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먼 곳에 있었습니다. 거리로는 로마나 파리보다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 속에는 훨씬 더 먼 곳에 있었습니다.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비잔틴이 서로 구별되지 않은 채 흑해처럼 몽매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아득한 거리감과 무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게도 의문입니다. 이곳에 와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머릿속에 완강히 버티고 있는 이중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의 벽과 유럽의 벽이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 역사의 곳곳에 세워져 있는 벽이며,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된 문화 종속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탄불로 오는 이번 여정도 이 두 개의 장벽을 넘어온 셈입니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고 런던, 파리, 아테네를 거쳐서 이스탄불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돌궐과 흉노는 중화中華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럽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보다 완고하고 알프스보다 더 높은 장벽이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탄불에는 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완벽하게 소외된 수많은 사화史話들이 있습니다. 1463년 마호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당시의 이야기들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 1935년, 그때까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던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드러난 사실입니다. 벽면의 칠을 벗겨 내자 그 속에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된 예수상과 가브리엘 천사 등 수많은 성화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500년 동안 잠자던 비잔틴의 찬란한 문명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비잔틴 문명의 찬란함이 경탄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는 비잔틴 문명에 대한 오스만 튀르크의 관대함이 더욱 놀라웠던 것입니다. 이교도 문화에 대한 관대함이었기에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군의 성을 함락시키면 통상저긍로 3일 동안 약탈이 허용되는 것이 이스람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마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난 다음 바로 이 소피아 성당으로 말을 몰아 성당 파괴를 금지시켰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를 파괴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다음, 이제부터 이 곳이 사원이 아니라 모스크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약탈을 금지시켰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오스만 튀르크가 그들보다 앞선 유럽 문명의 정화精華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슬람의 그러한 관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 신영복, [더불어 숲] 중에서
못 다 적은 제목을 다시 적어 본다. 신영복 교수님이 남기신 글의 원제목은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였다. 의견 차이가 조금만 나도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경계의 촉을 곤두세우기 마련인 개성 강한 사회에서. 나와 다른 것을, 나에게 없는 것을 애정할 수 있다는 제목에 이끌려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24년을 겨냥한 수능특강 국어 책에도 이 글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처음 만난 것처럼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가까이, 돌궐과 흉노족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국이라는 벽을 넘지 않고서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장에서 볼펜 촉을 두어 번 톡톡 두드린다. 터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돌궐과 흉노이나 중국이라는 거대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변방 민족에 불과했으므로 돌궐과 흉노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장. 터키의 역사인 이슬람과 비잔틴은 유럽에 종속되어 있던 역사가 있었기에 유럽이라는 기준에서 이슬람과 비잔틴을 바라보게 된다는 시각. 문명의 종속성에 젖어 있는 우리의 시각은 중국과 유럽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기에 이슬람에 대해 심한 거리감과 무지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나, 이슬람은 정복한 나라인 비잔틴의 문명을 훼손하고 빼앗기보다 보존하여 주었다. 비잔틴의 소피아 성당을 그들의 문화와 같은 예배당(모스크)이라 일컬음으로써 문명의 다양한 결이 유지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은 어디에 서야 할 것인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삶을 떠받치고 있는 생활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럼에도 적용하기 편리한 기준을 쉬이 가져다 대었던 마음의 장벽들을 생각하게 된다.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