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학교의 교사 평균연령은 상당히 젊은 편이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수업과 학교업무에 자녀 양육 등 집안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느낄 만큼 바쁘고 지친 모습이 눈에 띄었지요. 그리고 젊은 선생님들은 대부분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교장수업이 있어서 학년연구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한 선생님이 들어와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느라 냉장고와 수납장을 거칠게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요기할 것이 마땅히 없었던 모양이었어요.
다음날 아침, 저는 시어머니께 드릴 호박죽을 평소보다 더 끓여서 보온통에 담아 그 학년연구실에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호박죽을 먹은 선생님들이 소문을 냈는지, 다른 학년연구실에서도 먹고 싶다고 제게 학내망 메신저로 쪽지를 보냈습니다. 그 후 저는 집에서 간편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 때 조금씩 더하여 여러 학년연구실과 유치원, 행정실 등 교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보내 나누어 먹게 되었지요.
지난여름방학 때 만난 어느 선생님은, 제가 함께 근무할 때 만들어 준 방울토마토쨈 조리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집에 방울토마토가 남아서 그때 먹었던 맛을 떠올리며 쨈을 만들었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 학교에는 꽤나 넓은 옥상텃밭이 있었습니다. 옥상텃밭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정성을 기울여 기르던 방울토마토, 고추, 당근, 가지, 상추 등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지요. 그런데 여름방학을 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대로 말라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농사짓는 집에서 자란 까닭인 지, 식물을 죽게 하는 것이 마치 동물을 죽게 하는 것 못지않은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면 옥상에 올라가서 물을 주고, 익은 열매를 따다가 근무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풋고추며 잎채소도 종류가 제법 다양하여 점심 식사에 곁들여 먹기도 했지요.
그런데 끝물 방울토마토가 한꺼번에 익어 버리는 바람에 나누어 먹는 것으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궁리 끝에 집으로 가져가 토마토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개학날 학년연구실마다 식빵과 함께 나누어 주었지요. 지난여름방학 때 만났던 선생님은 아마 그 방울토마토 쨈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학교에서 아침죽을 먹은 어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아침에 주신 죽은 정말 최고예요! 그리고 먹을수록 교장선생님이 좋아져요. 이거 쿠킹 리더십이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음식을 나눈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가 있었고, 시어머니 때문에 죽을 자주 끓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선생님들이 이름 붙인 ‘쿠킹 리더십’은 그 실천 과정과 결과가 훈훈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