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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벨라 Sep 16. 2022

아버지의 손

     얼마 전부터 밤잠을 설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손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다섯 단계로 딸에게 오신다.

     포옹 포동 했을 아기의 손, 하얀 손, 기름에 찌든 손, 환한 손,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시던 뼈 만 남은 앙상한 손이다.

     아버지의 손도 처음엔 나의 딸과 아들의 손과 같았을 것이다. 포동포동했을 것이고,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그들의 손가락을 꼬옥 잡고 놓치지 않았을 그런 아기의 손 말이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는 인천의 장안 극장. 가수 한명숙, 현미가 온다는 그런 쇼였다.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러 가신 아버지에게 3살쯤 된 나는 “아버지 가~자.” 하며 서서 칭얼거리기만 했었다. 그것도 중간에,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의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말이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으시고는 한마디의 꾸중도 없이 나와 주셨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나를 자주 부대로 데리고 들어 가셨다. 그때의 아버지는 날씬한 몸매에 군복을 멋지게 입으셨고, 외출할 때 종종 나와 동행하셨는데 나의 손을 잡은 그 손은 하얀 손이었다.

     미국에 오셔서는 줄 곳 기계 고치는 일을 하셨다. 자동차, 풀 깎는 기계 등등. 그래서 아버지의 손엔 언제나 기름이 묻혀 있었다.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그런 기름에 쩔은 손 말이다. 그 시커먼 손은 마구 술과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게 했고, 이러한 아버지는 딸에게 많은 서글픔을 주셨다.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속상함을 겉으로 표현하신 이민 일세의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손은 기름에 찌든 손이었다.

     환한 손은, 그렇게 즐기시던 술도 담배도 끊으시고 오래 해 오던 신앙생활에 열매를 보시고 장로님이 되신 아버지의 손이다.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주위의 말씀을 들으셨는데, 손마저 변해주었다. 환한 손은 열심히 성경책을 읽게 하셨고, 방마다 배치해 두었던 돋보기를 집으셨고, 교회 장부 도정리 하셨고, 열심히 어머니와 여행을 하셨고, 그리고 집을 다녀가는 딸을 향해 흔들어 주셨던 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약 한 달 전부터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지냈다. 보통 낮에는 큰언니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했고, 나는 일을 간단히 하고 저녁때 부모님 집으로 퇴근하고 다음날 회사로 출근하고 했었다. 췌장암 선고받으신지 석 달도 채 못 사신 아버지의 온몸은 앙상하였다.

     뼈 만 남은 손은 언제나 딸들의 손에, 어머니의 손에, 아둘의 손에, 며느리의 손에 항상 안겨져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랬다. 내 두 손에 접히신 아버지의  굳어져 거던 왼손. 급히 동생과 어머니가 주물러 주니 펴지는가 싶더니 마지막 숨을 내 쉬고는 식구 앞에서 영영 떠나셨다. 그때의 아버지의 손은 차가운 석고상으로 변해가고 있던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손을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떠올린다. 혼동함이 있다면 분명히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의 손을 잡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잠 속으로 스르르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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