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력과 시간이 버무려져야

by 최정곤

지난 일요일 아내와 나는 지인 부부와 함께 광양매화축제를 다녀왔다. 차를 타고 강변둔치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멀리 보이는 강변에 나무는 한그루 한그루 불이 붙은 것처럼 한 무더기씩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인산인해였다. 사람 발길 틈새로 우리는 걸었다. 매화밭에 이르기도 전에 탄성은 절로 나왔다. 위로 보니 흰색과 연분홍, 붉은색이 어우러져 어디를 봐도 한편의 그림이었다. 여기저기 휴대전화 카메라셔트를 눌렀다. 나도 그랬다.

매화나무 꽃을 머리에 두고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니 기쁨은 배가 되었다. 그런데 꽃에 가 있던 눈이 잠시 나무에 머물렀다. 나무는 나지막했지만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는 굵기가 지금까지 봤던 것과 사뭇 달랐다. 툭툭 터진 나무껍질에서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뿌리의 건실함이야 말로할 수 있을까. 아내는 그곳은 할머니 한 분이 평생을 일군 매화밭이라고 했다. 몇 년 전 TV에 방영되었다는 말도 했다. 나무를 보니 좋은 꽃과 열매를 얻기 위해 전지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아름답고, 건강한 꽃은 오랜 시간 들인 노력, 튼튼한 뿌리와 줄기가 화합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실한 열매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문득 내가 가르쳤고,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 생각나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번갯불에 콩볶아 먹으려 든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 과목은 인강을 듣거나 학원에 간다. 당장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부터 다시 공부할 생각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가르치는 물리 과목 내용 중 어떤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부분만 알려고 하지 말고 그것과 관련된 넓은 부분을 살펴야 한다. 한 이론이 적용되는 부분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쉽게 얻으려고만 한다. 폭넓게 공부한 다음 그 문제를 다시 풀어봐야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조급하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게 실력은 무르익어가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만 알게 되었다고 그것과 관련된 것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과학고에서 만난 한 학생이 생각난다. 그 학생은 모든 선생님이 칭찬했다. 과학고이니 학생들 대부분은 수학과 과학은 잘하지만 인문 쪽 과목은 서글플 만큼 약한 학생도 많다. 인문학 선생님들은 으레 과학고 학생이니 초・중학교부터 수학과 과학만 했으니 그럴 것이라 여긴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달랐다. 수학과 과학은 물론이고, 국어, 영어, 역사 등에서도 뛰어나다고 선생님들은 입을 모았다. 그 학생에게 물리를 가르치고 있었던 나는 그 학생과 면담하면서 물었다. 어떻게 과학고 준비를 했냐고.

그는 초・중학교 때 주로 책을 읽었다고 했다. 동화, 소설, 수학과목과 관련된 책, 과학 과목과 관련된 책, 역사 등을 읽었다고 했다. 다른 학생이 학원에 갈 때 자신은 학원에 가기 보다 책을 읽고, 모르는 부분은 다른 책이나 인터넷, 선생님께 질문하면서 이해했다고 했다. 과학고 학생 중 많은 학생이 학원에 다니지만 그 학생은 그때도 여전히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글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책을 읽었다면 고등학교 까지 약 10여년 책을 읽었을 뿐인데, 그것이 그런 결과를 냈다는 것에서 이전에 갖고 있었던 과학고 준비에 대한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과학고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교과 관련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초・중학생을 만나면 독서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뿌리깊은 나무 가뭄 안 탄다는 속담이 있다. 뿌리가 깊으면 말라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근본이 튼튼하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희망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얕은 화분에 심은 나무는 보기는 좋아도 키가 클수도 없고, 아름답고 탐스런 꽃과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이 책에서 이론을 찾아 읽어보고, 저 책에서 그것과 관련된 예를 찾아 설명해 보아야 한다. 자신이 설명한 것과 전문가가 설명한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피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당장 모르는 것 때문에 강의를 듣고, 이해하는 것에 그친다면 화분에 심겨진 나무와 다를 바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는 말이 꼭 맞는 말이다. 눈앞에 있는 문제지만 보면서 실력이 원하는 만큼 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어느 정도 진보는 있을지라도 경지를 넘기는 어렵다.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광양매화축제장 매화나무는 경지를 넘긴 존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초 뿌리가 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