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장이 되었을 때, 학교구성원들에게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교장으로서 앞장서는 리더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건강하게 작동된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여러 가지 일들을 선생님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전적으로 수용하고 결정하기에는 종종 어려움이 있었지요.
선생님들과 제 의견이 상충되어 곤란을 겪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교육청에 '교육실습 협력학교' 지정을 신청하는 일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의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제가 밀어붙여 강행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필수 교육과정으로 학교현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교육실습을 하게 됩니다. 교육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은 교육실습 협력학교의 교과 및 생활지도 활동을 통하여 교육과정 운영의 실제를 경험하며, 예비교원으로서의 전문성을 신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육과정에 지도교사로 참여한 실습 지도교사에게는 그 노고를 인정하여 승진가산점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근무했던 지역의 교육청에서는 2015년부터 교육실습 협력학교의 실습 지도교사에게 승진가산점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교육실습 협력학교로 지정하는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했습니다. 그러자, 교육실습 협력학교 운영에 대하여 선생님들이 번거로운 업무로 인식하게 되어 신청하는 학교가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요.
교육청에서는 교육실습 협력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교육청의 교육 방향과 예비교원 양성 측면의 질적인 관리가 필수적인데, 이와 같은 것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대학이 교육실습 협력학교를 교육실습을 위한 대용학교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교사에게 승진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학으로부터 받는 교육실습 예산 지원도 열악하여 교육실습 협력학교와 실습 지도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실습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선학교들이 교육실습 협력학교 지정을 꺼리는 데는 실습학생들의 관리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육 대학이나 사범 대학 학생들도 당연히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와 태도를 가질 수 있지요. 하지만 실습 기간 중에 이런 학생들이 지도교사나 학교 측과 갈등을 빚고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교육실습 협력학교에서는 실습 기간 중 교육실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교육실습 학생을 교육하고 관리·감독까지 해야 하는 부담도 커서 교육실습 협력학교로 지정 받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 왔지요.
그러자, 교육청에서는 관련 부서가 나서서 교육실습이 가능한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교육실습 협력학교 지정 신청을직접 나서서 홍보해야 했지요. 결국 교육청에서는 교육실습 협력학교서의 책무성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와 역량을 가진 학교나 교장이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교육 대학 학생들이 교육실습을 통하여 수업과 생활지도 등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 문화를 제대로 배우고, 임용 후 좋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면 우리 학교가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청의 입장을 이해하며, 교육 대학 학생들에게 교육실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교사회의를 거쳐 우리 학교의 교육실습 협력학교 지정을 신청하는 것 자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저는 선생님들의 반대 이유도 충분히 공감했지요.
사실, 교육실습 협력학교로 지정된 학교에서 실습교육을 담당하는 실습 지도교사의 부담이 가장 큽니다. 지도교사는 먼저 교육실습의 사전 준비, 실습지도 내용, 사후 관리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교육실습 지도 내용에는 지도교사와 실습 학생의 결연 내용, 지도 내용과 절차, 수업실습, 참관실습, 실무실습, 사전 오리엔테이션, 사후 평가 등의 계획과 실적 등을 기록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하니, 상세 계획을 세우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또한 지도교사는 1대 1로 교육실습생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학급 운영 전반에 대하여 지도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부담이 큰 일입니다. 더구나 교육실습 지도교사에게 부여하던 승진가산점이 없어지면서, 후배교사 양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에는 동기 부여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저는 고심 끝에 교직원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교직원들을 향해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어느 학교에선가 문을 열어 교육실습생을 받아들이고 교육해야 한다면, 우리 학교가 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우리 학교에서 좋은 교육과정과 문화를 배우고 교사로 임용된다면, 그 선생님들은 교육실습을 통해 보고 경험한 교육과정과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학교와 같은 교육과정과 문화를 가진 학교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 부담과 불편함을 감당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요?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교육과정과 멋진 학교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또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일상적으로 수업공개를 실천해 왔기 때문에 실습 지도교사로서의 역량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우리 학교를 통해 배운 학생들이 훗날, 좋은 선생님으로서 우리와 함께 아이들을 교육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학교가 교육실습 협력학교로 지정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선생님, 교육실습 협력학교 운영을 우리가 함께 하는 또 하나의 교육적 헌신이고 봉사라고 생각하고, 반대 의견을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