 다 보고 나는 처음으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 체제를 따를 것인가?
난 감정을 제거할 것인가?
나는 퇴근시간에 또다시 히이라기 이츠카를 만났다.
그녀는 전과 다르게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묶고 있었다. 화장은 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오후 6시 10분에 나오셨네요?"
나는 무뚝뚝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그녀는 팔을 옆으로 쫙 피더니 나를 껴안는 포즈를 지었다.
"어때요? 사랑이란 것은? 사랑은 어땠어요?"
나는 경계심을 품고 그녀에게 말했다.
"적국의 스파이 너와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원랜 금지다!!"
그녀는 내게 웃으면서 내 화에 대답했다.
"그럼 어째서 6시 10분에 나오셨어요?"
순간적인 그녀의 말에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난 왜 6시 10분에 나온 것일까?
과거에 나는 체제의 인간이었다.
체제가 시키는 데로 하면 제 3차 세계대전처럼 공화국처럼 혼란이 오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나도 제 3차 세계대전 때 부모님을 잃고 슬픔을 겪었기에 그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희망보다도 뜨겁고 절망보다도 깊은 사랑의 감정을 알고 나는 진리부에 있는 시계탑의 추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젯밤에 꾼 꿈은 무엇일까?
아니 그게 꿈이기는 한 것일까?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나는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너의 정체는 도대체 뭐야?"
히이라기 이츠카는 그 말에 조용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요? 내가 누구인지 그렇게 중요할까요? 중요한 건 내가 질문을 했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요?"
"질문을 했다는 것?"
"맞아 이 멈춘 세계에 질문을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멈춘 세계를 돌릴 동력이 되니까요."
멈춘 세상?
내가 그 의문을 품었을 때 그녀는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허깨비라도 본 듯 어리벙벙해했다.
뭐지? 내가 헛것을 본 건가?
나는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존재가 내게 준 질문은 질문은.. 내게 실존으로 남아 있었다.
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존재를 그녀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공화국 시민일까?
아니면
초자연적 존재일까?
아니면
그 둘을 초월한 무엇인가일까?
알 수 없었기에 더 궁금했다.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드디어 실존이 되었다.
이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 줄 차례였다.
어떤 감정인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경계에서 책을 읽었을 때 그 감정이랑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난 잠이 들었다.
세계가 불타고 있었다.
세계가 불타고 있는 와중 히이라기 이츠카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왜 시계를 영영 멈추는 선택을 한거야?"
나는 그 후 진리부로 돌아왔다.
오전 8시 10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 여자를 만나고 나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고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내 인생의 뒤엉킴이다.
체제가 알지 않을까?
하지만 그 물음보다 궁금한 건 그녀의 정체였다.
난 퇴근길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퇴근길 오후 6시 10분
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이지? 공화국 시민? 묘령의 여인? 아름다운 미인? 옛 일본국의 망령?
아니다 그건 껍질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무엇인가? 본질은
그녀가 질문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녀의 존재가 나타났다.
"나의 본질을 꿰뚫으셨군요. 이건훈. 궁금한 것이 많으실 테죠?"
나는 그녀를 인식했다. 그런 다음 그녀의 존재에 말했다.
"그래 궁금한 것이 많아. 정말 많아."
그녀는 웃으면서 나를 인식했다. 그런 다음 내 존재에 말했다.
"그래요 이제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공화국 시민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건 어찌된 일이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제가 공화국 시민 히이라기 이츠카를 뒤집어 썼기 때문이에요. 저의 껍질은 히이라기 이츠카지만 본질은 질문하는 자랍니다."
"질문하는 자면 무엇에 질문하는 것이지?"
"이 세계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주체들에 질문하는 존재이지요. 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당신도 될 수 있고 여기에 다른 사람들도 질문하는 존재가 될 수 있지요."
"무엇이 궁금했나?"
"왜 이 세계는 시간이 멈추어 있는지 사람이 멈추어 있는지 궁금했어요. 모든게 질서라는 이름으로 통제된 세계 세계 안의 주체도 그에 맞추어 통제되어 있지요."
그녀가 말하기로는 우리 세계는 통제된 세계라 한다. 그럼 우리 세계 유니온에서 혼돈이라 칭하는 공화국은 어떤지 난 궁금했다.
"공화국은 어떻지 거긴 흘러가는 세계인가?"
히이라기 이츠카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곳은 흘러가는 세계 모든 이들이 감정과 자유를 가지며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 세계는 감정과 자유의 이면에 사람들이 먹힌 세계에요. 모두들 감정에 먹혀 싸우고 모두들 자유롭게 죄를 짓지요. 무분별한 감정과 자유의 과잉이 서로를 집어삼켰어요."
난 괜스레 제 3차 세계대전이 떠올랐다. 모두들 증오에 몸을 맡기고 탐욕에 찌든 정치인들이 죄없는 병사들을 전쟁터에 밀어넣는 그런 전쟁 말이다. 그런 전쟁 때문에 나의 부모님이 죽었다.
나는 히이라기 이츠카에게 물었다.
"프론티어의 감정 억제가 죄라면 그 죄로 세계는 살아있는게 아닐까?"
그 말을 들은 히이라기 이츠카는 슬픈 듯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지요?"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녀의 그 말이 나의 마음에 균열을 내었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에 만날 때 너는 나에게 사랑이 뭔지 아냐고 했지."
히이라기 이츠카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네."
"그 질문을 나에게 한 이유가 뭐야?”
그녀는 조금 웃더니 대답했다. 나의 존재에
"사랑 때문이에요.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뜬금 없는 말 때문에 잠깐 멍을 때리게 되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네."
"왜 나를 사랑하지?"
"왜 하필 나를?"
"다른 사람도 있잖아?"
그녀는 그 모든 물음에 웃음을 지었다.
"내 과거에서 나는 당신을 수도 없이 만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뜬금없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따스함이 내게 깃들었다.
나는 그녀의 존재에 말했다.
"나는 너를 예전에 본 것 같아."
"맞아요."
히이라기 이츠카는 말을 이었다.
"그때도 당신은 오후 6시 10분에 나왔어요."
"그때도 당신은 질문하는 자였어요."
"그때도 당신은 날 만났어요."
그녀는 확실히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더 알고 싶었다.
왜 과거에 그녀를 사랑하는 선택을 했는지.
난 그녀의 존재에게 말했다.
“서로를 더 알아가자.”
그녀는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존재의 기쁨인듯 했다.
“네!!”
나는 히이라기 이츠카를 만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9시였다. 그녀를 만나고 만나면서 점차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점점 나는
불규칙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역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존재의 흐름을 멈출 순 없었다.
난 잠에 들었다.
히이라기 이츠카는 내게 웃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왜 웃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그저 당신 이건훈이라는 존재와 같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깨어났다.
나는 아침을 먹고 오전 8시에 출근했다.
평소같으면 그 같은 패턴에 익숙했을 테지만 오늘따라 그 규울에 반감이 들었다.
시계가 무엇인데 나를 묶어두는가?
시계가 무엇인데
시계가 무엇인데…
난 하루 일을 했다. 오늘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야기를 태울 차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것은 옛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쓴 것으로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두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운명의 엇갈림으로 서로 죽음을 맞는 이야기이다.
평소같으면 문제없이 태웠을 것이었다.
평소같으면 위험하다고 여기면서 태웠을 것이었다.
평소같으면 체제의 명령대로 태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둘의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울렸다.
이 유니온에서는 사랑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던가?
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정에 매우 깊이 공감했다.
그러고보니 공감이란 감정을 느낀 것이 언제였더라?
매우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제 3차 세계대전 당시 타인의 부모님이 죽은 것을 느꼈을 당시 난 공감했었다.
그렇다.
난 감정이 있는 인간이었다.
난 몰래 책을 빼돌렸다.
시간이 지나고 오후 6시 20분 나는 진리부 밖을 나왔다.
“히이라기 이츠카.”
난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니 거짓말처럼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난 그녀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그녀는 그 책을 보더니 제 것인 양 기뻐했다.
“와!! 책이다. 이건훈씨가 나를 위해 책을 가져다 주었어!”
나는 히이라기 이츠카와 가로수 아래에서 책을 같이 읽었다. 그녀는 매우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난 이 장면을 어디에서 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슬퍼요… 이 둘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상황과 환경에 의해… 자살을 강요당한 것이잖아요. 사랑을 못 한 것이잖아요…”
그녀는 슬픈 듯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들의 사랑이 슬픈 것은 우리들의 상황이랑 비슷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녀는 그런 내 말에 놀랐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우리도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과거에서도 내가 이런 말을 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가 흐르고 있다고
오후 9시 30분 난 집에 도착했다.
반복된 일상이 이제 지루해졌다.
이제 히이라기 이츠카만 만나고 싶다.
그녀와 교감을 나누고 싶다.
밤 난 잠에 들었다.
히이라기 이츠카는 처음에는 나를 노려보았었다.
“왜 체제의 시계태엽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난 답했었다.
“그것이 혼란을 막는 일이니까. 너희 공화국을 봐 자유로 오는 혼돈을 막지 못하잖아.”
“그것이 옳아요?!”
그렇게 나는 잠에서 깼다.
이건 어떤 기억일까?
확실한 건 그녀도 나를 만나면서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난 그리 느꼈다.
오후 8시 난 출근했다.
난 히이라기 이츠카를 만날 생각으로 일을 대충 했다. 이제 체제의 톱니바퀴로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후 6시 30분
난 히이라기 이츠카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그녀는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녀가 어떤 책을 가지고 왔다.
“짠! 이제 제가 책을 갖고 왔어요. 이제 같이 봐요!!”
“그래.”
난 그녀와 책을 읽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에게서 벌을 받고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난 이야기였다. 이건 성경 구약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게 두었을까? 전지전능하신 분이면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내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불완전함이 있고 그래야 인간은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기 떄문이지요.”
“네 말은 뭔지 이해가 안가. 고통 없고 악이 없는 세상이 좋은 것이 아닌가?”
그녀는 웃으면서 내 말에 대답했다.
“당신은 불완전한 감정이 없는 세상이 정말로 행복하셨나요?”
“!!!”
감정 없는 세계라 나는 그동안 시계태엽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비로소 행복함을 느끼게 된 것은 된 것은…
히이라기 이츠카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규칙을 어겼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책을 태우지 않았다.
그것은 내 불완전한 감정의 진율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동안 그녀를 만났던 기억이
꿈속에서 그녀를 만났던 기억이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그녀를 사랑하게 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한다.
그래 난 그녀를 사랑한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이 감정이 사랑인가? 사랑은 불완전한 것인가? 사랑은 행복한 것인가?”
히이라기 이츠카는 씨익 웃었다.
"사랑은 한순간의 감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의 정서적인 교감과 시간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에요. 그러니 불완전한 거지요.”
그 순간 나는 충만해졌다. 무슨 기분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녀에게 내 마음을 말하라고 했다. 일종의 정언명령 같이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사랑해."
그녀도 고백했다.
"저도 사랑해요."
그녀에게 고백하고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도 내 눈을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 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거에요. 영원회귀가 될지 아님 새로운 시작이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선택에 맡겨요."
"뭐?"
그 순간 그녀는 사라졌다.
왜 그녀는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것을 고민해 보았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난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은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밖에 있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난 집의 불을 켰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보자기로 나를 덮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나를 끌고갔다.
어둠이 계속되면서 나는 두려웠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을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저들은 누굴까? 체제일까? 확신해보았자 절망밖에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 접촉했어
이제 수용소로 끌려가겠구나... 그렇게 체념하고 있을 때였다.
보자기가 벗겨지고 나는 어느 취조실에 앉혀졌다.
내 앞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진리부원 이건훈 서기 20xx년 xx월 xx일 생 20년간 근무했고 근무 성실도는 A급."
그는 나의 신상명세를 쭉 늘어놓은 뒤 사진 몇 장을 쭉 놓았다. 나와 히이라기 이츠카가 만나는 사진이었다.
"당신이 히이라기 이츠카와 만나는 사실을 모를줄 알았나? 그동안 그냥 놔둔 건 쓸모가 있어서야."
"무슨 쓸모요?"
난 괜스레 궁금증이 들어 물었다. 그러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히이라기 이츠카는 거시세계에서 관측되지 않는 존재야 즉 거시세계의 물리법칙에 국한되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지. 그동안 자네도 관측했을 텐데?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한 것을?"
확실히 그녀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했다. 그것이 그녀가 거시세계의 법칙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었던 것인가?
"그녀가 거시세계의 법칙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면.. 그녀는 뭐지요?"
그는 팔을 W모양으로 펴면서 말했다.
"우리도 몰라. 5차원 존재?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 법칙? 우리 세계의 과학의 언어로도 규명하지 못했어. 다만 알 수 있는 건 그녀는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는 것."
"나를 납치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국가의 정당한 업무집행을 납치라 부르는가? 하긴 상관없지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그녀를 불러내어 주게."
"그녀를 불러내다니요?"
"말 그대로야 그녀는 자네를 축으로 존재하지 그건 자네가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가 나타난다는 의미야. 우리는 자네를 통해 그녀에게 시킬 것이 있네."
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국가가 프론티어가 그녀에게 시킬 것이 있다니? 그게 무엇이든 좋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녀의 도약을 이용해 반물질 폭탄을 공화국에 '배송'하는 거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어벙벙했다.
다음에는 분노했다.
"이따위로 이용해?!"
이 말은 프론티어의 비열함에 대한 내 분노의 정수였다.
그는 내 분노를 듣고 천천히 나를 진정시켰다. 체제 유지자의 태도였다.
"워워 진정해 내가 히이라기 이츠카를 폭탄 배송 요원으로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1을 가리켰다.
"첫번째로 너는 규율을 어겼어 너는 감정을 가졌고 체제 위반자와 대화를 나눴어 그 죄는 중죄야 우리가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면 넌 수용소에서 이름도 기억도 존재도 모두 잃을 줄 알아!"
명백히 협박이었다.
"그 다음은?"
"그 다음 이유는 내가 알려주지 공화국을 멸망시켜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공화국을 멸망시켜야 하는 이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대전 이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싸웠네 인종, 성별, 재산, 지위, 종교로 서로를 나누고 서로 탐하고 서로를 증오했어 그리고 그 결과로 세상에는 죄가 가득했지 살인, 전쟁, 기아, 질병, 그리고 지구온난화."
"그래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심했는지 너는 모를거야 평균 기온은 날마다 올라갔고 북극과 남극은 계속 녹았지 동물들을 서식지를 잃었고 사람들은 더위에 쪄 죽었어 평균 수면은 올라갔고 가난한 국가들부터 먼저 침수되었지."
"그 와중에 인류는 서로 싸우고 있었어 그 갈등이 최고도로 폭발한 것이 자네가 알고 있는 제 3차 세계대전이네."
"정말 참혹했어 식량이 부족해서 어른은 아이의 인육을 먹고 남자는 여자를 강간했지 폭탄은 터졌고 생태계는 더욱 파괴되었어 핵폭발로 환경오염은 더욱 심각해졌지."
"그때 우리는 결심했어 다시는 인류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인간의 갈등과 탐욕을 촉발시킬 모든 것을 통제하고 제한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거기에 반발한 것이 공화국이야 그리고 그들은 그들 내부에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
"웃긴 건 뭔지 알아? 제 3차 세계대전 덕분에 인류의 숫자가 5억으로 줄어서 지구온난화가 느려졌다는 거야. 하지만 공화국의 체제가 우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속도도 다시 빨라지겠지."
"이것이 공화국을 없애야 하는 이유라네 이것이 시간을 영구히 멈추어야 하는 이유라네."
그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절박함이라는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었다. 즉 그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소했다. 감정을 제한하는 자들이 사실은 제일 감정적이라니 그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는 물었다.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말했다.
"폭탄을 그녀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체제의 사상에 동조하는 마음 아니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지금 내 손엔 반물질 폭탄이 있다.
그녀의 이름을 가로수 길에서 부르면 그녀가 나타날 것이다.
그런다음 그녀를 세뇌 기계로 세뇌시킨 다음 반물질 폭탄을 쥐어주면... 공화국은 소멸할 것이다.
지금 내 귀에는 위치 발신기가 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말란 거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난 그녀의 목소리를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그녀는 바로 나타났다. 전의 미소짓는 얼굴과는 달리 슬픈 얼굴이었다.
"왜 불렀는지 알아요. 수없이 겪은 것이니까."
그 말에 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만난 상황 나에게 고백받은 상황 나에게 폭탄을 전달받은 상황 그 모두를 수없이 경험한 것이었다. 그녀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너는 나를 수없이 만났어."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도 수없이 겪었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때마다 어떤 선택을 했지?"
그녀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폭탄을 건넸어요."
예상했던 일이다. 난 체제의 말을 듣고 동요하고 있었다. 감정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그래서 네가 계속 시간을 영원히 돌렸군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맞아요 내가 반물질 폭탄을 공화국에 배송하면 공화국은 핵미사일 프로토콜이 발동해요. 그것은 프론티어를 향하는 것 결국 인류 문명의 종말이지요."
"이 세계가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
"만약 이 폭탄을 공화국에 전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히이라기 이츠카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이 폭탄은 미래에 반드시 터지도록 인과가 고정되어 있는 폭탄이에요. 프론티어가 나를 연구해서 만든 인과 폭탄이지요. 만약 공화국에 터지지 않는다면 내가 존재의 소멸을 각오하고 이것을 우주 바깥에서 터뜨려야 해요."
"그렇게 해서 지킨 세상이 의미가 있어?!"
"나는 세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거에요. 스스로가 인간임을 껴안으면서 살 수 있느나고..."
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는 죽는 거잖아..."
"맞아요. 내가 초반 회귀때 당신을 논리적으로 설득했을 때는 당신은 공화국에 폭탄을 배달했어요. 후반 회귀때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을 택했어요. 결국 내가 죽지 않으면 세계는 멸망해요. 그런 거에요."
"이렇게 해서 지켜낸 세상이 의미가 있을까?"
히이라기 이츠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죽더라도 제 의미는 당신 기억속에 남아요."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선택했다.
그녀의 존재를 없애기로
“히이라기 이츠카 난 선택하겠어 결정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선택을”
그 말을 듣고 히이라기 이츠카는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는 우주공간에서 허수의 폭탄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째깍째깍
그녀는 폭탄 안에서 소리를 들었다. 그건 단순한 시계의 소리가 아닌
운명의 소리였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다.
반드시 터져야 하는 인과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게 되는 인과를 명징하게 직조하면서
상승과 하강의 기분을 느꼈다.
그건
숭고함과 두려움의 양가감정이었으리라
째깍째깍
삐이이이이이이이
터지기 직전
폭탄은 이 세계의 인과를 뒤틀었으며
이건훈이 히이라기 이츠카를 만나지 않았다는 결과값을 도출했다.
하지만
히이라기 이츠카는 존재의 기억으로 인과의 꼬임을 수정하고
폭탄의 폭발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쿠쿠쿵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순간에
폭탄은 터졌다.
폭탄도
이츠카도
사라졌다.
존재가 사라졌다.
히이라기 이츠카라는 변수가 사라진 세상
이후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의 멸망이 사라진 이후 나는 수용소에 갇혔다.
하지만 나는 질문하는 존재로 남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그녀가 남았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희망을 가져 질문하는 자가 많아질 수록 세계는 더 추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랑해..."
그리고 나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라기 이츠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