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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가볍지만 소중한 이름

by 최정곤

며칠 전 계 모임을 했다. 5명이 전부인 계라 일이 있으면 쉽게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그날 화제는 퇴직 후 계획이었다. 모두 교직에 있고, 올해 퇴직이다. 퇴직을 앞둔 입장에서 다른 사람은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떤지 알고 싶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연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얘기가 주가 되었다. 퇴직 후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퇴직하는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이다.

그런데 퇴직자에게 의외의 복병이 있다. 바로 일상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것이다. 직장에 나갈 때 한 번도 고민해본 일이 없는 분야다. 아니 걱정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면 하루를 직장에서 보냈으니 그것이 걱정일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때는 어떻게 하면 직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공휴일이 되거나 우연히 쉬게 되는 날은 횡재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일상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나는 2년 전 명퇴를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몇 차례 상의를 했을 때 아내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퇴직 후 공인중개사 자격 시험 공부에 10개월 정도 매달려 자격을 취득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사무실을 내겠다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바빠서 일상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후가 문제였다. 한두 달은 괜찮았지만 사오 개월 지나니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산에 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하루 일상을 만들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그때 깨달았다.

우연히 일반계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하게 되었다. 지금 하루가 무척 재밌다. 퇴직 전에는 느끼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철학자 하위징아가 얘기하는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목적? 없다. 있다면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뿐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조깅하면서 그날 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도 재미를 먼저 생각한다. 아내에게도 하루가 즐겁다고 얘기한다. 수업을 하면서 내가 지나온 터널 얘기도 한다. 공문처리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 젊은 선생님과 얘기도 나눈다. 일상을 ‘재미’라는 말로 색칠하려고 하니 모든 색이 예쁘게 보인다.

내가 기간제 교사를 한다고 하니 안됐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퇴직을 하지 않았으니 내가 겪으면서 이겨내야 했던 시간을 겪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 내 생각도 그와 같았다. 정규직 교사로 퇴직하여 다시 계약직 교사를 한다니 체면 구겨지는 일이라 나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이순이 넘은 나이에 취업은 쉽지 않다. 주변 얘기를 들어도, 유튜브를 봐도 취업은 어렵다는 얘기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기간제 교사로 취업을 할 수있으니 감지덕지다. 일을 바라보는 생각도 바뀌었으니 하루가 즐거울 뿐이다.

일상은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는 추억이 될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이 모인 것이 일상이다. 똑같은 시간이 지나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보내는 이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된다. 지나고 보면 그저 그렇게 보낸 시간일지라도 그 순간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 일상은 늘 평범하지만 소중한 시간이다. 일상이 없으면 표류하는 배가 된다. 더 넓은 바다로 항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쏠리기만 하는 배는 이름만 배일뿐이다. 일상은 자신을 항해하는 배로 만드는 방향타이자 엔진이다.

퇴직은 누구나 맞는 일이다. 퇴직 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새로운 문을 여는 과정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이다. 이후 어떤 삶을 펼칠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희망은 젊은이만 갖는 것은 아니다. 퇴직 후 맞는 새로운 일상이 만드는 희망! 그 꽃봉오리도 여전히 붉고, 예쁘다. 고목에 피는 꽃도 여리고 예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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