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나 떨어져 버렸어.
불합격 통지서는 한 페이지도 채워지지 않더라. 실눈을 뜨고 봤음에도 간결한 문장에 단번에 알 수 있었어. 아, 불합격이구나. 씁쓸하더라. 뭐라고 적혀 있었냐고? 뭐긴,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의 앞날을 응원하겠다. 그런 시시한 인사치레밖에 없지. 내 얼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의미로 응원한다는 건지.
웃기게 통지서 읽자마자 그동안 계속 괴롭혀왔던 긴장도 풀렸지 뭐야. 배가 갑자기 너무 고파지더라고. 바로 휴대폰을 켜서 근처 맛집을 찾아봤어. 이 핑계로 평소에 먹고 싶었던 돈가스에 쫄면세트,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다 먹어치워 버렸지. 아 돈가스는 그냥 돈가스 아니다? 무려 고구마치즈돈가스로 먹었다고. 나름 사치도 부렸지.
근데 나 많이 허기졌나 봐.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입 안에 음식을 밀어 넣기 바빴어. 과하게 먹어서 그런가 속도 더부룩해. 그런데도 마음이 가벼워. 너 이 느낌 알아? 배는 든든하고 입맛도 없는데, 몸은 가벼워서 막 날아갈 것 같은 느낌. 지금 내가 딱 그래.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그간 쌓아왔던 마음의 부담도 날아갔나 봐. 이제야 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기대를 거는 건 괴로운 일이란 것도 알았어.
앞으로도 난 수백 번의 실패를 받겠지? 기대하고, 잠을 설치고,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도 또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겠지. 지금도 난 여전히 진행 중이야. 이번엔 좀 천천히 걸어오기만 바랄 뿐이지만.
그냥 난 이대로 있을 거야. 불합격을 받는 날은 먹고 싶었던 음식 실컷 먹는 날! 그럼 그날은 불합격을 받은 날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치즈돈가스를 먹은 날이 되는 거야. 허한 마음 내가 좋아하는 걸로 두둑이 채우는 거지. 오로지 날 위해서.
너는 뭘 하고 싶어?
불합격이 네게 오게 된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