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벨라 Sep 16. 2022

어머니와 철든 딸의 외출

     전화를 거니 밭에서 채소를 가꾸신다기에 올케에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했다. 백건우 씨의 피아노 독주회에 어머니도 가시겠다고 말이다. 가시겠다고 조금 후 올케로부터 연락이 왔고 나는 독주회 시간에 맞춰 어머니의 집엘 들렸다. “그래, 어딜 간다고?” 머리를 손질하시면서 물어보신다. “아니, 엄마는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간다고 했어요?” 했더니, 딸이 오랜만에 엄마랑 외출하자는데 어디 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셨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시고 부엌에 가셔서는 적은 병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밭에서 딴 싱싱한 오이 하나를 흐르는 찬물에 씻어 비늘 봉지에 봉해 가방에 넣으신다. 물은 모녀가 목마를까, 오이는 3경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딸이 배고파할까 봐 준비하시는 것이다.

     백건우 씨가 무대애 등장, 정중히 고개 숙이자 크고 기다란 환영의 박수가 터졌다. 나도 어머니도 처음으로 뵙는 백건우 씨를 향해 높이 손을 들고 손바닥이 빨갛도록 환영했다.

    기침소리가 여기저기서 전염병 마냥 날아다니기도 했고 특히 앞에 앉아 있는 꼬마는 11, 12살이 되었을까? 친구들과 놀기로 되어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영광인 독주회에 와서는 갖갑해 어쩔줄 몰라하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앉은 의자가 덜커덕 소릴 쳤지만 선명한 피아노 소리 색깔을 귀로 잡으며 눈울 감았다.

     오랜만에 주위를 인삭하지 않고 백 건우 씨의 피아노곡에 몸을 맡기고 훨훨 나르려 했다.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고 몇 분 지나면 온몸이 평화로워진다. 컴컴한 터널이 눈앞에 나오고 나는 그 속을 적당한 속력으로 날아가듯 빛을 향해 빠져나오면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호수가 보이고….

     이때다. “스트워 생각나지?” 속삭이듯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어느새 하늘에서 땅으로 뚝 떨어지듯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쉬-잇 하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가끔 야박한 소리를 하는 딸은 쉬는 시간을 이용, 음악회에서 연주 중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의 아들 스트워를 생각하셨다며 당신의 손자도 피아노를 저토록 잘 치게 해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기도 하셨단다.

     3부에 들어선 후부터는 어머니의 가방안에 숨어있는 오이에 신경이 쓰였다. 과연, “오이 먹으려니?” 어머니께서 물어보셨다. 어머니에게 두 눈동자가 각각 돌아가는 광대 모습을 보여주며, “엄마, 꼭 극 정안에서 오징어 씹자는 얘기 같아요.”했다. 어머니는 시-익 웃으시더니, “그러면 물이라도 마셔라.” 하시며 물병을 가만하 내밀으셨다.

     어느덧 나는 철이 들어있었다. 오이 먹으려니 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만큼 헤아리고 따스한 정을 느꼈던 것이다. 손자를 감히 백건우 씨와 비교해 보는 배짱은 오작 할머니만이 간직하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딸과 외출한다는 것이 중요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글 손님과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