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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드림 Oct 08. 2021

사원보단 사장이 멋있잖아

<꿈, 좀 바뀌면 어때>

 “안녕하십니까! 인사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 김형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네 술은 좀 마시나?”

 “제 취미이자 특기가 음주,가무 입니다!”     


 이 글을 읽는 취준생이 있다면 나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일은 적당히, 술은 못한다고 해야 더 편한 회사 생활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취미가 음주 가무라는 말에 첫날부터 난 술자리로 끌려갔다. 당최 첫날은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다음 날 출근하니 피식거리는 사무실 사람들의 반응에 대충 짐작이 들었다. 젠장. 


 입사를 하고 남들과 같이 정장을 입고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보니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사회라는 공통체의 일원이 된 듯한, 마치 이 세상에 쓸모있는 존재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시리 넥타이도 한번 고쳐메보고 사무용 가방 손잡이도 꽉 쥐어보곤 했다. 그렇게 새로운 꿈을 그려보게 되었다.

 

 ‘나는 빨리 승진해서 팀장을 달고, 존경받는 선배가 될 거야.’   


신입임에도 큰 프로젝트를 맡아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고, 고속 승진을 하는 그런 상상, 아니 망상이었다. 당연하게도 현실은 달랐으니. 내 직무는 인사 노무팀이었는데 쉽게 말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주는 소통 창구 같은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입사 후 내 존재는 자대를 배치받은 신병처럼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손 많이 가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꿈꾸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얼굴도 위스키 색 같다.

 군대 신병 시절, 자대를 배치받고 부대로 갔을 때였다. 텅 빈 내무반에서 혼자 앉아 훈련을 나가 곧 돌아올 나의 80명의 선임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 남은 시간 동안 80개의 침구류를 모두 다시 개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칼 각으로. 그들이 돌아왔을 때 나는 최고의 신입이 되어 있었다.      


 회사도 다를 거 없잖아. 할수 있는 것 부터 다 해보는거야. 그때부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치껏 복사를 담당하기도, 절차가 복잡한 파일을 엑셀 공식을 사용해 편리하게 만들기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사를 하며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적응을 해나가던 찰나 사수로부터 첫 미션이 떨어졌다. 열정이 불타올랐다. 나에게 주어진 첫 미션이라니. 그건 바로 이름 외우기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우리 공장에는 생산팀이 11개, 사무팀이 4개, 그렇게 총 15개의 팀이 있었고 직원만 수백명이 있었다. 수백명의 이름을 빠르게 외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술을 같이 먹으면 된다. 그때부터 난 15개 모든 팀의 회식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회식을 가기 전 직원 정보를 검색해 이름과 사진을 매칭시키며 외우기도 했다. 내 사무실 달력 표에는 회사 스케줄이 아닌 회식 스케줄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 초반에는 술에 취해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적도 있었고, 팀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말씀하시는 도중 코를 골며 졸았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악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이름을 외워가던 찰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회사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가던 도중, 회사 사람과 같은 택시를 타게 되었다.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나와 달리, 회사 직원은 술에 만취가 되어 있었는데 술을 더 마시고 싶다며 기사님께 차를 돌려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기사님께 양해를 구해 해당 직원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택시비를 낸 뒤 그분을 겨우 부축해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 순간. 짝. 


 “어린놈의 XX가 돈 자랑하냐?”     


 머리가 핑 돌았다. 나 지금 맞은 건가. 그렇게 몇 대의 뺨을 더 맞았다. 그 당시에는 아프기보단 멘붕이 왔다. 이걸 참아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내가 이 사람을 다시 때린다면 다음 날 회사를 갈 수 있을지, 징계를 받지는 않을지 겁이 났다. 그러던 찰나 다행스럽게도 주위를 지나가시던 한 아주머님이 말려주신 덕에 그 상황은 정리가 되었지만, 다음날 그분은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원래 다 이런 건가?’     


 회사 동기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날부터 출근하기가 무서워지고 그분을 마주치기조차 무서웠다. 가끔 나를 부를 때면 트라우마처럼 몸이 떨려오기도 했다. 억지로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기억은 무뎌졌고, 나 역시 회사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챙겨주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맡은 일도 한두 개씩 늘어갔다. 사수가 중요한 자리에 나를 함께 데리고 다니며 다른 공장 분들에게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 가지의 고민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10년 뒤에 무슨 모습일까? 여전히 매일 술을 먹고, 술 먹은 분들을 챙기면서 퇴근하고, 다음 날 눈 뜨자마자 회사에 출근하고 있겠지?’


 자신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하기 싫었다. 하지만 친구나 부모님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돌아오는 같은 대답은     

 “다 그렇게 살아. 별 수 있냐.”     


 였다. 마음 안쪽에서부터 피어나던 고민은 점차 전이되어 내 머릿속까지 침투했다. 머리까지 지배당하다 보니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상과 현실이 머릿속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데? 대안은 있니?’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하고 싶은 일은 있긴 하고?’

 ‘그럼 하고 싶은 일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찾고 나서나 말해!’


 할 수 있는 반박이 없었다. 현실이 이겼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었다. 그렇게 난 사직서를 다시 서랍에 조용히 집어넣었다. 그러던 찰나, 우연의 일치인지 아는 형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형주야, 너 혹시 여행 많이 다니면서 게스트하우스 많이 다니지 않았니?”

 “저는 국, 내외 50군데 정도는 다닌 것 같은데요?”

 “그럼 물어볼 게 있는데 한번 만날래?”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형은 나에게 창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며칠간의 고민 끝에 창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을 힘겹게 설득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멋있게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는 장면을 늘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사직서를 낸 후, 8번 이상의 면담 끝에 퇴사 결정이 났다. 내가 나가면 골치가 아파서 그런 건지 내가 나름 잘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후자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꿈꾸던 최고의 회사원이란 꿈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허무했다.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아닌가.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가 8년 만에 겨우 금메달을 땄는데, 금메달이 싫다며 위원회에 반납하는 꼴처럼 느껴졌다. 근데 슬프진 않았다. 이걸 그만둔다고 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원보다는 사장이 더 멋있잖아?’     


 그렇게 목표를 재설정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꿈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는 것 같다. 근데 뭐 꿈, 좀 바뀌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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