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살도 혼자 있는 게 무서워

by 전우주

제가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제 남편과 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제 남편은 시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미용실에 들렀다가 산책 가려는 중이라고 했어요. 제 남편의 어릴 적 친구가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시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단골로 다녔지요.


두어 시간 후 시어머니는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들어왔습니다. 식탁 밑에 음식물을 떨어뜨린 것 말고는 저녁 식사도 잘 한 편이었고요. 아무튼 그때까지는 시어머니의 상태가 양호했지요.


저와 남편은 가끔 '상태 양호', '상태 불량' 또는 '상태 불안정' 등 시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암호처럼 서로 주고받기도 해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어른을 놀린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환경에서 가볍게 농담처럼 말하면서 집안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저희 부부의 노력인 셈이지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시 나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방에 누가 있다는 거예요. 저희가 못 들은 척하자 시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내 방에 있어. 무서워서 못 들어가."



제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방에 들어가 아무도 없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도로 거실로 나와서 또 방에 누가 와 있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가끔 누가 방에 들어와 있다거나 누가 왔다 갔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혹시나 해서 벽에 걸어두었던 사진들도 떼어서 치웠지요.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평상시보다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몸이 허약해지면 정신도 맑지 않아서 심한 경우에 환청이나 환영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오늘 저녁에도 갑자기 시어머니에게 환영이 보이는지 방에 누가 왔다고 우기는 것이지요. 순간 시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양호'에서 '불량'으로 급반전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보면 치매는 정말 무서운 병이에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살아온 세월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강하고 현명하지요. 그런데 저의 시어머니는 특별히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만난 동년배 어른 중에서는 제일 용감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정도가 심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지요.


어쨌든 치매는 시어머니의 강직함과 현명함, 용기, 지혜를 다 무너뜨리고 말았어요. 지난주에는 시어머니가 연달아 이틀 동안 배변 실수를 했어요. 물론 전에도 몇 차례 드물게 있었던 일이지요. 시어머니가 속옷에다 배변 실수했던 첫날, 정말 실수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튿날 옷은 물론이고 화장실에 테러에 가까운 배변 실수를 했을 때, 더는 표현할 말이 없었어요. 제 남편도 말없이 치우기만 했지요. 제 남편의 성정으로는 그때 아마 울면서 치웠을 거예요.


시어머니도 바깥에서 벌어지는 수선스러움이 본인의 배변 실수가 원인임을 알아채고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어요. 저는 그것에 깜빡 속아서 정말 시어머니가 이승에서의 기력이 다한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한테는 배변 실수가 아니라 아마 저승똥인 것 같다고 알렸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로서는 배변 실수로 자신의 인격과 존엄이 무참하게 무너져 버리니까 민망하고 비참했을 것 같아요. 결국 죽은 듯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은 또 저한테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가 벌이는 이런 당황스러운 일들을 마주하면서 제가 집에서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언어적 소통보다는 점점 입을 다문채 필요한 행동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하지만 제가 저의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해도 외부 요인인 시어머니의 치매는 점점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걱정이에요.


저의 시어머니는 99세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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