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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벨라 Sep 16. 2022

빨간 알감자

1


     내가 집에서 먹는 감자는 자줒빛나는 감자이다. 알이 굵은 것도 있지만 상에 올라오는 감자는 작은 알감자이다. 생기긴 자주 알같이 생겼지만 정식 이름은 빨간 알감자이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감자를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칼로 반토막 내어 마이크로 오분에 5분 넣었다. 커낸 감자를 다시 한번 뒤집어 주고 마이크로 오분에 3분 더 넣어 주었다.

     감자를 포크로 찔러보니 부드럽게 들어간다. 정말로 잘 삶아진 감자가 되었다.


2

     설거지를 하다 보니 알감자 한알이 비늘 봉지에 달랑 남아 있었다.

     옛날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물병에 고구마와 감자를 세워두면 줄기와 이파리가 눈을 통해 자라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선반 위에 깨끗이 닦여져 있는 스타벅스 커피 병을 들어 내렸다. 빈병에 찬물을 꼭대기까지 다 채우고 감자 한 알을 위에 놓았다.

     감자의 눈이 물에 닿도록 잘 세워두었다. 이렇게 하면 감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감자는 쏙 들어간 눈 아래로 허연 실뿌리를 길게 내리고 위로는 줄기와 싱싱한 초록빛 이파리를 피울 것이다.

     오늘 하루 빨간 알 검자 한 알이 죽음에서 구제되었다.


3

     빨간 알 감자는 흰 감자나 고구마와 다른 것일까? 뿌리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 위로만 자라는데 이파리도 없고 여러 개의 혹이 달라붙은 모양의 혹 덩이 일뿐이다. 어떻게 보면 선인장 같기도 하다. 감자를 만져보면 싱싱하고 단단한 것이 없다. 시들어 주굴 거릴 뿐이다.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감자를 저녁마다 살피는데 영 자라주질 않는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뿌리도 내리지 않고 있다. 뿌리가 없는 것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좋은 것이 아닌가 보다.

     빨간 알 감자 한 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빨간 알 감자 한 알이 물을 먹으면서도 말라가고 있다. 빨간 알 감자 한 알이 나의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거부하고 있다. 버려야 하는 것일까? 버려져 쓰레기통에서 말라죽어가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알 감자 한 알이 왜 이리 가여워 보이는지, 감자 한 알아 살기 힘들어 생명을 거부할 때, 나도 그때 감자의 생명을 거두어 주어야 하는 걸까.

     오늘 하루 빨간 알 감자 한 알이 죽음을 앞두고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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