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레제

by 네린

"이토록 평범한 미래"로 처음 알게 된 김연수 작가. 여기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사랑의 단상 2014"를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진하다. 오랜만에 책을 사볼까 온라인교보를 구경하다가 발견한, 김연수 작가의 다른 단편집. 시원한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책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아서 다른 책도 읽어보기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사면서 사실은 조금 아쉬웠다. 날이 쌀쌀해지던 시기에 사서, 이제 추워지나 싶을 때 읽었으니. 표지도, 제목도 조금 더 더운 날에 읽었으면 잘 어울렸을 텐데 하는. 계절 따라 생각나는 책들이 있는데, 무더위가 덮쳤던 한여름에 읽었다면 어쩌면 이 책도 그런 책으로 기억에 남았을까.


p.35 여름의 마지막 숨결

그로무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언제나 듣고 싶은 말, 괜찮다. 어릴 적 이전과는 달라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 어린 시절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분명 나와 어울리던 친구였는데, 왠지 모를 마음의 거리감이 생기고 이제 우리가 달라졌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이상한 느낌. 하지만 사람은 아주 느리게,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니까. 세상에 한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 그래서 위로가 되는 것 같다.


p.119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

관계라는 건 실로 양쪽을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 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라도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것. 관계는 둘이 함께 만드는 거라서, 한쪽이 끝내면 내가 아무리 잡아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라는 말이 참 쓰린 느낌을 주는 거겠지만. 지나간 사람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놓는 게 왜 어려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관계라도 나 혼자 잡으려고 애쓰는 건 좋지 않으니까, 서로에게 노력하는 관계에 집중하고 더 고마워하며 지내기를.


p.281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잘못된 선택은 없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이 문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침인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단편의 주인공이 잠결에 썼던 '잘못된 선택은 없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리고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넣어 연결.

'괜찮다'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은 없다는 말도 꽤나 위로가 되는 말이다. 단편에서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며 엄마는 평온했다고 말한다. 잘못된 것은 없으니 현재를 받아들이고 평온해지는 것. 괜찮은 방법이다. 이미 지난 과거를 잘못된 선택보다는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조금 덜 괴로워질 수도 있겠다.


구절을 적지는 않았지만 '나와 같은 빛을 보니?'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딸이 일본으로 시집을 간 것 같다. 그리고 외손녀가 보낸 편지에서 딸의 장례가 끝났다고 한다. 거꾸리에서 우는 할머니, 그리고 언제 울었냐는 듯 '나'에게 우리 저녁 먹자고 하는 할머니. 그 잠깐의 눈물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거기 까만 부분에'에 등장하는, 시진이의 엄마는 어릴 때 서진이가 잠투정 심하게 할 때 업고 토닥이면 신기하게도 금방 잠들었다고, 자무는 바람 불면 살살 흔들리니까 우리 시진이 잘 자라고 수목장을 했다고. 부모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도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대체 무언지.


위에 썼듯이,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면서 울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왜 김연수 작가의 글은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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