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승엘 네가 왜 왔어?

by 전우주

언제부터인가 한밤중에 시어머니 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자주 들렸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서랍을 여닫고 종이와 비닐봉지를 만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살그머니 문을 열어도 시어머니는 모른 채 웬 보따리를 싸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시어머니는 예금통장이나 토지문서, 사진 따위를 가끔 꺼내어 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는 또 그러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시어머니가 거의 한 달 가까이 한밤중에 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초저녁부터 잠이 많아서 늘 9시에 시작하는 TV 뉴스를 켜놓은 채 잠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요. 저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시어머니 방에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들어간 줄도 모르고 3단 서랍장을 다 빼놓고 뒤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시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지요.



"어머니, 이 밤중에 뭐 하세요?"


시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후다닥 서랍을 닫았습니다.


"야야, 여기 저승인데, 네가 여길 왜 왔어?"


시어머니의 말에 저야말로 놀랐지요. 제가 시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다시 묻자, 시어머니는 망연한 눈빛으로 저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저승에 가져갈 짐 싸고 있었어."



저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지요. 저는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시어머니의 기이한 행동과 말을 알려 주었습니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또 꿈을 꾸었나 보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시어머니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시어머니의 기력이 약해져서 그런가 보다고 말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혹시 시어머니가 치매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요.


"야야, 지난번에 노곡리 갔을 때 보니까, 뒤란 장광에 있던 항아리 몇 개가 없어졌더라. 아마 금산댁이 가져갔을 거여. 금산댁이 안 그래도 우리 항아리를 탐냈거든. 망할 놈의 여편네, 나한테 달라고 하면 어련히 안 줄까? 말도 안 하고 몰래 가져가 버렸어."

"어머니, 금산댁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가 10년도 더 지났어요."

"무슨 소리냐? 내가 저번에도 만났어. 영감이 노망 나서 요양원에 보내야겠다고 걱정하더라."


금산댁 할머니는 시어머니와 평생 이웃하여 살던 사람입니다. 아마 시어머니는 그날 제가 퇴근하기 전부터 금산댁 할머니를 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잠들 때까지 금산댁 할머니는 장광에 있는 항아리를 가져간 도둑으로 몰려 저승에서 배가 터지게 욕을 먹었을 거예요.


어느 날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중 한 사람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야야, 안호 에미가 우리 집에 시집온 지가 몇 해 됐냐? 낼모레면 저도 며느리 들일 나이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내가 결혼할 때 반대했다고 나한테 따우로 하고 있어. 나쁜 년, 망할 년. 저도 며느리를 들여봐야 내 맘을 알지."



하루는 시어머니가 곰국을 데우다가 냄비를 태웠는데, 정말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온 집안에서 나고 었었습니다. 마치 화장터에서나 맡을 법한 냄새였어요. 그 역한 냄새는 장롱 속에 있는 옷까지 배어 버렸지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곰국 냄비 말고도 벌써 여러 개를 태웠습니다. 시어머니는 냄비를 태운 이유를 물어보면, 텔레비전을 보다가 잊었다, 전화하느라고 깜빡했다, 잠깐 졸았다고 말해서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지요. 하지만 시어머니 말이 맞든 건망증이 심해졌든 그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집을 다 태울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저는 서둘러서 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바꾼 뒤에 시어머니에게는 사용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지요.


어느 날은 새벽녘에 시어머니가 저희 부부의 방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낮에 일했던 사람이 돈을 가져갔다고 빨리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4만 원이 있었는데, 지금 세어보니 13만 원밖에 없다면서 시어머니는 금세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지요. 전날 낮에 설비업체에서 나와 주방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것을 고치고 간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거짓으로 전화를 하는 척하고 그 사람이 안 가져갔다고 한다고 시어머니에게 전해 주었지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직접 확인하겠다고 전화를 다시 걸어서 바꾸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제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더운 날 고생했다고 택시비를 만원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희 집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 이웃 할머니에게 가방을 열어서 보여달라는 바람에 난감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이웃 할머니가 물을 마시러 정수기가 있는 주방에 다녀왔는데, 그때 뭔가 훔쳤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사생결단이라도 할 듯이 덤비자, 결국 이웃 할머니는 가방을 거꾸로 들고 쏟아서 보여주었지요. 시어머니는 가방에서 예상했던 것이 안 나오자 이웃 할머니의 몸을 더듬고 속옷까지 뒤지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웃 할머니에게 백배 사죄하고 마무리했지요.


그때 시어머니가 96살이었어요. 병원에 갔더니 시어머니는 이미 치매 초기를 넘어섰다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희는 시어머니의 이상 증세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저 시어머니가 늙어서 그런가 보다,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옛일을 생각하니 아직도 화가 나는가 보다, 건망증이 심해졌나 보다고 가볍게 넘기고 말았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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