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4. 찬

by 해파리

3학년 때 그 아이가 어쩌다 나와 붙어 있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갔을 리가 없고 같은 모둠으로 앉게 된 적도 없었으므로 당연히 그 아이가 내게 먼저 접근했을 것이다. 그때 학생들 순서를 성씨를 기준으로 정했는데 그 아이는 ㄱ, 나는 한참 뒤의 자음이었어서 학습활동 같은 것으로 연결될 일도 없었다. 편의상 그 아이를 찬으로 칭하겠다.

찬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반곱슬 머리카락, 쌍꺼풀과 눈썹이 짙고 턱이 날렵한 얼굴로 요즘 말하는 아이돌 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직 아이들이 성에 눈 뜨기 전이었고 특별히 그 아이가 인기 있거나 하진 않았다. 가끔은 내 좋은 기억력이 날 괴롭히던 아이들의 얼굴을 세세히 떠올리게 만들어 화가 날 때가 있다.

찬이 날 괴롭히는 방식은 조금 우습다. 나는 촉각이 예민하고 간지럼을 잘 타는 편인데 찬은 그런 내 몸을 일찍 파악했다. 찬은 시시때때로 내게 와 내 갈비뼈를 기타줄 튕기듯이 거칠게 긁어댔고 나는 반은 아픈 상태로 간지럼에 시달려야 했다. 피부를 살살 매만지는 간지럼이 아니라 갈비뼈를 손끝으로 세게 눌러 위아래로 긁어 일으키는 간지럼이었고 처음에는 웃으며 그 아이를 말렸다. 하지만 그 아이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내게 와 내 갈비뼈를 아프게 긁었고 나는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에 수치심과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체육시간은 내게 고역이었다. 원래도 체육활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체육시간이 되면 그 아이가 한 시간 내내 내게 붙어 담임 선생님이 보지 않는 사이에 날 괴롭혔다. 그 아이는 신났을 것이다. 앞뒤로 쉬는시간까지 포함해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몸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었으니까. 어느 체육시간에 나는 결국 멈추지 않는 그 아이의 손길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서럽게 울자 그 아이는 도망갔고 담임 선생님은 내게 왜 우냐고 추궁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신체적으로 괴롭혀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완고한 담임 선생님의 추궁은 마치 혼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자 담임 선생님은 답답한 마음에 ‘네 맘대로 해! 어후!’하며 쿵쿵거리며 아이들에게 돌아가버렸다. 만 8세 아동에게 주변 환경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너무나도 깊이 이해한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난 이런 꼴을 당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남에게도 알려야 한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면서 온갖 존엄이 무너져도 나 스스로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게 내 마지막 존엄이기 때문에. 학교 폭력으로 인한 괴로움보다 내가 나를 그런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수치스럽고 괴롭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어리석을 정도로 노력한다. 그건 실낱같은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비참한 방어기제라 볼 수 있다.

한 학기 내내 그 아이는 내 몸에 꾸준히 괴로움을 선사했다. 현재의 나는 촉각이 예민하다. 그런데 기질적으로 촉각이 예민한 것인지 학교 폭력으로 인한 반동으로 촉각이 예민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 아이는 내 몸이 잔뜩 예민해지게 만들었고 나는 누군가의 살이 닿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내 몸에 닿는 것도 싫어하게 되었다. 아직도 잠을 잘 때 이불을 최대한 팔다리에 감아 내 살끼리 접촉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아이의 괴롭힘은 간지러움을 태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조금씩 더 발전하고 확장되었다. 그 아이의 집은 학교 후문 방향이었고 내 집은 정문 방향이어서 학교가 파하면 마주칠 일이 없었다. 종례가 끝나면 나는 최대한 빨리 교실을 빠져나가려 했고 운이 좋으면 그 아이의 괴롭힘 없이 집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 아이는 날 붙들어 놓기 위해 내게 쏜살같이 달려왔고 나는 집에 가기 전에도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 가는 방향 따라 날 끌고 가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와 정문에서 딴길로 새게 해 날 끌고 다녔다.

현재 구축 아파트로 불리는 아파트 단지들의 좋은 점은 나무와 공원부지가 많은 것이다. 학교 근처에도 아파트 단지 근처에도 나무나 풀숲이 많았고 학교 주변은 전부 구축 아파트 단지(당시에는 신축)였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더라도 나무가 빽빽할 정도로 많았다. 그 아이가 정문으로 따라와 날 다른 방향으로 이끌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내 몸을 마구 괴롭혔다. 난 누군가 볼까봐 신경이 잔뜩 예민해진 상태로 몸의 고통과 별개로 주위를 살피느라 바빴고 내 뇌는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 모두 과부하된 상태로 각성되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찬은 정문 옆 테니스장으로 날 이끌었다. 거기엔 찬의 친구이자 나와 같은 반인 아이도 함께 했다. 찬은 풀숲 사이에서 개나리 가지 정도의 가늘고 질긴 가지를 꺾었다. 회초리로 쓰기 딱 좋은 가지였다. 찬은 그걸 회초리 삼아 휘두르더니 내게 손을 내밀게 한 뒤 찰싹찰싹 때렸다. 손바닥이 따가운 것도 싫었지만 찬의 명령에 휘둘리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찬이 내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리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찬은 신이 났는지 밝게 웃으며 나를 으슥한 풀숲을 등지고 서게 하더니 바지를 벗으라 했다. 나는 몹시 당황해 되물었지만 찬은 완고하게 내게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고 했고 강제로 바지를 벗길 태세였다. 겨우 바지 앞부분은 내리지 않고 고정해 잡은 상태에서 찬이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노출했고 찬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얻은 듯 재미지게 내 엉덩이를 살펴 본 뒤 회초리로 때렸다. 옆에 있는 찬의 친구는 내내 찬과 동일화되어 찬의 명령을 되풀이하며 앵무새처럼 굴었다.

찬에게 벗어나 집에 오는 동안은 홀가분했다.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해방감이 컸다. 하지만 조금은 울적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도록 나도 모르게 내게 진통제를 놓아 비참함과 수치스러움은 미미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진통제를 먹고 약간의 통증을 참는 환자처럼 조금 괴로운 상태로 집에 왔다.

찬의 괴롭힘은 그 이후로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할 수 있는 괴롭힘의 수준이 대단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찬은 내가 찬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이용했다. 찬이 내 몸을 아프게 문질러댈 때 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체념한 채 맞이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중간중간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너무 바빴고 나는 말주변이 없어 우물쭈물 거리다가 선생님과의 대화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 찬은 그때부터 자신의 지배가 완전해졌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반년을 시달리다 어느 날 찬이 후문으로 날 끌고 가며 잔뜩 괴롭혔다. 찬의 집 근처에서 벗어나 집으로 오는 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괴롭힘 당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평소 고통스러운 티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극단적으로 날 억누르며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정말 너무 많이 힘들었다. 아직 어린 학생 입장에서 집과 동떨어진 익숙하지 않은 경로로 간 것도 두려운 일인데 되돌아가는 길은 두 배가 되었고 하교 시간이 조금 지나 학생이 드문 길은 내가 외톨이라는 느낌도 주었다. 어느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고 난 내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 떨어져 홀로 집까지 가는 여정을 해야 했다. 내 처지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내일 학교에 가면 다시 찬에게 괴롭힘을 받고 또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고 나는 깊이 없는 무저갱에 빠진 것처럼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는 기분이 되었다.

겨우겨우 눈물을 참으며 집에 왔지만 집 벨을 눌러 엄마가 문을 열어주게 되면 참을 수 없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 현관 앞 복도에 팔을 걸치고 기대 서서 한참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평화롭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놀이터와 주차장. 그리고 맑은 하늘. 그 넓은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은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집에 왔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 꼴도 싫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엄마가 나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엄마는 왜 복도에 가만히 있냐고 물었다. 내가 오지 않아 기다리던 엄마는 베란다로 내가 오는 길목을 보다 내가 보이지 않자 날 찾으러 갈 생각으로 현관문을 나서려 했다. 그러다 마침 현관문에 붙어있는 렌즈구멍을 통해 밖을 보았고 복도에 서 있는 나를 본 것이다.

아직 완전히 눈물이 그치지 않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는 차분히 나를 앉히고 내가 말하는 것을 기다리며 천천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찬이라는 같은 반 아이가 날 괴롭힌다는 말을 이해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저녁까지 엄마의 전화가 이어졌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고 같은 반 학생들 집전화도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리 반 찬의 집까지 전화를 할 수 있었고 다른 말 없이 찬이 날 괴롭힌다는 사실을 찬의 어머니에게 주지했고 사과를 받아냈다. 찬의 어머니 말에 의하면 전화를 받는 동안 찬은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쉽게 찬이 무너진다는 게 허무했다. 그렇게 날 괴롭게 하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을 준 존재가 그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무너진다는 것에 나 스스로에 대한 경멸 같은 것을 느꼈다. 고작 그런 존재에게 휘둘린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건 곧바로 내면화되어 이후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전화를 끊은 엄마는 다 해결되었다고 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았다. 그 순간을 잊고 싶었다. 평소 보던 프로그램도 아니었지만 티비에 눈을 맞추고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컨텐츠를 무지한 상태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찬은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 나는 허무하리만큼 홀가분해져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기쁨은 없었다. 그냥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아마 그때 이미 소아 우울증 상태였을 것 같다.

일은 ‘해결’되었지만 아무도 내 상태를 물어봐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힘들었지?‘라 묻지 않았고 아무도 날 달래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내 괴로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찬이 울면서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지만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내게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내가 괴로웠던 반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부정당한 것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은 그대로 흘렀고 내 상처는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겹겹이 옷을 입은 것처럼 싸매졌다.

몇 달 지나 찬은 잘못했다고 했던 것을 잊었는지 다시 날 괴롭히려 들었다. 나는 체육시간과 쉬는 시간 내내 시달리다 울어버렸지만 얼른 눈물을 훔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교실에 돌아왔다. 엄마에게 다시 말하진 않았다. 아마 찬의 일을 ‘해결‘해준 엄마의 방식이 내게 기껍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친한 학부모들 중에는 찬과 나의 일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한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찬과 나의 일을 이야기했고 담임 선생님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학부모들끼리 학급 갈등을 해결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를 복도에 잡아두고 물었다. ‘너 찬에게 괴롭힘 당했다며. 왜 말 안 했어? 왜 말 안 했냐고.‘ 나무 막대를 회초리처럼 들고 나를 구석에 모는 것처럼 한 채 고압적으로 내게 묻던 말투까지 나는 갑자기 혼나는 학생이 되었다. 나는 개구진 말투로 ’몰라요.‘ 라는 말만 반복했고 선생님은 청소지도 때문에 나와 대치하다 포기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마음 깊이 되새긴 것 같다.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안 되겠구나. 절대 들키면 안 되는구나.

담임 선생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간다. 교육을 전공하고 교생 실습까지 하며 교사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학급 운영 중에 학부모끼리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조용히 넘어갔다면 담임 교사로서 아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당시 어린 아이였고 당연하지만 그건 내가 이해해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불친절한 반응을 수용하며 정작 내 심정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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