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상담 치료
첫 상담 치료를 받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당시 나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곧 다가올 시험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며 얻는 스트레스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니 어느 순간 의자에 꽁꽁 묶인 것처럼 앉은 채로 펜도 들지 못한 채 가만히 있게 되었다. 심지어 심한 날은 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스터디 카페에 앉아만 있자는 마음으로 갔다가 갑자기 가슴 속에서 용암 같은 것이 끓는 괴로움에 참을 수 없어 뛰쳐나와 버린 적도 있다. 병원에 가서 하소연했더니 상담치료를 권했고 당장 공부할 힘을 얻는 게 중요했던 나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상담치료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보고 싶었다. 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공 교직 과목으로도 상담에 대해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나 또한 상담을 하며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 호기심과는 달리 공부할 힘을 얻어야 한다는 세속적인 목적을 가지고 상담을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상담은 내게 파괴적일 정도의 큰 효과가 있었다.
첫 상담 날, 상담 선생님과 라포(rapport)를 쌓기 위한 첫 삽을 뜨는 날 정도로 생각하고 상담실에 갔다. 나를 간단히 소개하고 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나도 모르게 내 입은 학교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유,청소년기는 썩 즐겁지 않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학년 동안 내게 집착하며 날 괴롭히는 아이가 꼭 한 명 씩 반에 있었고 그건 중학교 때까지 다양하게 지속되었다.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면 해방감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누군가가 날 괴롭혔고 근 10년을 학교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반 친구들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사회적 불안이 매우 높아서 말수가 극도로 적은, 주변 아이들이 보기에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말이 없고 남의 말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 쉽게 착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따돌림과 같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반에 한 명이 꼭 내게 집착했다. 집착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학적으로 괴롭힌 것 이상의 것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괴롭힘인 경우도 있었지만 꽤 많은 경우는 내게 절친의 역할을 강요하며 항상 함께할 것을 요구했고 그 동안 가혹하게 괴롭혔다.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해방되어 살며 대학생활을 즐기고, 서른이 넘어가며 그 기억들이 모두 아카이빙의 형태로 저장되었다고 생각했다. 큰 도서관의 뒷편에 있는 고서 저장소처럼 언제든 열람할 수 있지만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는,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그런 기억. 하지만 첫 상담날 나는 내 신상명세를 밝힌 뒤 학교폭력 이야기를 했고 정작 내가 당시에 가진 문제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도 못했다. 한 시간 동안 과거 이야기를 소개하듯 짧게 이야기하고 다음 회기를 정한 뒤 집으로 왔다.
상담이 늦지 않은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짧게 일하고 다시 공부할 생각이었다. 일은 마쳤지만 공부는 하지 못했다.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은 어찌저찌 끝냈지만 그러고 나니 머리가 무거워 공부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명상하듯 날 살폈다. 첫 상담 1회만으로도 내 내면은 크게 요동쳤고 그 여파에앓아누웠다.
몸이 아닌 마음의 통증에 끙끙 앓으며 내가 참 바보 같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고서 저장소에 언제든 접할 수 있는 기억 저장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땅을 파 독을 묻고 그 안에 다 쏟아부은 뒤 봉했을 뿐이었다. 발효되다 못해 부패한 과거의 기억들은 곪아 터져 마음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다 괜찮아졌다고 착각하고(혹은 착각하고 싶어하고) 살아온 것이다.
고작 한 번으로 이 정도의 파급력이라니, 나는 앞으로의 상담 치료가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끼칠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먼저 상처를 긁어내듯이 소독해야 한다. 다들 그게 두려워 치료하지 않고 나아지길 바라며 그냥 두지만 그건 결국 크게 흉이 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제 곪은 상처를 발견한 나는 앞으로의 상담 치료가 내 내면의 방어기제들을 부수고 내 상처와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게 할 것을 알았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다행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대한 의지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플 거면 빨리 아프자.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그게 내 태도다. 남들 다 무서워 하는 치과도 아무렇지 않게 가버리는 사람. 조금은 두려웠지만 더 나아질 내 마음의 상태를 기대하며 그렇게 첫 상담 날을 앓으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