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이 높냐, 우리 아들이 높으냐?

by 전우주

어느 날, 한밤중에 시어머니가 저희 부부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는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전이었지요.


"야야, 역장이 높냐, 우리 경욱이가 높으냐?"


제가 방문을 열자, 시어머니가 다짜고짜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습니다. 경욱이는 시어머니가 다섯 아들 중 최고로 치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넷째 아들을 말합니다. 당시 그 넷째 아들은 지방에서 도청 기획관리실장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아들의 직함이 너무 어려워서 틀리거나 더듬지 않고 한 번에 말하기가 어렵다고 불만이었지요.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시어머니가 한밤중에 제 방문을 두드리고 갑자기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뭐라고요?"

"내가 분해서 잠이 안 온다. 오늘 경로당에서 역장네 오마니가 자기 아들이 우리 경욱이보다 높다고 자꾸 그러잖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장보다 경욱이가 더 높은 것 같아. 내가 분해 죽겠어. 잠도 안 와"

"어머니, 두 사람이 하는 일이 달라서 누가 높다고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 할머니 아들은 역에서 높은 사람이고, 경욱이 서방님은 도청에서 높은 사람이에요. 이제 주무세요."

"에이, 그럼 내일 경로당 가서 우리 경욱이가 더 높다고 말 못 하겠네."


시어머니가 세상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는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흔히 출세했다고 하는 기준이지요. 시어머니는 그 아들보다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만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교장으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에요.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조카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작은 엄마는 정말 대단해요. 학생이 2000명에 직원이 100명도 넘는 큰 학교 교장 선생님이잖아요."

"교장이 뭐 학교에서나 높지, 우리 경욱이처럼 높으냐? 우리 경욱이가 더 높은 사람이지."

"아, 이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경욱이 삼촌을 뛰어넘을 수 없어."




저는 집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경로당 회원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략 10명 남짓 되는 경로당 회원들이 학교에 도착하면 먼저 교장실에서 차를 마시게 하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라고 말했지요. 시어머니는 이미 그날의 계획을 세워둔 것 같았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경로당 회원들이 한두 명씩 교장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차를 내오던 직원이 교장실에 들어와서 제게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오시는 어르신들이 끝이 안 보여요."

"그렇게 많이 오세요? 열 명이 좀 더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게 아니고요, 어르신들이 너무 천천히 걸어오고 계셔요. 아직도 저기 다리를 못 건넌 분도 계셔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나가서 모셔와야 할 것 같아요."



그날 경로당 회원들은 교장실 소파에 버티고 앉아 쌍화차를 마시며 저를 축하하고 칭찬했습니다.

"어쩜 여자분이 이렇게 큰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셨을까? 축하해요. 그리고 삼단 할머니, 며느님 잘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시어머니도 잘 모시고, 교장까지 되셨으니 이렇게 훌륭한 며느님이 어딨어요?"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차관이라우. 장차관 할 때, 그 차관 알지요? 차관이 교장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이지요."


그날도 저는 시어머니의 말에 납작하게 뭉개졌지요.




그리고 제가 퇴직하기 직전에 지역교육청의 교육장으로 발령받아 따로 관사에 나가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발령받은 지 한 달쯤 지난 후에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제가 살고 있는 관사에 다니러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관사를 여기저기 살펴보았지요. 시어머니는 제가 살고 있던 관사를 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시어머니의 관사 평가 기준은 역시 넷째 아들의 그것이었어요.


"야야, 경욱이가 부지사였을 때 관사가 몇 평이었지? 이건 한 30평은 되냐? 부지사 관사보다 엄청 좁다."


다음 날 제가 출근하겠다고 인사하면서, 저도 주무관이 운전하는 관용차를 타고 출퇴근한다고 시어머니에게 자랑삼아 말해 주었지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저를 따라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시어머니가 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말이에요. 당신의 아들은 일부러 관사에 가서 며칠씩 묵으면서 수행 직원이 집 앞까지 오는 출퇴근 의전을 구경했거든요. 그리고 두고두고 그 모습을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워했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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