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3. 폭력적인 첫 기억

by 해파리

누군가 나에게 윽박지른 기억 중 가장 이른 것은 유치원 때 것이다. 나는 갓 개발된 서울 외곽 지역에 살았다. 주택공사 이름으로 지어진 수많은 새 아파트에 90년대 초 신혼부부들이 몰려왔고 내 부모님도 그 중 하나였다. 지역 전체가 비슷한 연배의 신혼부부들과 거의 나이가 같은 첫째 아이, 그리고 조금씩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 아이 4인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집과 유치원, 학교는 다 같은 아이들과 공간만 이동해서 다니는 셈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초등학생 형이 날 아파트 계단에 세워두고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올라가며 ‘넌 여기 그냥 서 있어!’라고 했다. 전후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따르고 싶지 않은 그 말을 따르며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후 맥락이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때 내가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서른이 넘어 adhd를 진단받았다. 당연히 유치원 때도 adhd였고 그래서 눈치가 없고 주변 분위기나 맥락을 잘 읽지 못했다. 말수가 없던 이유가 거기에도 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종의 이유로 나는 강압적인 명령을 받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억울한 마음으로 계단 앞에 서있었다. 이 기억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괴롭힘에 취약한 이유를 조금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질적으로 사회적 불안이 높았을 수도 있고 adhd로 인해 주변 분위기에 녹아들어가지 못해 사회적 불안이 높아졌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어렸을 적 나는 주변 아이들의 대화에 쉽게 끼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함께 놀자고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공기처럼 병풍처럼 뒤늦게 존재를 알게 되거나 아예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존재. 그래서 요즘 흔히 말하는 ‘금쪽이‘처럼 폭력적 기질을 가지거나 자기 내면의 불안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딱 좋았다. 무리와 함께 몰려 다니지도 않으면서 말이 없고 두부처럼 희고 통통한 아이. 으깨버리고 싶은 욕구가 들었나 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짓궂은 장난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같은 반 한 아이가 나와 집이 같은 방향이었는데 내 집이 더 가까워 내가 아파트 입구에서 인사하려고 할 때마다 내 신발 주머니를 빼앗고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 아이가 그 장난을 꽤 즐기는 표정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 아이 나름의 놀자는 신호이자 나와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집에 10분이고 15분이고 늦게 들어 가게 되는 게 난감해 나는 무척 짜증이 났고 가끔은 절박한 마음으로 왜 내 신발 주머니를 빼앗고 이러나 싶었다. 그래도 그건 학교에 가기 싫을 만큼 날 힘들게 하지 않았다.

집에 가지 못하게 내 길을 막아서거나 물건을 가져가 빼앗아 보라는 식의 장난을 하는 것은 1학년 이후에도 종종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나와 노는 게(그것을 놀이라고 한다면) 재밌었을 것이고 그건 아직 미숙한 초등학생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그걸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기에는 머리가 굵지 못해 거기서 더 깊은 우정을 다지지는 못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다. 문제는 그 이상의 방식으로 날 괴롭히는 일들이 1학년 이후에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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