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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벨라 Sep 23. 2022

캘리포니아에서 부동산을 하면서 (3)

강 선생 님의 고향길

강 선생 님이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다.


십 년이 훨씬 전인 어느 날 전화번호 책을 열고는 이곳저곳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선생님 댁의 전화와 연결되었다. 용건은 혹시 집을 팔고 사실 생각이 있으신가 알아보는 전화마케팅이었다.


집은 팔 계획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이렇게 인연이 된 강 선생 님과 10년을 전화로만 알고 지내오다가 오늘 아침, 미국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강 선생 님의 건강은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로만 짐작할 뿐이었다. 건강하시던 강 선생님은 몇 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지셔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시다.


오늘 오후 1시 비행기 편으로 한국으로, 고국으로, 고향인 제주도로 떠나셨다. 가방이 매우 무거웠는데 무사히 잘 통과되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고국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여정 중에 이틀 밤을 제주도에서 지낸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단 이틀을 지낸 기억만을 가지고도 강선 생님의  고향인 제주도를 마치 내가 속속들이 아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었다.


오렌지, 귤밭이 기억나고, 진분홍과 하얀 구름 색의 코스모스 밭이 기억난다. 간간이 무 밭이 있어 아주머니들의 손에서 싱싱한 무가 흙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허옇고 초록색이 분명한 무에서 힘찬 젊음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리고 동충화초를 제조하고 있는 징그럽고 신비한 농장도 견학하였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제주도” 는 돌과 바람과 해녀로 유명하다고 공부한 기억이 있다. 고국방문 중에 돌이 많음을 보았다. 진 회색깔의 돌 들이었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흑돼지고기라 면서 상에 올라온 고기가 있었는데 같이 여행하고 있던 분들과 맛에 취해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고향이 강 선생 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5남매의 자녀와 10명의 손자들이 있다고 하셨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계속 말씀해 드렸다. 나에게도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당부하셨다.


병 속에 오래 계셔서인지 강 선생 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달관하신 듯 보이셨다. 온몸으로 온화함을 풍기시며 조카가 운전하는 차 속에 몸과 짐을 맡기 신 체 두 손을 흔드시며 떠나셨다. 편지하자는 약속과 한국에 한번 나오라는 약속을 나에게 받아가지고 떠나셨다. 많은 집안 살림을 다 놓아 두신체 두 손을 흔드시며 떠나셨다.

  

자동차는 어제 폐차시켰고, 밥그릇, 접시, 곰 인형들, 화장품, TV, 옷장 속의 옷들, 신발들, 책, 녹음기, 다이닝 테이블, 의자, 이불, 베개… 살림을 그대로 두신채 떠나셨다.


주인 떠난 집에 들어와 마지막으로 부엌을 한번 더 살피는데 밥솥에서 전기가 흐른다. 열어보니 하얀 쌀밥이 따스한 김을 내고 있었다. 나오면서 밥통의 전기코드를 빼 주었다.


지금 오후 3시다. 이미 창공을 나르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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