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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08. 2023

체크 필요; 설마 내가 진상학부모?

-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한 사람 -

요즘 서이초등학교 선생님 사망 사건과 유명 웹툰작가가 장애를 가진 자기 아들의 특수교사를 고소한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저도 오래전에 옆에서 겪었던 사건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마 제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사자인 제 동료가 오죽하면 사직원을 냈을까, 제가 당사자였어도 사표를 내고 말았겠다 하고 공감하지요.




그날은 봄비가 보슬보슬 내렸지요. 제가 오전반 담임이었는데, 다른 날보다 서둘러서 아이들을 집으로 보냈습니다. 비가 내리는 데다가 질척거리는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후반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교실로 들어가도록 해야 했지요.


오후반 수업이 끝나고 저는 같은 교실을 쓰는 동료 선생님과 함께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지요. 그때, 제 동료를 찾는 교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2학년 8반 선생님, 교무실에 전화 왔습니다. 2학년 8반 선생님, 전화받으세요."


제 동료는 교무실로 갔지요.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동료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아서 제가 교무실로 갔습니다. 제 동료는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지요.



제가 교무실께 이르자 고함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복도까지 느껴졌지요. 제가 들어가 보니 제 동료는 넋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웬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우산으로 제 동료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사람이 흥분해서 중언부언하는 말을 꿰어보면 대략 이랬지요.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인지 아직도 그 분위기와 말투, 몸짓, 내용 등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선생님이 내 새끼를 똥 친 막대기 취급하니까 그놈이 얼굴을 발로 찬 거 아니야? 감히 내 딸을! 내 새끼 발로 찬 놈 데려다 놓으라고 했잖아! 내 딸 얼굴에 난 상처하고 똑같이 그놈 얼굴에 해주려고 운동화를 신고 왔어! 이렇게 대놓고 그놈을 감싸들지 말고 빨리 내 앞에 데려와! 그리고 선생님, 태중이신 분이 그렇게 남의 자식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그놈을 내 앞에 데려오지 않을 거면 집이라도 알려 주든가!"


제가 놀라서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왜 말리지 않는지 물어보았지요. 그 사람을 말렸더니 더 흥분하여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냥 두는 거라고 누군가 작은 소리로 말해 주었어요. 그러던 중에 한 남자 선생님이 그 어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여자가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당장 나가!"


그러자 그 어머니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던지더니, 그 남자 선생님의 턱 밑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래, 때려! 때려 봐! 때려 봐아아아악!"


그날의 소동은 두 시간 넘게 계속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사이 창 밖이 어둑어둑해졌거든요. 결국 교감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을 데리고 나갔지요. 그리고, 아이가 1학년일 때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 와서 그 어머니와 함께 나가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저는 동료를 부축하여 교실까지 갔지요. 그리고 안정을 찾은 동료가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이 오후반 대기 중에 운동장에서 두 아이가 티격태격했답니다. 그리고, 아까 그 어머니의 아이가 다른 아이의 발길질에 상처를 입었고요. 제 동료는 아이를 양호실에 데려가 처치를 받고 나서 수업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집에 갈 때까지 아이의 얼굴에는 동전만 한 자국이 벌겋게 남아 있었지만 흉터가 남을 상처는 아닌 것 같아서 안심했대요. 


어쨌든 집에 돌아온 아이의 상처를 보고 화가 난 어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걸어 제 동료에게 한바탕 퍼부은 거예요. 그리고, 제 동료가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게 된 앞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벌써 그 어머니가 택시에서 내려 교무실로 뛰어 들어왔다고 했어요. 


그 난리가 나고, 아이는 이튿날부터 연락도 없이 결석했지요. 담임인 제 동료도 병휴가를 냈고요. 며칠 후, 그 어머니가 아이를 전학시키겠다고 서류를 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그 아이는 옆 동네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서 멀리 걸어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리고 제 동료는 한 달 후에 출산했지요. 하지만 육아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다가 결국 학교를 떠나 버렸지요.



저는 그때의 동료들과 지금도 가끔 만납니다. 지난 6월에도 만났지요. 제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동료는 힘든 아이나 진상 학부모를 만날까 봐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제 동료는 제가 잘 마무리하고 퇴직한 후 다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없던 상처라도 받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지요. 제 동료는 학교를 떠난 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그때의 일이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요. 제 동료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지요.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제가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제가 볼 때, 학교 현장의 실상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옮겨 보았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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