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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Oct 19. 2023

저요, 쪼잔한 사람이에요

초등 교원과 중등 교원은 각각 그 자격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하여 법으로 정한 학교에서 근무합니다. 학교급별로 교육과정과 교육 대상에 맞는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교육청과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는 장학사나 교육연구사가 된 유·초·중등 교원, 즉 교육전문직원이 함께 근무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대상과 성격에 따라 담당자를 정하여 나누거나 합쳐서 하지요.



그런데, 학교급별 특성만큼이나 그 안에서 일하는 교원들도 매우 다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교육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아요. 오랫동안 유치원 아이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을 각각 교육하면서 생긴 습관과 말투, 생각들이 그 사람들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습여성성(習與性成)

'습관이 쌓이면 마침내 그 사람의 성질이 된다'는 뜻으로, 즉 습관(習慣)이 배여 성질(性質)을 변화시킨다는 말이지요.  - 출전: 書經(서경) -


제가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던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장학사가 된 사람이 초등 장학사들을 무시하는 듯 불편하게 대했어요. 그래서 가끔 누군가 감정이 상하거나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요. 이유는 초등 장학사들이 업무를 추진하면서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필요 이상으로 반복해서 설명하며,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함께 일할 때 의견이 잘 맞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중등 장학사가 얼떨결에 한 초등 장학사에게 '쪼잔하다'라고 말해 버린 거예요. 순간 제가 발끈하고 일어섰지요.


"장학사님, 학교에서 청소 시간에 어떻게 하셨어요?"

"청소 감독하거나 가끔은 연구실에 있다가 청소 시간이 끝나면 교실로 갔지요."

"장학사님이 그렇게 청소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여기 있는 초등 장학사님들이 '쪼, 잔, 하, 게' 청소 지도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초등학교에서는 청소 시간에 선생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면서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요. 그리고 끊임없이 확인하고 반복해서 지도하지요. 그런 교육의 결과,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이 알아서 청소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도 연필 잡는 것부터 기본적인 것들을 상세하게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우리들은 20년 넘게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일부 성격이 된 것이고요."  


"또 아이들에게 다듬어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아직까지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학교에서 글씨를 쓰고, 그림 한 장을 붙이는 데도 반듯하고 예쁘게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노력했거든요. 뭐 그게 잘못한 일이에요?"


물론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가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직업에 따라 일률적이거나 편향성을 가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이 있고,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제 남편과 아이들이 저에게 갖는 불만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도덕적으로 너무 엄격하다는 것과 어떤 상황이나 사람들을 짧은 시간에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몇 가지 있는데, 제가 타고난 성격인지 직업적인 습관에서 온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쪼잔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상황이 대부분은 오히려 일이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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