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가호 아래 재앙을 피하고자 天地神明께 정성을 올린 것이 제사의 시작이다.
고구려의 제천의식인 동맹(東盟)이라든지 광개토대왕릉비의 비문이나 고분벽화에도 유교의 음양사상(陰陽思想)이 나타나난다. 중국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도입되었던 유교문화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더욱 중시되었고, 고려 광종 9년부터 실시된 과거제도는 정치이념 속에 유교 이념이 짙게 배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원과의 교류 속에서 도입된 주자학(朱子學)은 유교적 학문과 사상에 새로운 전환을 맞게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유교는 지배적 이념이면서 종교적 성격까지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중앙에 성균관(成均館), 지방에는 향교(鄕校), 서원(書院)이 설치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제사를 봉했다. 중국의 유학과 차이점이 있다면 중국은 우주론적 관심을 앞세운 데 반해, 조선의 유학은 인간의 심성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뿌리 깊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다. 즉,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성(誠)을 하늘에까지 닿도록 하는 것이었기에 종교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인간은 부모로부터 생(生)을 받았고, 그 부모 역시 조상으로부터 생을 받은 것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그 조상들 역시 하늘로부터 생을 부여 받았으므로 조상에 대한 제사 및 의식은 종교적 성격까지 띠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제사 의례는 복잡한 형식과 함께 각종 규정들로 우리 사회가 애초에 받아들였던 심성 도야의 성격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형식적이고 관습적인 의례의 옷을 입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거부감을 갖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심성도야(心性陶冶)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교에서 수 많은 논쟁의 화두가 되었던 이기이원론을 두고,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는 이(理)가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것과 기(氣)가 그 만물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황이나 서경덕(徐敬德)은 기질의 성과 본연의 성이 별개이며, 본연의 성에 입각해서 기질의 성을 제재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이이는 기질의 성을 떠난 본연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기질의 순화를 통해서 본연의 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조상에 대한 제사도 그러한 의미에서 오랜 시간 유지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제사도 계층에 따라서 받드는 범주가 달랐으므로 도덕적 심성의 차원보다는 정치적인 위상을 만드는 데에 소용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와 부딪혀 제사를 이을 수 없음에도 형식을 갖추어야 했던 수많은 폐단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기복문화(祈福文化)' 때문일 것이다.
돌아가신 조상이 후손들에게 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 외래 종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본다. 우리가 그깟 기복문화 때문에 제사를 받드는 줄 아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기복문화가 아니라 진심으로 조상을 기리는 시간으로 삼고 있다면 그야말로 반가운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현대사회의 속도 속에서 선조의 삶을 떠올려 보는 것은 실상 아주 어렵다. 한 세대 위도 어려운데 증조부 제사까지 지내면서 그 분들의 삶을 기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엄격하고 형식적인 제사 문화가 어느덧 고역으로 다가왔을 세대들에게 제사는 그저 며느리들이 겪어내야 하는 고통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기복문화의 옷을 입은 제사임에도 간소화시키거나 폐하는 가정들이 속출하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형식에 있는 듯하다. 지리적인 문제는 다소 완화된 사회적 분위기이나, 먹지도 않는 제사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그 음식들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수십 만 원에서 백 만 원 단위까지 간다고 하니 문제인 것이다. 심성 도야에서 중시 여겼던 것이 이와 기가 함께 동하든 기 속에 이가 있든 '이(理)'는 본연지성이며 만물의 공통 원리라고 하지 않았나. 선조들에 대한 삶을 기리고 취할 점은 본받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삼는다면, 그래서 잠시도 생각 못하고 살아가는 1년이라는 시간 속에 단 하루 만이라도 기리고 마음 가짐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심성도야가 아닐까. 그것이 진정한 기복의 자세가 아닐까. 복을 바라는 마음 이전에 복을 짓는 행동이 먼저 필요할 테니 말이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시대에 맞는 옷을 갈아입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염원이 담긴 문화들이 ‘대한민국’의 전통으로 이어지기를 원한다.
#중용장구서문
中은 마음이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일을 처리하고 사람과 교제할 때 지나치거나 못 미침이 없는 것의 이름이다. 庸은 일상적인 것을 말한다.