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이다. 수업 진도를 마쳤으니 학생들은 은근히 자습을 기대한다. 문제는 자습을 하라고 하면 스스로 공부를 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는다. 잡담을 한다든지 학교에서 지급된 노트 패드를 들고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낸다. 옆에가서 어리석은 짓은 그만하라고, 책을 보라고 채근하면 잠시 후 책상에 엎드린다. 그들에게 자습은 학습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알기에 나만의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생은 자기 진도에 맞춰 공부하는 것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나와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으로 바꿨다. 단지 나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천천히, 하나씩 짚어가면서 풀어보기로 했다. 학생들이 얼마나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등 지금까지 내 생각위주에서 벗어나 그들과 함께 해볼 생각에서 한 시도였다.
한 반은 약 15명 전후인데, 그중 사오 명이 나와 함께 문제를 푼다. 시험 범위 내에 있는 문제중 쉬운 문제부터 제시했다.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니 한 녀석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직접 풀기 싫다는 것인지, 정말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약 5분이 흐른 후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하면서 지문을 읽어갔다. 지문내에 있는 말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그림이 있으면 그림과 지문을 동시에 설명했다. “아! 그 말이었어요?” 좀 전에 그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도 표정을 보니 비슷했다. 순간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웠다.
다음 문제는 문제를 풀기 전에 지문 해석부터 했다. 지문을 읽게 하고 모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문장을 얘기하라고 했다. 서너 명 중 한두 명이 질문했다. “저 말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것이 단어이면 책을 찾게 하거나 그들이 갖고 있는 노트 패드를 열어 단어를 찾아 읽어보도록 했다. 그 후 그 말에 들어 있는 물리 내용을 설명했다. 문장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림을 그려서 설명했다. 그 후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주어진 지문을 이해하고 문제에 맞는 답을 찾기란 어렵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제 학생 수준을 이해했으니.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학생에게 이해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고함을 치기도 하고, 실험기구를 이용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론이 있으면 손가락을 이용해 설명하기도 한다. 이론을 적용하고, 그것이 이용되는 방법도 설명한다. 그 순간 학생들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해하냐?”라고 물으면 몇몇이 “예”라는 답을 한다. 그것으로 교사는 설명한 것을 학생들이 이해한 것으로 알고 다음 과제로 넘어간다. 잘못이었다. 그들은 교사가 원하는 답을 했을 뿐이다.
학생들은 이해하려고 애쓸까.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런 학생은 몇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포기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런 경우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없다. 직접 문제를 대면해야 한다. 문제를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은 찾거나 질문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모르는 것이 드러난다.
시도 해야 알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문을 읽어야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드러난다. 선택형 문제에서 선택지도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 말뜻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그려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거나 친구와 토의하거나 선생님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부터라도 시도 해보라. 기말고사가 가까워진다고, 쓱 읽고 지나거나 문제를 눈으로만 보면서 익숙하게 만들지 말고 한 문제라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 첩경이다. 자! 이제 행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