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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10

25년 4월 6일

by 해마

떠돌이개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매일 그저 네 발을 흔드는 것 밖엔. 개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글자를 휘갈긴다는 것. 그들이 오줌을 휘갈기듯 배설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며칠 새 목련도 만개하고 벚꽃도 고개를 내미는데, 떠돌이개한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저 조금 덜 춥다는 게 달라질 뿐이겠지. 벚꽃이 만개해서 내 고개를 젖히게 만들더니, 그 잎은 얄밉게 아롱아롱 떨어져서 내 고개를 더 깊이 수그리게 한다. 나는 고개를 처박고 걸을 뿐이다.


어제는 내가 철수의 품에 안겨 울었고,

오늘은 철수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두 눈물의 공통점이 있다면 원인이 나라는 거다.

철수가 그리 서럽게 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철수는 뭐가 그리 아플까.


철수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들면 나를 팽하라고 했다. (버리라고 하고 싶었는데 철수가 슬퍼할까 봐 고작 생각해 낸 단어가 팽이다.) 다른 사람들이 욕하지 못하게 명분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조금 웃으며 말했다.

철수는 내 품에 안겨 그저, 어린아이처럼 슬픔을 어쩌지 못했다.


철수는 일회용 베갯잇과 마데카솔 분말 등등으로

조잡하지만 꽤 그럴듯하게 내 팔을 감싸줬다.

베갯잇의 촉감이 너무, 너무 부드러워서 내 마음까지 감싸안는 것 같았다.


철수네 갈 때마다 커피를 내려 마실 때 빨대가 없다고 불평을 했더니 핑크색 하트모양 빨대를 사뒀더라.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철수는 나를 만나기엔 너무 아까운.. 아깝고 큰 세상이다. 철수가 나때문에 아파하면 꼬옥 내 마음을 도려내더라도 보내주리. 다짐해 본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무게가 타인을 누르는 것. 나의 우울이 철수에게 스며들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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