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 어느 저녁, 동네에서 유명한 꽈배기 가게에 가서 갓 튀긴 꽈배기를 두 개 샀다. 설탕을 양면으로 잔뜩 묻혀 넣은 봉투에서는 실안개처럼 흰 증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집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도착해서 외투를 벗고 손을 씻고 왔어도 봉투에 온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꽈배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파삭- 바삭한 겉면 안으로 숙성된 반죽이 알맞게 익어 부드럽게 혀끝에서 녹아내리듯 부서졌다. 충분한 단맛과 고소한 기름맛, 말 그대로 입안에 황홀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잔잔하게 울리는 작은 목소리. 아, 죽고 싶다.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살 사고를 하지 않는단다. 꽤나 충격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일 죽고 싶었고 마음이 힘들 때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죽는 방식을 상상하기도 한다. 죽고 싶다는 말은 내게 힘들다, 괴롭다는 말의 비유적인 동의어였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무언가 지치는 일이 생기거나 삶이 힘들 때 당연히 죽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힘들면 힘들어하고 괴로우면 괴로워하는 것으로 끝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정말 참을 수 없이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길가의 돌이 되거나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차가 치어 사고가 나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동적인 사고만 한다는 것이다. 삶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방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하던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보통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안 한다고?
건강한 사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시달리다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울증의 증상이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신호가 된다-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을 때 나는 잠시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죽고 싶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날 속이는 것은 아닐까?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정말 일상적으로 자살 사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비슷한 의견인 친구들은 보통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아, 이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그것을 병원에 다니고 있던 나도 몰랐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매일 불행한 것은 아니다. 즐거운 일도 많이 있고 편안한 상태도 종종 온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내 머리 한 켠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툇마루 구석에 박힌 녹슨 못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죽고 싶어.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죽고 싶어. 이런 큰 행운이 와서 죽고 싶어. 정말 어떠해서 죽고 싶다는 인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났지만, 일어났더라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가볍게 표현한 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듣고 소아우울증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안 한다는 생각을 그 나이부터 했다니 나도 참 운이 없었구나, 세상이 그 어린 애한테 가혹했구나 싶었다.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이미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내 삶에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오래 전부터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게 된 것은 대학에 가고 나서였다. 좋은 수능 성적으로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에 가고 기깔나게 대학 생활을 즐긴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 아니라 남이 부러워 할 만한 삶이었다.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갑자기 확 우울해지고 거기서 헤어나오기 어려워지는 일이 잦아졌고 정서적 기복이 곧 있으면 일상 생활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병원을 찾게 되었다. 열심히 치료를 받았지만 그 이후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종종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상상하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다니던 병원 의사 선생님이 상담 치료를 권했고 그 말대로 상담 치료를 하며 검은 안개 속에 보이지 않던 내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괴로웠고 슬펐으며 화가 났고 서글펐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면 너무 힘드니까 일찍부터 감각을 차단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고 모든 괴로움을 독에 묻어두고 잊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독 안에서 썩다 못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은 것들이 통제할 수 없이 밀려나왔고 병으로 발현되었다. 그리고 맛있는 꽈배기를 먹어도 죽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꽈배기를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아도 왜 죽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까. 왜 죽고 싶은 걸까. 언제부터, 어떻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