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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는 이유

by 심심한 소녀



난 손목이 밧줄로 꽁꽁 묶여있는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어. 앞은 흰 면사포로 뒤덮여 보이지 않아.

그 순간 앞이 눈이 부셔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이 나를 감쌌지. 위를 쳐다보니 이름 모를 바람을 따라 흘러 들어온 꽃잎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 그때 난 깨달았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오로지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난 기어코 그 힘든 일들을 견뎠던 거야. 다시 돌아가도 난 여기로 돌아올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손목은 거친 밧줄에 살갗이 벗겨지고, 신발 없이 맨땅을 걷는 발은 이리저리 흠집이 새겨지고 있는데도 난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랐어. 아아 이것은 운명이었던 거야. 난 돌고 돌아 널 만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이유 중 유일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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