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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Oct 05. 2021

내 나이 26, 출세 가도를 달리다.

<꿈, 좀 바뀌면 어때>

 군중심리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따라 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내가 취업을 준비할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랄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오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 흥미도 없는 기계과에 입학한 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실은 6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느덧 취업 시즌이 다가오고 선배들, 동기들이 모두 죽어라 대기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나도 목숨을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미 모두 대기업에 취직한 친척 형들과 누나들을 보고 있자니 그것 또한 나에겐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야 너 토익 점수 몇 점이야?”

 “학과 성적은 몇 점인데?”     


 취준 시절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돌아오는 질문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질문에  

   

 “얘들아! 대기업만이 절대 중요한 게 아니야!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해!”     


 라는 말을 내뱉을 만큼의 위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말을 했다가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나 역시 그저 토익점수와 학교 성적만 신경 쓰는 전국에 수많은 취준생 중 한 명일 뿐이었으니까. 사회도 똑같았다. 환경도 미디어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좋은 회사를 가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별수 있나. 자소서나 써야지.

 일단 자기소개서의 자격증 칸에는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기업 질문란에는 최대한 빽빽하게 채워 넣어서 나를 멋진 사람으로 포장했지만, 대학교 때 한 거라곤 술 마시기와 운동밖에 없다 보니 해외라도 나갔다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들도 의미 있는 일로 적는 것이 자기소개서 아닌가. 그렇게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자소서였지만 나에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될 사람은 결국 되게 되어 있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진짜로 어떻게든 합격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회사에 서류 지원을 하고 합격 날짜를 기다렸다. 자기소개서엔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붙어야만 했다. 사실 또 쓰기 귀찮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10개 정도의 회사로부터 서류합격 통지를 받았다. 두 번째 관문이었던 '인적성 검사'. 해당 기업의 인적성 문제집을 사서 풀기 시작했는데 나는 적성에 맞는 게 없는 것인지 풀어도 풀어도 점수가 안 올랐다. 인성 하나는 기가 막힌 데 적성에서 막힐 줄이야. 그렇게 대부분의 인적성 시험에서 떨어졌다. 


 ‘진짜 면접만 가면 100%인데. 이런 시험 따위가 날 판단할 수 없어.’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농심 인적성을 치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한 날이었다. 사실 농심이라는 기업을 넣을 생각도 없었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루는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친구가 옆에서 그냥 한 번 넣어보기나 해라는 말에 지원했었는데 덜컥 서류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은 아무리 인터넷에 검색해도 농심 인적성 관련 문제집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른 회사 문제집을 사서 시험장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취준생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다른 시험도 준비하시나 봐요? 엄청 여유 로우시네요.”

 “네? 아 저... 농심 시험 준비하고 있는데요...?”

 “농심은 인적성이 아니라 논술인데요?”     


 망했다. 이 얼마나 멍청한가. 농심은 인적성 시험 대신 논술시험을 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장 휴대폰을 켰다. 초록 창에 '논술 적는 법'이라고 검색했다. 남은 시간은 10분. 그동안 논술의 기본 구조만 공부한 채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른 취준생은 논술 때문에 시간당 몇십만 원짜리 수업도 듣는다는데 이건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다. 10분이 지나고 앞사람이 시험지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받은 시험지에 문제는 단 하나였다.     


 '2017년 라면 업계의 동향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서술하시오.'     


 뭐야. 이거 할 만한데? 그 당시 유튜브에서는 삼양의 불닭볶음면 먹기 챌린지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중이었고 나는 대부분의 영상을 시청했었다. 그 영상들을 토대로 한국 라면의 세계화와 불닭볶음면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략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라면만 수백 개를 먹어보고 비교해 본 나로서는 솔직히 정말 감사한 문제였다. 그렇게 빠른 시간에 글을 작성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결과는 합격. 그렇게 며칠 뒤 첫 번째 면접 날이 다가왔고 기다림 끝에 면접실로 들어갔다.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보면 화내실 수도 있지만 사실 면접실로 들어갈 때까지 난 농심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없었다. 기계과랑 관련이 없었기도 했고 내가 생각했던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면접을 하면서도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면접관님들의 질문에 고민 없이 대답하고 면접이 끝이 날 때쯤이었다.     


 “형주 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으신가요?”

 “어... 저는 부산에서 왔는데 서울은 날씨가 정말 춥네요. 면접관님들 감기 조심하십시오”

 “하하하. 형주 씨는 면접이 안 떨리시나 봐요?”

 “아닙니다. 너무 편하게 대해주셔서 편하게 면접 볼 수 있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함께 면접을 본 면접생분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냐며 나에게 와서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뭔가 모를 죄송함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결과는 합격. 그 당시 농심과 함께 금호타이어도 1차 면접에 합격하여 두 개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금호타이어의 최종 면접을 일정상 먼저 보고 농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최종 면접에 들어가니 뉴스에서만 보던 농심 부회장님이 앉아계셨고 면접의 마지막 즈음이라 많이 지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우리가 아무리 대답을 해도 CG 처리 마냥 글자가 귀에서 튕겨나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때 면접관님이 공통 질문을 던지셨다.     


 “그럼 공통 질문 하나 드릴게요. 고객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신뢰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뭔가 달라야만 했다. 부회장님의 눈을 뜨이게 할 만한 대답이 없을까. 면접의 정석은 결론이 앞에 오는 두괄식 표현을 쓰는 것이지만 난 결론이 뒤에 오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미괄식에 내 면접을 배팅했다.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수십 년째 아버지 산소를 찾아주시는 친구분이 계십니다. 하루는 그 친구분께 왜 아직도 아버지를 챙겨주시냐고 물었을 때 친구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준 친구다‘라구요. 고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을 생각할 때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객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언젠가는 고객과의 관계에서 끈끈한 연결고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순간 부회장님의 몸이 10도 정도 앞으로 기울었다. 적어도 내 기억 상엔 확실하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끄덕이셨다. ‘오케이. 이건 됐다’. 뿌듯하게 면접실을 빠져나왔다. 며칠 뒤, 금호타이어에서 먼저 최종 합격 연락이 왔다. 그리곤 다음 주쯤 금호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나오는 길 버스 안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김형주 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아 네 여기 농심 인사팀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왜 전화를....”

 “농심 영업팀으로 지원을 하셨는데 꼭 영업팀으로 지원을 하셔야 하나요?”     


 뭐지. 마지막 테스트인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영업팀에 목숨을 걸고 싶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다 잘할 수 있습니다. 혹시 어떤 것 때문에...”

 “사실 면허도 없으셔서 영업팀으로는 합격이 힘든데, 혹시 부산공장에 인사팀 자리가 비었는데 혹시 인사팀도 괜찮으시나요?”

 “너무 괜찮습니다!”     


 전화를 끊고 바로 금호타이어에 합격을 포기한다는 전화를 한 뒤 농심 입사를 결정했다. 집에서도 지하철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인사팀이라는 직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에만 그리던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우리 과에서 내가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 보니 교수님들도 나를 따로 부르셔서 축하 인사를 해 주셨다. 어머니도 정말 좋아하셨다. 내 나이 26, 이렇게 출세 가도를 달릴 일만 남은 것인가. 그렇게 몇 달 뒤, 나의 파란만장한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짧고도 강렬했던 1년 3개월이란 회사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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