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교장 리더십 연수에 강사로 초빙되어 간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한때 학교장이 중심이 되어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목적으로 기획된 교원연수가 많았지요. 제가 우리 학교의 교직원회의를 사례로 들어 강의하고 나면, 교장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학교 직원들은 의견을 내라고 해도 말을 안 해요.”
"자기들끼리 결정해 놓고 나한테 결재해 달라고 해요. 날더러 책임만 지라는 것 아니에요?"
저는 교직원회의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직원회의는 학교구성원 중 성인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회의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렇지만 대부분 자기의 의견을 내거나 찬성하지 않는 의견에 반론하지 않는 침묵의 회의에 익숙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지점에 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발언을 촉진하는 회의 진행을 연습하거나 토의 토론을 연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건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논하고, 반영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하고 나면, 그 결정에 따라서 실행하고 성공하는 연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이 없는 교직원들은 어떤 회의에서든 침묵하고 말지요.
그런 까닭에서, 이 연습은 리더의 몫이 더 큽니다. 특히 교장은 교직원회의 과정과 결과를 존중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연습이 필요하지요. 또한 교장은 교직원들이 회의에서 성공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제가 교장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학년에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하룻밤 자는 것을 포함한 1박 2일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 중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4년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체험학습이 전면 금지되던 때였지요. 선생님들은 수학여행을 대신하여 아이들과 함께 이벤트를 계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교육청의 지침을 생각하면, 교장으로서 당장 계획을 취소하라고 하는 게 옳겠지요. 그러나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또 그 계획에 맞추어 일부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신뢰 문제도 중요하고, 또 아이들의 1박 2일에 활동에 대한 기대를 존중하자면 취소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해당하는 학년의 선생님들과 함께 협의회를 열고 계획서와 준비 상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요. 그리고, 전체 교직원회의를 통해 의논해서 다소 부족함이 있는 부분을 보완하고, 계획을 일부 수정하면 추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사안에 대한 공지와 함께 문제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참석하라는 당부를 전달한 후에 전체 교직원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활동 계획에서 쟁점이 된 숙박의 문제는, 학교시설을 숙박시설로 사용할 수 없는 법규정에 따라, 교실에서 잠을 자는 활동을 빼는 것으로 했지요. 그 대신 늦은 밤까지 대체 활동을 하기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행사 당일 늦은 시간까지 지원이 가능한 직원들로 지원팀을 구성했습니다. 지원팀에서는 경찰서와 소방서에 협조를 요청하고, 저녁식사 조리 지원, 교내외 안전지도와 순찰 활동,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등의 세부 내용을 추가하여 지원팀을 배정하는 것으로 계획을 더 촘촘하게 보완하여 착착 진행했지요.
행사 당일에는 저도 학교에 남아서 함께 행사 진행 상황을 살피며, 야간 활동을 지원하는 교직원들에게는 초과근무를 명령하고 저녁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는 것을 기대했던 아이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나머지 활동은 만족스럽게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요.
때로는 교장의 권한으로 교직원들의 이런 좌충우돌 행보와 실수를 격려하면서, 교직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여 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럴 때야말로 교직원들은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까지 교육공동체로서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게 되지요. 그리고 학교장의 리더십은 더 빛이 나겠지요.
교직원회의에서 의논하고 결정한 내용들이 반영되어 실현되고 것을 보면서, 교직원들은 일종의 성공을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공 경험은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직원들은 회의에서 치열하게 의논하고 결정한 것들이 교육과정이나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런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교직원들은 교직원회의에 대한 책무성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기가 낸 의견 또는 함께 의논하여 결정한 것들이 학교를 움직이게 하고, 결과적으로 학교가 변화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교직원들에게는 성공이고 승리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